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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빛 박용운 Feb 21. 2023

'성 '

sexuality





  내가 이십 대 초반 그러니까 대학교 2학년쯤 시쳇말로 화끈한 여자애가 한 명 있었다.

우린 빵과 우유로만 살 수가 없고, 포도주와 섹스가 필요하다고 서슴지 않고 외치고 다니던 친구였다. 구구절절 문학, 철학보다 간절하게 필요한 것이 바로 섹스라고 말했다.


  섹스 Sex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인간의 원초적 본능이고 누구나 가장 말하고 싶은 단어 중 하나가 바로 섹스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처럼 보수적이고 유교적 성향의 사회에서는 여전히 쉬쉬하며 금기어가 되어 여전히 입 밖으로 차마 꺼내기 힘든 말이기도 하다.


   유교적 사고방식에 찌들어서 유독 남성보다 여성에게 혹독한 잣대를 들이댔던 약 40여 년 전 당시에 그녀는 서슴지 않고 “섹스는 섹스”라는 말을 당당하게 내뱉었었다. 친구들은 그녀를 두고 노는 애라던가, 발랑 까졌다는 둥, 심지어는 창녀라는 말까지 하며 비아냥거리면서도 사내들은 침을 질질 흘리며 바라봤고, 나 역시도 단지 성욕을 풀기 위해 아무와의 하룻밤 상대를 찾는다는 것을 정서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동의하기가 참 힘들었다.


  그래도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은 본능을 조절하는 이성, 즉, 절제의 힘이고, 짐승이 아닌 인간이라면 적어도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는 상대여야 하지 않나?라는 게 내가 갖고 있던 섹스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이다. 아니 지금까지 가진 관념이라고나 할까.


  난 섹스는 반드시 사랑하는 사람과 만이 하는 것이라 여겼고, 그녀는 단지 ‘섹스는 섹스’ 일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당시 난 그녀의 성생활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고, 그래도 저렇게 사는 건 아니지 않나? 라며 마음으로 소리 없는 함성을 지른 것은 사실이다.


  ‘윤리와 도덕’이라고 만들어 놓은 잣대를 나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해서 그녀에게 들이대고 있었는지 모른다. 난 어쩌면 결혼 전에는 반드시 순결해야만 한다는 고정관념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살아왔는지 모른다. 이렇듯 사람들은 각자 생각하며, 그 속에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며 타인의 삶까지 고통을 주는 일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밥을 먹듯이 일어나는 현상이었기에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며 성에 대한 인식이 차차 개방되며 유튜브, 티브이 등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서 숨어서 하던 성 관련 정보나 이야기들을 들어내 놓고 방송을 하며 자연스레 섹스를 부추기는 사회로 만든다는 인식을 할 정도로 문란해지기도 하였다. 지난 2015년 국민의 결정권과 생활의 비밀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간통죄가 폐지되면서 성에 대한 족쇄가 조금씩 풀리는 중이다.


  그러나 여전히 오랜 시간 지배하던 성에 대한 보수적 윤리 의식이 전반적으로 바뀌기에는 아직 역부족으로 더 많은 시간이 흘러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우리가 그녀를 비난하고 혐오를 느낀 것은 섹스에 대한 뿌리 깊은 오해, 무지 때문이었다. 이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대부분 사람이 가진 섹스에 대한 오래된 오해, 무지이기도 하다.


  바로 “섹스=사랑”이라는 등식에 오해이다.

  섹스가 사랑이라는 게 오해라니 이 도대체 무슨 말인가? 의아할 것이다. 그리고 섹스가 사랑이 아니라면 섹스는 도대체 무엇이고 사랑은 도대체 무엇인지 묻고 싶다.

섹스는 사랑이 아니다. 단지 사랑으로 착각될 뿐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어쩔 수 없이 끊임없이 위아래로 출렁이며 희망과 고통을 오가는 감정 파동의 영향을 주고받은 환경 속에서 저절로 살게 된다. 특히 감정으로 느끼는 오만가지 감정 중에 저 사람하고 사랑을 해야지 하는 거부할 수 없는 강렬한 충동, 끌림을 느낀다. 강렬함의 실체는 다름 아닌 두 사람이 만날 때 생성되는 감정 파동의 화학물질 Chemistry이다. 잘 어울리는 커플을 두고 “궁합”이 잘 맞는다고 하는데 여기서 궁합 Chemistry는 두 사람의 화학물질이 서로를 끌어당긴다는 말이다.


  즉 섹스는 감정 파동의 화학물질이 연출한 감정의 산물일 뿐이다. 감정의 산물인 섹스는 감정적 흥분, 감정적 오르내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우리 삶에서 서로를 너무나 간절하게 원하게 되는 경험들은 언제나 눈을 멀게 할 정도의 충동으로 느껴지는 강렬함으로 느껴지기에 우리는 이것을 사랑이라고 너무나 쉽게 착각하며 살아온 것이다.

  즉, 이렇게 강렬한 감정 경험을 사랑이라고 착각한 나머지 섹스가 사랑이라는 등식을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섹스는 사랑이 아니다. 단지 사랑으로 착각될 뿐이다.’

  인간의 섹스는 전적으로 감정에 의해서 지배되며, 인간의 섹스는 감정센터에서 이루어지는

감정적 스파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더 근본적으로 말하면 우리가 이성 간의 ”사랑”이라고 간주해 오던 성 sexuality는 유전자, 우리가 어떤 삶을 살도록 명령하는가에 대한 문제, 유전적 긴박함 genetic imperative의 문제다.


  우리 몸에 있는 유전자의 미션은 바로 이것이다. 더 많이 섞여서, 더 많이 창조하고, 더 많이 생산하라는 한마디로 말해서 멸종되고 싶지 않으면 번식 reproduction 하라는 것이다. 오로지 종의 번식을 위해 작동하는 유전적 필요는 다양성과 다름을 끊임없이 받아들이고 끌어당긴다. 서로 다른 것에 충동적으로 끌리는 유전체는 그냥 설레고 흥분되고 충동을 느끼면 그만인 것인데 이러한 유전자의 충동은 모르는 사람과도 잠자리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추진력이 되기도 한다.


  각설하고 결론적으로 섹스는 우리 몸에 기계적으로 각인된 유전적 역할이다.

성 sexuality는 윤리 영역이 아닌 메커니즘 mechanism 영역이다. 게다가 몸에서 유전자가 하는 일은 우리가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아주 무관하며 또 한 의식적으로 알 수도 없는 영역이다. 그래서 성은 마음으로 통제할 수 없는 메커니즘이다.


  즉, 인간성은 윤리적 영역이 아닌 메커니즘 영역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젊은 날 ‘섹스는 섹스다’라고 주장하던 그녀에게 가했던 혐오와 비난은 인간들의 철저한 무지에서 발생한 실수였다. 그녀의 유전자가 명령하는 성 메커니즘이 무엇인지 알기 전까지 그 누구도 그녀를 비난할 권리를 가진 이는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나도 외치고 싶다. “섹스는 단지 섹스”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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