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담 박용운
하늘은 오래전부터
무언가를 말하고 싶었던 듯
잿빛 고요를 품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숨결 하나 풀어놓듯
하얀 점이 떨어졌다
첫눈이었다
바람마저 멈춘 순간,
나는 그 작은 빛의 조각을
손바닥으로 받아 들었다
금세 녹아버리는,
그러나 쉽게 사라지지 않는
부드러운 차가움
첫눈은 늘
누군가의 마음에 닿기 위해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조용히 내려온다
가로등 아래
눈송이들은
자신들의 그림자를 몰래 끌어안고
반짝이며 떨어지고,
나는 그 사이를 걸으며
내 안의 오래된 소음들이
조금씩 잦아드는 것을 느낀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눈은 마음을 알아듣는다
쌓이지 못한 하루의 무게도,
말끝에서 흐릿해진 그리움도
하얗게 덮어 잠시 쉬게 한다
첫눈이 내리던 지금,
나는 겨울의 첫 페이지 앞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늘이 건네온
작고 차분한 위로 한 송이,
그걸 눈이라 부르는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