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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빛 박용운 Apr 14. 2022

“모든 사람은 제 잘난 맛에 산다.”

“왜 그랬어?”


  노래를 잘하면 노래방에 가고, 수영을 잘하는 사람은 수영장에 가고, 골프를 잘하는 사람은 골프장에 가고 싶어 한다. 사람 누구나 자기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은 “야! 잘하는데.” “정말 잘한다.” “끝내주는데”와 같은 말들을 듣고 싶어 한다. 

  ‘모든 사람은 제 잘난 맛에 산다.’라는 것은 모든 관계의 대전제 前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 잘난 것을 인정해 주는 사람을 가까이하고, 자신의 잘난 것을 알아주는 사람과 함께 있고 싶어 한다. 우리가 이러한 전제 아래 만나는 사람들을 대한다면 어떠한 사람을 만나도 성공적인 관계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나 잘난 맛에 살고, 너는 너 잘난 맛에 산다. 나와 너뿐만 아니라 모두가 다 자신들의 잘난 맛에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잘난 것을 인정해 주는 사람을 좋아하고, 너 또한 너의 잘난 것을 인정해 주는 사람을 좋아할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너와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서, 난 너의 잘난 것을 인정하고, 넌 나의 잘난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런데 우린 남의 잘난 것을 인정하는 데는 상당히 인색하다. 도리어 남의 잘난 것을 깎아내리고 싶어 하고, 그러면서도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기대하는데, 그것은 우리가 관계에서 저지르는 가장 큰 실수이다. 

  내가 남과 성공적인 관계를 맺기 위해서 내가 해야 할 일은, 남의 잘난 것을 최대한 살려주는 것이다. 물론 남들도 나의 잘난 것을 인정해 주면 좋겠지만, 그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기에,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남의 일이다. 


  모든 관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남의 잘난 것을 인정해 주는 것뿐이다. 남이 나를 인정해 주지 않는 것은 나의 관계 형성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다시 말해서 나와 남의 관계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남의 잘난 것을 인정해 주는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내 주위로 모여들게 된다.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사람들에게 살맛을 내도록 해주는데 사람들이 모여들지 않을 수 있겠나? 살맛을 얻으려면 살맛이 있는 곳으로 모이는 것은 당연한 진리이기 때문이다. 

  또 한 인간에게 있어서 모든 행동의 최종 목적은 자존감 획득이다. 사람이 행하는 모든 행동 뒤에는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욕구가 숨어 있다. 그렇다고 드러내 놓고 요청하지는 못하지만 대단한 사람이라는 말을 듣기 되기를 기대한다. 


  잘한 사람은 잘했다는 말을 듣고 싶어 한다. 그러나 못한 사람일지라도 못난 사람이라는 말을 두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일을 못 하기는 했어도 실력 있는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싶어 한다. 일이라는 것은 잘할 수도 있고 못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잘한 사람이나, 못 한 사람이나, 그 일을 통해서 기대하는 것은 “수고했다”라는 한마디를 기대한다.

  즉 실패한 사람에게는 “왜 그랬어?”라 고는 하지 않아야 한다. 비록 실패 하기는 했어도 그 일을 통해서 그가 기대한 것은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는 것이다. 어떠한 일이라도 자신을 망치기 위해서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도둑질해도 “대단하다.”라는 말을 듣고 싶어 하는 것이 인간의 욕구이기 때문이다. 

  밥하는 일, 빨래, 청소, 공부, 오락 등등 누가 무엇을 하든지 내가 그들에게 해주어야 할 말은 “잘했어”라는 한마디일 것이다. 그 한마디를 듣기 위해 사람들은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고 해고 과언은 아닐 것이다. 

“나 어때? 좋아? 괜찮아? 이상한 것 같아? 망친 것 같아?” 이 모든 말은 잘했다는 말을 듣기 위해서이다. 그중에도 어떤 사람은 긍정적이고, 또 어떤 사람은 부정적이다. 그러나 그 두 사람이 기대하는 대답은 모두 긍정적인 말일 것이다. 다만 그들의 개인적인 표현 방식이 다를 뿐이다. 

  누군가 우리에게 제 일이나 신상에 관해서 물어온다면, 그것은 자신을 객관적으로 평가해달라는 말이 아니라 좋은 대답을 해달라는 요청이며, 위로받고 싶다는 신호이다. 사람이 던지는 모든 질문은 좋은 답을 기대한다. 솔직히 대답해달라고 할지라도 그는 솔직한 대답이 부정적일 때 마음에 상처를 입게 된다. 


  누군가 무엇을 물어올 때 특히 한숨 섞인 말로 자신의 실수를 꾸짖어 달라고 할지라도, 결코 부정적인 대답을 하면 안 된다. 상대가 바라는 것은 그것이 아니다. 못난 사람일수록, 실망한 사람일수록 희망적인 대답을 기대할 것이다. 관계가 불행한 사람은 행복할 수 없다. 인간의 행복은 행복한 관계에서 오기 때문이다. 

  또 한 행복하지 않은 사람은 성공한 사람이 아니다. 진정한 성공은 행복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들이 성공했다고 말은 하지만 정작 본인은 불행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하는 예도 있다. 그러므로 참된 성공은 행복을 동반한 성공이다.


  관계와 성공과 행복은 따로 분리할 수 없다. 관계와 성공, 행복이 세 가지를 얻는 비결은 관계에 달려 있다. 각자의 관계 속에 있는 행복과 성공을 찾게 되시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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