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했습니다. 내게는 대단한 일입니다.
나는 한 동네에서 15년 넘게 살았습니다. 20대 초반에 고시원에서 한 두 달 정도 살았던 걸 시작으로 작은 원룸으로 이사를 다녔지만 보통 2년 이상 살지 않았고 이 동네를 벗어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마지막 원룸에서만 무려 7년을 살았습니다. 건물 꼭대기 층에 살고 있는 주인 내외가 항상 건물을 깨끗하게 관리해 주셨습니다. 나는 그 점이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 직전에 살던 집은 훨씬 넓었지만 건물도 매우 낡았고 관리도 엉망이었기 때문입니다.
엉망이었던 그 집은 3층 짜리 낡은 건물이었고 나는 2층에 살았습니다. 건물 입구부터 계단 손잡이까지 먼지가 수북했지만 그래도 방이 넓으니 내 방만 잘 청소하면 된다는 마음으로 계약했습니다. 입주한 이튿날인가 바퀴벌레를 보기 전까지는 그랬습니다. 처음에는 내가 집을 잘 관리하면 된다는 생각에 하루에도 몇 번씩 청소를 했습니다. 하지만 싱크대 아래 배관, 귀퉁이가 뭉그러진 나무 창틀, 깨진 욕실 타일 그리고 그밖에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모든 구멍과 빈틈으로부터 바퀴벌레가 나왔습니다.
그때 아마 스물아홉이나 서른 살쯤 되었던 것 같습니다. 생계를 위해 프리랜서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매일이 힘들었습니다. 학생들 앞에서는 많이 아는 척 애써 떠들어댔지만 사실 누굴 가르칠 자격 없이 칠판 앞에 선다는 사실이 불안했고, 그럼에도 사회의 다른 영역에서는 내 자리를 찾지 못했다는 자책으로 괴로웠습니다. 그러다 덜컥 삼십 대가 되어버린 순간, 나는 발가벗은 채로 강단에 선 것 같은 압도적인 공포를 느꼈습니다. 앞에는 학생들이 아니라 나보다 먼저 어른이 된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그들은 잰 걸음으로 나를 향해 거리를 좁혀왔습니다.
나는 매일 집에서 도망치듯 밖으로 나왔고 다시 도망치듯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에서는 매트리스 위에서 되도록 벗어나지 않으려 했습니다. 내가 불안정하고 취약하다는 걸 눈치챈 바퀴벌레들이 사방에서 야금야금 공간을 잠식하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밖에 나갈 때도 불을 끄지 않았습니다. 어둠 속에서 수많은 바퀴벌레가 활개를 치다가 내가 집에 돌아와 불을 켜는 순간 사삭, 숨어버릴 것만 같았습니다. 창문, 찬장, 욕실 문 등 무언가 보이지 않는 영역을 확인할 때는 항상 심호흡을 했습니다. 가장 두려운 순간은 내가 잘 때였습니다. 부디 그 녀석들이 방 한가운데 매트리스라는 성벽을 오르지 않기를, 설령 함락된다 해도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자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아침을 맞이하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어느 밤, 나는 정확하게 묘사하기는 어렵지만, 정말로 확실히 '바퀴벌레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습니다. 소리는 머리 위 에어컨 근처에서 나고 있었습니다. 나는 조심스럽게 불을 켜고 눈으로 소리가 나던 방향을 좇았습니다. 바퀴벌레 한 마리가 배관을 타고 머리 위 에어컨을 향해 전진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기보다 되려 차분해졌습니다. 조심스럽게 휴지를 뽑아 쥐고 에어컨으로 향하는 그 녀석을 움켜쥐었습니다. 오른손에서 느껴지는 불쾌한 생명력에 나는 순순히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녀석들은 이미 언제든 내 머리맡의 고지를 점령할 수 있었고, 나는 항복 선언을 하고 이 집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일 년을 채우지 못하고 그 집에서 나오던 날, 아침 일찍 집주인이 찾아왔습니다. 나에게 퇴거 청소비를 내야 한다고 했습니다. 바퀴벌레 때문에 전화를 할 때마다 "방역을 알아보겠다."라고만 할 뿐 한 번도 나타나지 않다가 이제야 나타난 집주인이 좋게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심지어 처음 계약할 때 부동산에서는 집주인에 대해 "자선단체에서 일하고 봉사활동도 많이 해서 참 선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소개했습니다. 나는 집주인 계좌에 청소비를 입금하면서 속으로 '세상에 도울 사람이 너무 많아서, 자신에게 월세를 내고 있는 세입자의 주거 환경까지 돌볼 틈이 없구나.'라고 비아냥거렸습니다.
이후 최근에 살던 집으로 이사했고, 어쩌다 보니 7년이나 살았습니다. 떠나고 싶을 때도 많았습니다. 삶을 바꾸려면 생활 반경부터 바꾸어야 한다는 생각에 곧 떠나야지, 올해는 꼭 이사를 해야지 스스로에게 다짐하고 주변에 공언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이곳에 머물렀고 그렇게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사를 할 수 없는 핑계는 셀 수 없이 많았고 이사를 가야만 하는 마땅한 이유도 없었습니다. 재계약은 12월 말이었는데 나는 11월 즈음이 되어서야 이사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떠올렸고 무기력하게 12월을 흘려보냈습니다. 자연스럽게 계약은 연장되었고 나는 그렇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채로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다행히 이번 이사는 내가 조금만 미적대도 얼른 서둘러야 할 이유가 생겼습니다. 1월 중순에 부동산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오늘 집을 보고 간 사람이 2월부터 첫 직장에 출근하는데, 내가 조금 빨리 나가주면 그 사람이 입주할 수 있다는 얘기였습니다. 나는 흔쾌히 그러겠다고 했습니다. 서둘러 이삿짐을 싸고, 이사 갈 곳에 입주하는 날짜를 조정하고, 여러 예약도 앞당겼습니다. 그러면서 조금씩 동네에 나름의 작별 인사를 건넸습니다. 단골 식당에서 밥을 먹고, 이제 자주 오기 어렵지만 꼭 또 오겠다고 말하고, 살갑게 대해주던 집 앞 편의점 사장님도 찾아가고, 그밖에 굳이 이사에 대해 말하지 않았지만 자주 오가던 곳들을 틈틈이 들렀습니다.
내가 인사를 하기도 전에 먼저 떠난 곳도 있었습니다. 큰길 건너 세탁소는 일 년에 네댓 번이지만 거의 10년 동안 이용하던 곳이었습니다. 사장님이 차로 직접 빨래를 가지러 오면 종종 차에 함께 타고 이동했는데, 그때마다 사장님은 항상 내게 앞으로 잘 될 거라고, 예의 바르고 좋은 사람이니 자신감을 가지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손님에게 하는 인사치레라고 해도 너무 낯부끄러운 칭찬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나는 그게 싫지 않았습니다. 그 말을 들으면 나는 깨끗하게 세탁하고 말끔하게 다린 셔츠가 된 기분이 되어 조금 더 단정한 하루를 보내고자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세탁소에 사장님 대신 젊은 여자분이 앉아있는 걸 봤습니다. 며느리나 따님이 잠깐 가게를 보는 거겠지 하고 지나갔지만 일주일, 한 달이 지나도 사장님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혹시 몸이 편찮으신 걸까, 또는 경영이 많이 어려워진 걸까 여러 걱정이 되던 차에 이사가 결정되었습니다. 이사를 떠나기 전에 한 번은 세탁소에 들러 사장님 안부를 물어볼까 생각하던 차였습니다. 그러나 며칠 뒤 나는 세탁소가 있던 자리가 텅 비어 있는 걸 확인했습니다. '임대문의'라는 종이 한 장이 손을 흔들 듯 바람에 너풀거렸습니다.
이사 당일 아침에 주인 내외에게 작은 선물을 했습니다. 세입자가 선물을 주는 건 처음이었는지 많이 놀라는 눈치였습니다. 이사 트럭을 기다리는 30분 동안 아주머니와 나는 7년 중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서로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했습니다. 트럭에 짐을 싣고 떠날 때 평소 거의 말수가 없었던 주인아저씨는 우리가 골목을 벗어날 때까지 손을 흔들었습니다. 나는 세입자로서 집주인에게 손 인사를 받는 것이 어색해서 괜히 웃음이 나왔습니다. 운전석의 기사님도 이 장면이 생경했는지 함께 웃었습니다.
그리고 그 웃음 끝에 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시작이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