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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빛 박용운 Mar 13. 2022

염통 시리고 가슴 시큰해지던 날을

     새벽 5시 하노이 재래시장은

          

     사람보다 새벽이 바쁘다. 두런두런 사람에게 말을 걸거나, 드문드문 사람을 불러내는 것은 새벽이다. 무덤덤한 상인들의 얼굴에 꽃을 피우는 것도 새벽이다. 열국 베트남은 새벽이 황금 시간이다. 최상품은 새벽에만 있다. 싱싱한 과일과 채소와 물 좋은 생선과 육질 좋은 고기는 새벽에 가야 살 수 있다. 베트남 사람들은 절대 사재기를 하지 않는다. 그날 양식은 그날 산다. 더위 탓에 쉬 상해버리기도 하지만 냉장고 사용이 적어 새벽마다 장을 본다.     


  새벽시장은 여인들의 천국이다. 그 시간 남편들은 잔다. 남편들은 결혼하면 게을러지고 이기적으로 된다고 여인들은 입을 모은다. 젊은 층에서부터 사라지고 있지만, 잠옷을 입고 장을 보는 여인들이 꽤 있다. 잠옷은 야해 보이지 않고 시원하고 편해 보인다. 여인들은 그 복잡한 시장통을 오토바이가 갈 수 있는 곳까지 타고 간다. 길은 실타래처럼 얽히고설키며 자주 서로의 몸이 부딪히는데 여인들은 태연하다.     

  재래시장은 규정과 시스템보다는 개인의 이기와 이해가 앞선다. 오토바이 바퀴가 들어갈 만큼만 있으면 들이밀고 본다. 공급과 유통의 불안정으로 채솟값과 고깃값은 매일 춤춘다. 먼 곳에서 오는 바다 생선은 등락의 폭이 크다. 재래시장에 가면 시간은 저속으로 흐르고 어제나 오늘이 다르지 않아 광속으로 변하는 세태를 물결에 따라 조금씩 사라지고 있어 상인들의 얼굴도 조금씩 구겨지고 있다.  

   

  아침 7시, 후덥지근한 바람이 옷깃에 기웃거린다. 시장 입구, 큰 건물 공터 앞, 대로의 넓은 인도에는 순식간에 노상 밥집이 들어선다. 낮은 지상에서 가장 낮은 노상 식탁에 둘러앉아 있는 이들은 각양각색, 내일이 없을 것 같은 얼굴의 중년 사내들과 맞벌이 야무진 젊은 부부들과 부모 몰래 자버린 어린 여인들과 백수 남편을 먹여 살리는 고단한 여인네들과 가까운 가게 점원들과 먼 길 떠나며 꿈꾸는 이들이 둘러앉아 이른 아침을 먹는다. 밥을 팔아 꿈을 사기는 밥집 아주머니도 마찬가지, 내년 이맘때는 노점상을 면하고 가게라도 하나 얻을 수 있을는지     


  하노이 시장 안에는 한 가게에 두 업종이 장사하는 경우가 많다. 휴대전화기 가게가 새벽에는 밥집으로 둔갑하고, 복사집은 야밤에 식당으로 변한다. 노상 밥집을 거두는 손들이 바쁜 아침 9시, 이미 해는 중천, 벌써 길이 엿가락처럼 늘어진다. 하노이 보통 사람들은 아침을 밖에서 먹는다. 이들의 아침 외식은 있는 시간과 없는 돈을 절약하는 방편이다. 소음과 먼지가 기본양념인 노상 밥상에서 가장 즐겨 먹는 음식은 쌀국수(Pho)이다. 퍼 만큼 유명한 볶음밥 껌 장(com rang)은 아침에 잘 먹지 않는다. 퍼는 소, 돼지, 닭 뼈를 곤 국물에 취향에 따라 소, 돼지, 닭고기와 각종 채소를 넣어 먹는다. 쌀로 튀겨 만든 튀김 노란 꿔 이(quny)도 곁들인다. 퍼 종룬 수십 가지, 게(qua) 퍼도 등장하고 두부나 생선튀김을 얹어주거나 소시지를 넣어주는 퍼 가게도 있다.     

  퍼 만큼 즐기는 또 다른 쌀국수가 분 bun이다. 분은 쌀을 3일 동안 숙성시켜 신맛이 나는 국수다. 분에는 고기, 튀김, 고둥, 채소 외에 튀긴 두부도 넣어 먹는데 한눈에 먹음직스럽다. 대게 아침은 2만5천 동(1,500원)에서 4만 동(2,400원), 여기에 차를 곁들이기도 하고 베트남 소주를 해장술로 마시는 이도 있다. 그중에 가장 싼 아침밥은 소이가 xoi 다. 우리 찹쌀밥 같은데 헌 신문지에 싸서 팔고, 먹는다. 그 밥에 곡류, 채소, 고기가 추가되면서 가격이 올라가고 색상, 향, 맛도 달라진다. 소금만 달랑 뿌린 5,000동짜리 쏘이를 한 손에 받쳐 들고, 한 끼를 때우는 야윈 손을 보면 가슴이 짠하다. 언젠가는 흙 한 줌 되는 삶을 생각나게 한다.     


  그 곁에 파리떼를 손사래 치며 먹는 음식이 바이 꾸어온 ban cuon, 쌀가루를 반투명하게 스팀 한 음식인데, 여자 손님이 많다. 그 매끄러운 모양새나 희뿌연 색감이 여자 속살과 닮았다. 또 하나, 들여다보다 권하는 통에 정중히 사양하느라 애먹은 음식이 오리알 쭝빗론trung vit lon이다. 생기다 만 병아리 오리가 누워 있는데, 오 마이 갓이다. 눈감고 먹어두면 남잔 정력에 여잔 보양에 좋다고 권한다. 우리네 곤란과 비슷한 것 일게다.     

  보통 남자는 3개, 여자는 2개를 소금에 야무지게 찍어 먹는다. 우리 하얀 쌀죽 같은 게 있어 물어보니 짜오chao long란다. 아프고 밥맛 없을 때 먹는 죽인데 신기하게 우리와 맛이 똑같다. 한인들이 먹기 힘든 채소 자우텀rau thom을 넣어 먹으면 속병에 좋고 원기 회복이 빠르다고 했다. 선지도 넣고 돼지 내장을 넣은 죽도 있다. 한 그릇에 2~3만 동이다.     

  떡도 있다. 찹쌀로 방울 같이 만든 바잉 종이 Bahn troi도 즐겨 먹는다. 찹쌀로 만들고 야자수 잎에 싼 바잉 조banh gio는 속이 돼지고기, 먹다가 물컹거려 그냥 삼킨 적도 있다. 이외에 바잉 쫑banh chung과 바잉 가이banh gai가 있는데 안에 돼지고기와 녹두, 가이 나무 앞이 들어있다. 한 개에 만 동 미만,     

  아무래도 한인에게는 쉬운 아침은 빵, 바잉 마이banh mi다 베트남은 일찍부터 프랑스 영향을 받아 빵 굽는 솜씨가 뛰어나다. 바로 구운 바게트는 그냥 먹어도 구수하다. 빵에 취향에 따라 달걀, 돼지고기, 어묵, 베트남 고추장을 곁들이면 가장 먹을 만하다.

     

  하노이 사람들은 대게는 아침을 간단하게 먹는다. 특히 노상에서 먹는 아침은 마치 간식하듯이 간단하게 먹는다. 생존에 꼭 필요한 양만 먹는 것 같았다. 너무 적게 먹고, 너무 부실하게 먹는다. 뭘 하려다 그만둔 흐지부지한 인생 같은 노상 밥집을 절대로 얕보면 안 된다. 하루살이 들끓고 입 닦게 휴지 바닥 날리는 너저분한 노점 밥상을 그냥 더럽게만 보면 안 된다. 지금 베트남 사람을 키운 3할은 노상 아침 밥상이다. 노상 아침밥은 베트남의 정겨운 엄마다.     

  노상 밥집은 베트남 사람들 가슴 속에 그리움의 아이콘이다. 저 없던 시절 장날 시장통에서 먹던 소머리 국밥이 우리의 아릿한 향수이듯 다음에 이들도 노상 밥집을 클릭하면 추억과 사랑과 눈물과 한숨과 그 어느 날의 누군가가 생각날 것이다. 염통 시리고 가슴 시큰해지던 날을, 과연 린도 그럴까, 린은 노상 밥집에서 만난 올해 35세 여자다. 자전거로 사기그릇을 행상하는데 10년은 겉늙어 보인다.     


  화장과 남자와 원망을 잊고 사는 린은 15살 소년의 사진을 코팅해서 때가 묻은 지갑에 넣고 다닌다. 보여주며 아들이란다. 린 가슴 속에 피는 꽃이다. 한 달 죽자고 팔면 500만 동 버는데 늘 웃고 산다. 진흙속에 피는 연꽃이다. 아침을 마친 린이 그 앙상한 엉덩이로 중심을 잡고 린보다 2배나 되는 사기그릇 자전거 폐달을 밟아 나가면, 아, 보지 마라, 눈물겹다.     

  노상 밥집 여행은 일종의 회복 여행이다. 내 속에 있는 불평을 비우고 감사를 채워오는 변화여행이다. 배신하고, 사기치고, 미워하고, 분 내던 마음을 비우고 내 안에 없는 온유한 마음을 채워오는 것이다. 마음아, 낮아져라, 지상에서 가장 낮은 저 의자들처럼.     

                                                                                                                                         

                                                                            (2016년 하노이 노상 밥집 순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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