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vuruvuru Mar 31. 2017

투쟁의 기록, 로그 원

영화 <로그 원 : 스타워즈 스토리>

<스타워즈 에피소드4 : 새로운 희망>의 허접함을 꼽으라면 등장이 꽤나 어설펐던 다스베이더의 흠좀무를 말할 수 있다. 그의 등장은 정말이지 심심했다. 외관으로만 도드라져 보일 뿐이었다. 스톰트루퍼보다는 조금 더 멋져 보이는 검정색 헤드와 숨을 거칠게 쉰다는 것. 첫 등장으로 알 수 있는 건 그게 전부였다. 그가 향후 에피소드에서 맡을 굵직한 역할들을 고려하면 상당히 서운한 등장이다. 즉 이런거다. 그는 중간보스라고 생각되기 좋았다(어디까지나 첫 등장으로 미루어 볼 때). 스타워즈에 대해 아는 것이 전무하고, 다스베이더라는 존재 자체를 모르며, 포스터에 그려진 그의 위용을 눈여겨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는 아주 잠깐 등장한 타킨 총독과 비슷한 존재감일 뿐이었다. 물론 시간이 가면 저절로 해결된다. 


그래서 그런지. 루카스 필름도 이를 다소 의식한 듯 싶다. <스타워즈 에피소드7 : 깨어난 포스>에서는 다스베이더의 의지를 이어받은 카일로 렌이 영화 시작부터 존재감을 드러낸다. 첫 장면부터 민간인 학살이다. 포스 역시 예사롭지 않다는 걸 강조한다. 맥빠지는 등장으로 영화를 시작했던 <스타워즈 에피소드 4 : 새로운 희망>과는 엄연히 다른 시작이다. 

<로그 원> 속 다스베이더

<로그 원 : 스타워즈 스토리> 역시 이제는 시대의 저편으로 사라져야 할 운명을 지닌 다스베이더 옹을 기리기 위해 작정한 모습을 보인다. <로그 원 : 스타워즈 스토리>은 시작이 아니라 끝머리를 장식으로 다스베이더에게 유감과 경의를 표한다. 이는 영화 최후반부에서 아주 절실하다. 잠깐이지만 그 여느 스타워즈 시리즈를 통틀어 다스베이더의 가장 위용있는 등장이었다. 그에게 단번에 압도되는 순간이었다. 


<로그 원 : 스타워즈 스토리>는 <스타워즈 에피소드 4 : 새로운 희망>이 시작되기 바로 전의 이야기다. 데스스타 설계도를 탈취하는 일련의 과정을 그린 영화다. <에피소드 4>에서 부족했던 설명은 <로그 원>을 통해 채워진다. 그리고 <에피소드 3>와 <에피소드 4> 사이의 시간적인 공백과 내용적인 공백을 말끔하게 메운다. 

이야기는 제국군에 반항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데스스타를 만들어야 했던 겔런 어소 박사(매즈 미켈슨)의 계략으로부터 시작된다. 박사는 데스스타에 치명적인 약점을 심어놨다. 데스스타 내부의 리엑터 뭐시기를 살짝 건들기만 해도 데스스타가 그대로 파괴될 수 있게끔 설계한 것이다. 그러니까 설계도 하나만 있으면 그까짓 데스스타 따위 하나도 안무서운 거다. 


제국군은 이 엄청난 사실을 모른다. 하지만 혁명군은 이 사실을 알고있다. 문제는 데스스타에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는 사실을 혁명군 수뇌부가 반신반의한다는 점이다. 이렇다할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박사가 직접 간언한 것도 아니고 박사의 딸 진 어소(펠리시티 존스)가 구두로 전할 뿐이다. 무작정 설계도를 탈취하러 갔다가 개죽음을 당할 수는 없는 것이다. 진 어소가 좀처럼 신뢰해주지 않는 혁명군에게 환장할 무렵, 혁명군에서 갖은 더러운 일을 도맡아 하던 카시안 안도르(디에고 루나)는 제국군에 대항할 몇 명의 과격파를 데리고 그녀와 함께 설계도 탈취 팀을 급조한다. 이 팀의 이름이 바로 ‘로그 원’이다. 

혁명군 팀, 로그 원

허공을 야심차게 가르던 밀레니엄 팔콘호의 어설픔이나 <로그 원>의 소소한 작당들은 이야기에서 좀처럼 거머쥐기 어려운 승기를 향해 박복한 승부수를 던진다. 단 한 척의 배와 고작해야 십 수명의 작당이다. 예나 지금이나 지극히 <스타워즈>다운 방식이다. 하지만 <로그 원>을 기존 스타워즈가 종용했던 승리구도 방식으로 이야기를 당긴다는 생각은 큰 오산이다. 이 작품에서는 제다이가 등장하지 않는다. 물론 광선검도 등장하지 않는다. 포스를 다루는(?) 치루트 임웨(견자단)가 등장하지만 그를 제다이라고 부르기엔 어설프다. 무엇보다 광선검이 없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끝내 등장하지 않은 광선검과 제다이는 그 자체로 <로그 원>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 


우리는 <스타워즈>시리즈가 결국 한 집안의 가족 싸움이라는 걸 안다. 스카이워커 가문의 콩가루와 피를 버무린 싸움이 에피소드 1부터 6까지 지겹게도 이야기를 주름잡고 있다는 걸 잘 알고있다. 더구나 <에피소드 7>에서 마저 가문의 새로운 싸움을 예고하고 있으니, <로그 원>이 앞선 작품들과 다르게 특별하게 다가오는 건 이들 가족의 그늘에서 벗어났다는 점이다. 


이들 가문에서 벗어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포스를 최대한 멀리하는 것이다. <로그 원>에서 제다이와 광선검이 끝끝내 등장하지 않고 언급으로 그쳤던 건 바로 이런 이유다. 제다이 없이, 광선검 없이 그리고 포스 전혀 없이 <스타워즈>세계관에서 화기와 전술로만 승부수를 던지는 건 꽤나 무리한 도전이다. 제국군의 물량을 헤아리면 이 모든게 다 개죽음이다. <로그 원>에서 말하고 싶은 건 이 순간 분명해진다. 우주의 운명을 움켜쥐는 몇 명의 선택받은 이들의 피를 토하는 싸움과 휴머니티가 아니라 이 무시무시한 세계관에서 제국군에게 진정으로 억압받고 괴롭힘 당하는 아주 평범한 범인(凡人)들의 고독한 싸움을 알리고 싶은 것이다. 


<스타워즈>에서 포스는 본래 타고나는 영적인 힘을 의미한다. 이는 어디까지나 후천적인 힘이기 보다 선천적인 힘이다. 포스는 자본과는 또 다른 스타워즈 세계관에서 통용되는 중요한 자산이다. 아나킨 스카이워커가 제 아무리 불우한 유년시절을 보냈다고 할지라도 그가 타고난 남다른 포스가 있었기에 그는 누구보다 빠르게 제다이가 됐다. <로그 원>에서 치루트 임웨가 계속해서 되내이는 대사인 “I'm the one with the force, and the force is with me(나는 포스와 함께하고, 포스는 나와 함께한다)”는 그의 말버릇이 아니라 포스와 함께 할 수 없는 범인의 고통을 전적으로 암시하는 대사다. 그렇기에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 대사를 수없이 되내이는 장면은 스타워즈 세계관에서 꽤나 숙연한 것이다. 아나킨이나 루크가 이런 대사를 외울리 없다. 

제국군에 맞서는 혁명군 

우주의 기득 세력인 제국군의 지배를 벗어나려는 <스타워즈> 속 혁명군의 움직임은 늘 분주하다. 제다이라는 거대한 무력의 상징을 잃고 각지에서 모인 오합지졸로 제국군에 대항해야만하는 그들의 운명은 기구하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데스스타 설계도가 있다. 제국군이 자랑하는 최강의 무기를 단번에 제압할 수 있는 귀중한 자산이다. 이는 혁명군에게 있어 역전의 계기다. 설계도에 적시된 데스스타의 약점은 아주 간단하지만 그와 반대로 이를 얻기위한 과정에서 흘린 피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계란을 바위에 쳐야만 했던 범인들의 노력과 분투를 헤아리는 것. 그것이 <스타워즈>에서 진정한 혁명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아직도 혁명다운 혁명이 완수되지 않은 이 세계관에서 <로그 원>을 통해 제시하는 향후 이야기는 적어도 포스에 휩쓸리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채워진다면 참 좋을 것만 같다. 포스는 막강한 힘이지만 그보다 더 막강한 건 변화를 바라는 사람들의 힘과 염원이다. <스타워즈>는 이를 중요시해야 한다. 모든 비극이 포스에서 비롯한 것처럼 포스를 멀리하는 게 되려 바람직한 미래로 나아갈지도 모를 일이다. <스타워즈 에피소드 8 : 최후의 제다이>의 제목은 그런 추측을 하게 만든다. <로그 원>으로 예고되는 향후 <스타워즈>는 우리가 알던 그 <스타워즈>가 아닐지도 모른다. 

작가의 이전글 아버지는 목이 마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