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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빛 박용운 Apr 22. 2022

도약하는 꿈

   내가 60년대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제일 많이 들었던 음악 중 하나가 바로 영화 ‘미워도 다시 한번’의 주제가인 가수 남진이 부른 ‘미워도 다시 한번’이다. 이미 20대 중반이었던 형님이 휴일이면 마루에 배 깔고 누워서 전축을 틀어놓고 끝도 없이 흥얼거리던 노래이다. 

  가끔 친정 나들이를 오신 큰 누님도 엄마와 함께 다듬이 방망이질로 박자를 맞추던 노래이기도 하다. 그중 특이하게 감동을 주기까지 하던 대목은 “울면서 돌아설 때 미워도 다시 한번” 어찌나 그 부분을 사무치게 불렀던지 나는 어렸을 때부터 “이 생명 다 바쳐서 누군가를 죽도록 사랑하기”가 삶의 지표가 되었었다. 그래야 울면서 돌아설 때 “미워도 다시 한번”을 진짜 폼 form 나게 부를 수 있다고 생각했나 보다. 그때는 그것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꿈인지 어떻게 알 수 있었겠는가? 아무튼 어찌어찌하다 보니 “미워도 다시 한번” “저 하늘에도 슬픔이” 같은 영화를 거의 비슷한 시기에 보게 되었다. 그때 나는 내가 눈물 많은 소년이라는 것을 알기도 했다. 책을 읽다가도 울고, TV 드라마를 보다가도 울고, 심지어는 만화를 보다가도 울고 마냥 울었나 보다. 

  “사내 녀석이 그렇게 눈물이 많아 어디다 써”라고 엄마는 걱정하셨다. 그런데 한 번 울어 본 사람은 어른이 된 뒤에 영화를 보거나 슬픈 책을 읽어도 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십수 년 전쯤에 읽은 책 중에 아프가니스탄 카불을 배경으로 한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을 읽으며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난다. 카불에선 사랑을 고백할 땐 “내 마음의 술탄, 내 맘의 술탄”이라고 속삭여 주는데 책을 읽은 뒤로 한동안 그 말이 언제나 입가를 빙빙 돌았던 기억이 있다. 주인공 미리 암이 폭력을 일삼던 남편을 죽이고 사형당하는 장면, 죽는 그 순간에야 비로소 자신이 태어난 후 최초로 훌륭한 일을 해냈다고 생각하는 장면은 정말 눈물 없이 보기가 힘들었다. 

  또 영화 “비리 엘리엇”의 마지막 장면을 혹시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탄광촌의 소년이 드디어 발레리노가 되어서 무대로 뛰어가기 직전 거칠게 숨을 고르고 막 뛰어나가 저 높이 도약하는 장면, 그때도 말없이 눈물이 흐른다.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파서 우는 게 아니라 그 동작이 너무나 감동적이라 운다. 그때 우리가 보는 것은 도약하는 몸이 아니라 도약하는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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