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로건>
<로건>의 개봉과 동시에 스포를 당했다. 지인의 악질적인 스포일러가 문제가 아니었다. 영화 <로건>의 뚜렷함이 문제였다. 마지막 울버린, 그 마지막이라는 암시 때문이다. <로건>과 관련한 기사를 잠깐 훑기만 했는데 스포일러가 저절로 묻어나왔다. 로라가 로건의 딸이라는 등, 로건이 노쇠해서 회복도 제대로 안된다는 등, 우리의 프로페서X - 찰스 자비에가 치매에 걸렸다는 등. 이야기 속에서 선명한 사실들은 <로건>을 보지 않았음에도 최종막이 어떻게 꾸려질지 충분히 암시할 수 있었다. 아, 물론 포스터 역시 한몫을 했다.
대부분의 기사 그리고 평은 로건, 즉 울버린의 지난 역사와 기록들을 찬찬히 읊조리며 그의 마지막에 숭고한 건배사를 올리는 식이었다. 사실 내 감상 역시 이들과 별 다를바 없다. 울버린이라는 코믹스 원작의 캐릭터를 이토록 훌륭하게 연기하면서 마지막까지 확실하게 책임지는 휴 잭맨은 배우로서 굉장히 찬사받아 마땅할 일이다. 또 <울버린>이라는 미디어믹스가 기록해온 슈퍼히어로 영화의 거대한 서사는 가히 지대하다.지금의 마블과 DC의 종횡무진은 <울버린> 그리고 <엑스맨> 시리즈의 공 덕분이다. 더구나 휴 잭맨은 마지막 울버린인 <로건> 제작에 더할나위 없는 큰 공을 세웠다는 후문이 전해지니(시나리오 측면에서), 휴 잭맨과 울버린 이 둘을 잇는 배우와 역할의 끈끈한 유대는 영화사 역사상 전례없는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다만, 이 영화 <로건>이 남기는 기억과 함의가 오로지 울버린의 마지막 유산(로라와의 관계) 그리고 뒷 세대에 남겨주어야 할 무언가에 한정시켜 감상하는 건 조금 아쉬운 일이다. <로건>의 이야기가 대폭 그런 식으로 서술되었지만, 그와는 별개로 <로건>에서 기억하고 주목해야 할 건 어디까지나 로건 그 자체다.
로라(다프네 킨)의 등장은 사실 마지막 울버린 시리즈라는 관점에서 지켜보면 그렇게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끝과 새로운 시작의 축에서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건 미래로 이어지는 한 줄기 희망이다. 로라의 등장은 새로운 울버린의 등판과 미래를 향한 힘찬 암시, 즉 희망으로서 아주 당연한 일이다. 로라의 능력인 아다만티움 클로와 재생력(힐링 팩트) 역시 로건과 똑같이 설정한 건, 둘을 가장 쉽게 직결해줄 수 있는 요소로서 봤을 때 아주 당연한 선택이다. 만약 로건이 작중에서 그냥 민간인을 돕는 과정을 그렸다면 이 영화는 쉽게 공감받지 못했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로건과 로라는 뮤턴트임과 동시에 같은 유전자를 공유하는 어수룩한 혈연관계이기 때문에 공감대가 성립하는 것이다.
끝내주는 만듦새에 비해 사실 <로건>의 스토리라인은 진부하고 뻔하다. 어른이 아이를 지키기 위해 필사적인 일련의 스토리나, 영화 <셰인>을 언급하며 영화의 주제를 암시하는 듯한 장면은 서부극이라는 황량한 배경과 맞물려 향후 전개에 뚜렷한 결말을 제시한다. 그래도 다행인 건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이야기가 마지막 울버린이라는 아쉬운 끝맺음을 통해 조금씩 이야기를 세정해가는 점이다. 또한 기존 <울버린>시리즈에서 보기힘들었던 로건의 박복한 전투씬과 지워지지 않는 생채기를 통해 그의 노쇠를 실감하게되어 저절로 집중하게되는 무언가가 있다. 로라의 뜻에 쉽게 저항하지 못하는 로건의 낯선 아량 역시 영화 <로건>을 통해서만 볼 수 있는 또 다른 신선함이다.
<로건>을 통한 감상은 차기 울버린으로 대두되는 로라의 존재로 응축된다. 하지만 절대 간과해선 안되는 건 <로건>이 어디까지나 로라와 로건의 애증관계를 우선적으로 묘사한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무엇보다 프로페서X - 찰스 자비에의 존재가 있기에 이 다음인 로건-로라의 관계가 가능했다. 로건의 상관이자, 정신적 지주 그리고 가족이기도 한 찰스 자비에는 그 무엇보다도 로건이 지켜내야 할 대상 1순위다. 그와 함께 한적한 요트 위에서 생을 마감하고자하는 로건의 바램은 어디까지나 찰스와 함께가 전제다. 많은 동료를 잃고 마지막으로 남은 찰스를 어떻게든 지켜내기위한 그의 노력은 로라를 지켜내려는 노력을 상회할정도로 눈물 겹다. 로건과 로라가 어디까지나 아버지와 딸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그려내고 있다면, 그 전에 <로건>에서 찰스 자비에와 로건은 이미 아버지와 아들같은 관계다. <엑스맨>시리즈 그리고 <울버린>시리즈를 통틀어서 둘 사이의 관계가 이렇게 묘사된 적은 처음이었다.
둘 사이의 간절함은 로라가 적에게 끌려가는 장면에서 아주 잠시동안의 갈등을 통해 장면으로 비춰진다. 로건은 로라를 구해야 할지, 우선 찰스의 안전을 살펴야할지 고민하다 찰스쪽으로 먼저 향한다. 어디까지나 그에게 있어 찰스가 먼저인 것이다. 그 다음이 로라다. 이제 만난지 7일된 로라에게 베풀 온정따위 없다는 식으로 말하는 로건의 대사는 욱해서 터져나온 말이기도 하겠지만 진심에 가까운 말이다. 그리고 찰스의 죽음으로 현실을 저주하는 로건의 절규는 모든 시리즈를 통틀어서 유례없는 통곡이다.
찰스 자비에의 존재는 노쇠한 로건에게 있어 삶, 그 자체다. 찰스는 그를 이해해줄 수 있는 마지막 가족이었다. 시잘떼기 없는 일상대화와 건강을 확인하는 서투른 말다툼에서 우리는 이 둘의 끈끈함을 발견할 수 있다.
로라를 향한 로건의 감정은 이 순간을 거치고나서야 비로소 확실해진다. 모든걸 다 잃은 고독한 전사에게는 아직 지켜야할 마지막 희망이 존재했다. 이는 자신의 딸로 암시되는 로라의 존재다. 구태여 엑스맨 코믹스 결말에서 환기하는 ‘에덴’은 허구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투덜대며 로라를 그곳으로 바래다주는 로건의 모습은 찰스의 곁을 지켰던 그의 모습과 동일하다. 로건은 찰스를 잃고 로라를 찾은 것이다.
로건이 자식에 대한 어떤 부성애 혹은 뭉클함이 마구 분출되어 로라를 끝까지 지켜냈다는 건 치우친 감상이다. 로건과 로라의 관계는 어디까지나 가까워질 여지만 열려있던 타자에 가까웠다. 찰스의 죽음과 서부의 황야에서 종착점을 의미하는 에덴의 상징이 이 둘을 잇게끔 만든 것이다. 이는 찰스가 로건에게 계속해서 어르고 달래기도 했던 로라를 향한 책임감이기도 하겠지만, 보다 확실한 건 찰스의 부재와 로건이 자신의 존재의의를 명확하게 하기위한 최후의 선택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해서 로건이 오로지 책임감만을 짊어지고 로라를 지켜낸 건 아니다. 마지막의 마지막에가서 로건은 죽음을 직시하는 순간, 어떤 사실을 깨닫는다. 그건 살아온 세월에 크게 짓눌렸던 아주 보편적인 감정이다. 사랑의 감정이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생각하고 아낄 줄 아는 온정어린 감정이다. 로건은 이를 죽음과 맞바꿔서 깨닫는다. 그리고 로라를 그제서야 제 딸로 명확하게 인식한다. 로라 역시 그제서야 로건을 향해 닫았던 마음을 활짝 연다. 이 순간이 정말로 아름답다. 슈퍼히어로 영화에서 한계가 명확했던 휴머니티가 이만큼 깊은 인상을 남긴적은 거의 없었다. <로건>이 유일하다. 수많은 액션과 현실답지 못한 설정에서 기인하는 감정의 반작용은 슈퍼히어로 영화의 한계였다. 하지만 <로건>은 달랐다. 고착된 틀을 깨고 경계를 확장했다. 동시에 <울버린> 그리고 <로건>이라는 시작과 끝을 통해 슈퍼히어로 한 명의 삶을 하나의 전기로 포장했다. 이는 그 어떤 영화도 해내지 못했던 훌륭한 마무리다.
로건의 존재의의는 엑스맨을 통한 인간과 뮤턴트의 공생관계 구축 그리고 이에 거스르는 악당들을 하나 둘 처단해감으로서 증명되었다. 그렇기에 울버린이었다. 그의 단단하고 날카로운 클로는 스스로의 믿음을 구현하는 창이었고, 남다른 회복력은 그의 존재를 굳히는 방패였다. 하지만 늙고 나약해진 그에게는 더이상 이렇다할 창과 방패가 없었다. 무력을 잃은 <로건>에서의 그는 그 여느 때보다 무력했다. 나약한 늙은이에 불과했다. 하지만 과거(찰스 자비에)를 떠나 보내고 미래(로라)를 만났을 깨, 그는 너덜해진 몸을 이끌고 전에 없던 존재감을 과시한다. 찰나의 순간이지만, 그의 존재감은 더없이 확실했다. 그는 살아있었다.
차별을 전제로 끝없는 비난과 미움을 받고 살았던 그는 사람이기를 버린지 오래였다. 그렇지만 그런 그에게도 늘 한 켠에는 목마름이 있었다. 사람답게 사는 것. 그는 죽음을 앞둔 마지막에 가서야 끝내 자신 역시 한 명의 인간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미래(로라)를 향해 벅찬 미소를 날린다. 이 순간 우리가 기억하는 울버린은 모든 억압과 고통에서 벗어난다. 버티고 인내하기 바빴던 한 명의 인생이 여기서 끝난다. 더없이 숭고한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