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악의 편에 서는
버릇을 길들여야 한다.

휴머니티

by 도담 박용운


사회는 도둑이나 강도를 욕하고 법은 그들에게 벌을 준다. 그러나 문학은 그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각박한 세상에서 남의 물건을 훔치지 않을 수 없었던 사정을 알아내어 그 사람의 편에서 이해하고 남에게 널리 알리어 그 사정을 이해를 시키는 것이 문학의 의무라고 본다. 표면상 악으로 설정되었지만, 그 안쪽 내면의 진실을 불러내어 감동을 얻어내는 작업 그것이 필요하고 또 그래야 할 것이다.

이 세상은 신체적 결함으로 어렵게 사는 사람도 있고 자란 환경의 영향에 의해 또는 어쩔 수 없는 현실 상황 때문에 나쁜 짓을 저지르는 사람도 많다. 문학이란 이런 사람은 이해하고 감싸는 작업을 해야 할 것이다. 몰인정한 사회의 여론, 경직된 제도, 무지한 권력 등을 문학이 견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세상에 죄 안 짓고 사는 사람이 있을까? 종교에서 사람이 영혼이 육체를 갖고 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죄와 연결이 된다고 한다.

우선 사람의 몸이 원하는 것은 얼마나 많은가. 먹어야 하고, 먹는 것도 다른 생명을 죽여서 먹는 것도 많다. 쉽게 말해서 음식 자체에도 수많은 생명체가 있지만, 인간은 이 음식 재료들을 죽여서 끓이거나 구워서 먹는 것이다. 인간의 생존 자체가 원래 이렇게 살생과 근원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먹는 것 이외도 얼마나 많은 것을 갖고 싶어 하지 않나?


인간의 삶이란 어떤 의미에서는 모두가 제로섬 zero-sum 게임으로 알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재화는 한정되어 있는데 내가 많이 가지면 다른 사람들의 몫이 당연히 적어진다. 내가 출세한다는 것은 그만큼 남을 짓누른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흔히 출세한 사람들을 존경한다고 한다. 물론 그 투철한 의지나 신념이나 투지 같은 것은 존경스럽다고 할 수도 있겠지마는 그 사람들도 제대로 살펴보면 인간적인 면에서는 비정하고 냉정한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사람들 욕심 중에 물건을 두고 다투는 것도 많지만 여자를 두고 다투는 性愛, 또는 性慾도 얼마나 강렬한 욕심일까? 사람은 누구나 이렇듯 죄악과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사람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영혼이 감옥살이하는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는 모두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그 벌로 인간이라는 애물 덩어리로 이 세상에 태어났을까? 하듯이 말이다.

기독교적으로 보아도 사람은 원죄가 없지 않다. 그래서 이 세상에 태어난 영혼이 감옥살이하는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가 죄를 짓지 않고 산다는 것은 법을 어기지 않았다는 말이지 근원적으로 인간은 누구도 죄 앞에서 벗어날 수가 없게 설계된 존재이다. 모든 문학 작품의 궁극적인 목표는 감동의 창출이다. 이 감동을 자아내려면 인간을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감싸는 마음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잘못 태어나 어렵게 사는 그늘진 쪽의 사람들, 악의 쪽, 가난한 쪽의 사람들에게 연민을 가지고 그들을 대변하고, 그들의 또 다른 진실을 찾아내는 휴머니티가 바로 감동을 창출하는 근본이기 때문이다. 감동은 인간의 이해가 없이는 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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