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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uruvuru May 21. 2017

실패한 신세계 아류, 영화 <불한당>

영화 <불한당> / 변성현 감독

설경구와 임시완. 엉뚱하기는 해도 듣는 것만으로 떨리는 이 조합에 극장을 방문하는 관객들에게 영화 <불한당>이 선사할 퍼포먼스의 끝은 헤아리기 어렵다. 두 사람의 케미는 분명 절묘했다. 그러나 얼마 안가 와해되고 말았다. 첫인상만큼이나 모호했던 두 사람의 분위기는 극 초반부에 잘 맞물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클라이맥스로 다가갈수록 두 배우의 서로 다른 호흡법을 고려하지 않은 채 오로지 이야기로 구성된 어설픈 관계만을 향해 내달리고 말았다. <불한당>은 실패한 영화다.


칸에 초청된 영화라는 기사만으로 <불한당>은 가슴 벅찬 영화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칸의 분주한 일정을 다 마치고 숱한 평가와 별점 세례로 격하당할 생각을 하면 눈을 감을 수밖에 없다. 국내에서라도 억지로 흥행 공식에 맞추기 위해 스크린을 과다 독점시킨 건 마치 영화 제목처럼 나쁜 놈들의 조바심을 상징하는 것만 같다. 돈이 많이 들어간 만큼 티켓으로라도 면죄부를 달아야 하는 <불한당>의 이익 분기점은 넘기 힘든 난관으로 보인다.

<불한당>은 전형적인 한국형 느와르다. 반전이 있고, 액션이 있고, 사회의 암흑 지대가 묘사되어 있다. 여기까지는 문제없다. 흔히 볼 수 있는 설정이지만 느와르는 이야기를 어떻게 짜집고 긴장을 불어넣을 것인지가 중요하다. 사실 한국형 느와르는 결국 거기서 거기인 이야기고 그 안의 디테일, 반전과 영화 속 미학을 사용해 승부를 보는 식이었다. <불한당> 역시 그런 시도가 눈에 띈다.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 차 위에서 설경구와 임시완을 부감하며 우측으로 제목을 띄우는 씬은 명백히 전과 후를 의식한 이 영화의 가장 도드라지는 미장센이었다. 그 외에도 <불한당>은 다양한 시도를 통해 신선한 연출을 꾀었으나 기교를 부리는 정도로 끝나고 말았다. 더구나 자꾸만 <신세계>를 생각나게 만드는 이야기 속 구도는 분위기가 조금 가벼울지라도 영락없이 성공한 느와르 <신세계>를 하나부터 열까지 학습한 듯한 모습이 보인다.

<신세계>는 좀처럼 늘어지지 않는 영화였다. 이는 세 명의 인물이 자아내는 팽팽한 줄다리기에서 비롯된다. 경찰인 최민식, 조폭 황정민, 그리고 이 둘의 중간지대에서 고통받는 인물인 이정재의 피 말리는 영역 다툼에서 비롯된 긴장이었다. <신세계>와 <불한당>을 끼워 맞춰보면 이정재역을 임시완이 했다고 봐야 하고, 황정민 역을 설경구가 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배역과 구도 상 그렇다. 그러나 <신세계>는 주인공 두 명을 제외한 제3의 인물이 분명 있다. 최민식이다. 그러나 <불한당>은 최민식 같은 캐릭터가 없다. 그나마 역할 상 비슷한 포지션에 있는 팀장 천인숙(전혜진)이 있지만, 영화 속 팀장 역인 배우 전혜진의 카리스마는 최민식과 비교했을 때 현저하게 떨어지며, 그녀의 연기는 상상 이상으로 어색하다. <불한당>이 알맞은 균형의 삼각구도 조성에 실패한 이유다.


또 갖가지 깜냥을 짊어지고 고통을 감내해야만 했던 이정재 포지션의 임시완은 애당초 짊어진 거라곤 달랑 한 식구 어머니뿐이라 그가 고려해야 할 삶의 무게는 결코 크지 않다. 그의 대의는 결국 타의에 조작된 가벼운 의지다. 더구나 설경구는 묵직한 캐릭터에 반해 황정민 같은 날이 바짝 선 캐릭터가 되지 못했다. 그의 잔인한 면모가 영화 속에서 충분히 드러나기는 했으나 적어도 광기 어린 수준까지는 번지지 못했다.

조금씩 부족한 캐릭터의 총량과 구도에도 불구하고 <불한당>의 문제들은 무겁게 잡지 않은 분위기 덕에 좌초를 면한다. 중간중간마다 피식 웃게 되는 지점은 이 영화의 유머 코드가 나름 성공적이라는 걸 내비치는 바다. 여기에 한재호(설경구)의 벗으로 나오는 고병갑(김희원)의 공이 크다. 주연 둘이 결코 만들지 못하는 종류의 유머 타입을 적시적기에 생산해내는 그의 역할은 상상 이상이다. 그가 없었다면 영화는 괜히 더 늘어지고 지루해졌을지도 모른다.


조폭 한재호(설경구)와 경찰 조현수(임시완)는 서로의 목적을 갖고 교도소에서 조우한다. 조현수는 한재호를 잡아야 하고, 한재호는 조현수를 따돌려야 한다. <불한당>의 묘미는 이 지점이다. 두 사람이 꽃피우는 거짓말의 암투 속에서 한 치 앞을 모르는 결말을 향해 내달리며 두 사람의 명운을 헤아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짓된 관계만큼 결말을 쉽게 그려볼 수 없는 것에 반해 캐릭터의 심적 고뇌는 간단하게 풀어진다. 이러한 이유의 근간에는 두 캐릭터가 상극을 달리는 것과 동시에 두 사람이 일차원적인 캐릭터로 상정됐기 때문이다. 조현수는 어머니를 잃고 나서 극도로 망가지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제 아무리 그에게 있어 어머니가 중요한 존재여도 대의를 깡그리 잊고 상대편으로 넘어가는 그의 유약한 모습은 영화 속 팽팽한 긴장을 조성하는데 오류처럼 작용한다. 반면 한재호는 그 누구도 믿지 않는 불신의 아이콘을 연기했으나 자신이 철저하게 속여야 만 하는 조현수에게 쉽게 정을 허락하고 말았다. 캐릭터 자체의 고약함 혹은 절대 악으로서의 이미지가 많이 상쇄되고 말았다. 인간적 면모가 짙게 그려진 바람에 느와르 특유의 마초적 향수가 상실됐다.


결국 이야기는 긴장 위에 구축되는 나쁜 놈들의 이야기라기보다 치졸한 복수극으로 마무리되고 말았다. 한 때, 신뢰하고 불신하기도 했던 서로의 헤아릴 수 없는 마음을 정확히 확인한 것도 아니다. 그저 분노로 점쳐지는 모종의 감정만을 이유로 서로를 헐뜯는 관계가 되고 말았다. 영화의 첫 장면, 한재호가 날리는 회심의 미소와 마지막 장면의 조현수가 지어내는 공허한 표정은 상징적으로 선명하게 대치되지만 마지막 장면으로 시선이 쏠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떠올릴 뿐이다. 복수극이구나. 혹은 <신세계>의 마지막 이정재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일종의 모사 혹은 아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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