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히든 피겨스> / 시어도어 멜피
<히든 피겨스>는 시종일관 통쾌하다. 상황을 전복시키는 주인공 3인방인 그녀들의 아등바등함이 서서히 결과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캐서린(타라지 P 헨슨)은 우주선 이∙착륙에 전산 컴퓨터 IBM 이상으로 정확한 측정값을 제시하고, 도로시(옥타비아 스펜서)는 프로그래밍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일찍 인지하여 선구자로 자리매김한다. 메리(자넬 모네)는 엔지니어가 되기 위해 꼭 거쳐야만 하는 대학 입학에 흑인 입학 차별 규정을 두고 전례 없는 판례를 이끌어 쾌거를 이뤄낸다. 피부색과 능력은 결코 무관한 관계임을 시사하는 이 영화는 그 어떤 상황에도 꿈을 잃지 않고 웃음을 잃지 않았던 그들의 눈부신 활약을 유쾌하게 담아냈다.
그러나 세 명의 주인공을 통해 만끽하는 유쾌한 면면의 이면엔 참담한 현실 문제가 자리한다. 인종 차별이다. 제 아무리 차별과 억압을 한사코 부정하더라도 그들이 감당해야 할 고통의 절대량은 줄지 않는다. 영화 속 이야기를 훑다 보면 가슴 미어질 정도로 그들의 고통을 대리체험할 수 있다. 다만, <히든 피겨스>는 연민으로 치우치는 매 순간마다 주인공들의 슈퍼 우먼 이미지를 형상화한다. 그 어떤 상황에도 굴하지 않고 꼿꼿한 자세로 임하는 그들의 당당함으로 문제를 풀어간다.
당당하게 맞서는 그들의 태도는 분명 <히든 피겨스>의 매력이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비극을 헤쳐나가는 그들의 모습은 관객에게 있어 희열이다. 악착같은 모습과 결코 주눅 드는 법이 없는 모습은 마치 위인을 형상화하기도 한다. 그러나 매 장면을 유쾌하게 전복시키는 것에 강박을 둔 나머지 시대적인 갈등 상황이 대충 마무리되는 경우가 있다. 이를테면 극적인 장면마다 삽입되는 퍼렐 윌리엄스의 곡들은 그의 노래 특유의 흥겨운 리듬에 따라 영화와 보는 이를 절묘하게 동화시키는 힘이 있는데, 너무 흥에 겨운 나머지 주인공들의 쾌거에만 시선이 머물게 된다.
전개와 관련해 이런 부분들이 문제처럼 드러나는 순간이 있다. 캐서린의 경우, 흑인과 백인으로 구별된 화장실을 그녀의 상관인 알이 부수는 장면을 꼽을 수 있다. 이는 <히든 피겨스>에서 꽤나 희열로 다가오는 장면이다. 전 날, 캐서린이 화장실로 인한 업무적 한풀이가 차별에 별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던 그에게 직격 했기 때문이다. 알의 행동은 인종 차별 문제를 입각시키는 진일보적인 장면이다. 하지만 이 장면만으로 캐서린이 마주해온 그간의 모든 고통을 위무했다는 듯 무심하게 지나치는 재빠른 시퀀스는 성찰의 깊이가 결코 깊지 못하다. 나머지 두 명도 마찬가지다. 도로시는 매번 좌충우돌하는 NASA 직원 비비엔의 부족한 사과를 쿨하게 받아들이는데 첨예하게 번질 것만 같았던 갈등을 대충 얼버무리고 넘어간듯한 느낌이 있다. 또 메리는 이렇다 할 극적인 장면이 없지만, 그녀가 처한 상황이 그저 흑인 여성의 백인 대학교 입학 전례를 뒤집는 것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 듯 넘어가는 점 역시 여러모로 아쉬운 부분이다.
주인공 3명 각각의 분량과 그들의 드라마 요소 그리고 이를 복기시켰을 때 실감하는 감정의 무게가 기존 인종차별을 다룬 영화들에 비해 다소 무딘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히든 피겨스>는 NASA라는 미국 거대 기업이 당면한 과제가 결코 ‘우주여행’과 ‘달 착륙’ 등. 커다란 목표만이 지향해야 할 점이 아니라는 걸 일깨워주는 면에 있어서 귀한 교훈을 담고 있는 영화다. 더구나 시대상으로 인해 그림자처럼 일을 해야만 했던 숨은 공신들의 이야기를 조명한 점은 현재 영화계의 트렌드와도 부합한다. 최근 <문 라이트>를 비롯해서 개봉되는 영화들의 흐름이 백인 주류 캐스팅에서 벗어나 흑인 조연들에까지 캐스팅 선택 폭이 넓어진 걸 생각해보면, <히든 피겨스>는 시기적으로 좋은 흐름 위에 있다. 또 <히든 피겨스>의 탄력을 받고 향후 영화들의 새로운 시도가 궁금해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히든 피겨스>의 문제의식인 당대 1960~1970년대의 인종차별과 그에 맞서는 당찬 주인공들의 힘찬 발걸음을 목격했다면, 그다음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건 현재에도 여전한 ‘여성’에 대한 문제다. 캐서린은 말한다. 굽이 있는 구두에 무릎을 넘지 않는 스커트가 그녀가 입어야 할 복장이라고. 화장실에 갈 때, 너무 먼 거리인데도 자전거를 탈 수 없다는 그녀의 서글픈 하소연은 무려 50년 전인 과거나 지금이나 별 다를 바 없이 여전한 직장 내 여성의 보수적인 관념을 시사한다. 이 문제는 현재 진행형이다. 많은 회사들이 직장 내 자율복장을 권고하지만 그에 버금가는 많은 회사들은 아직까지도 여성의 직장 내 복장에 엄격함을 권고한다. 캐서린의 말은 일련의 상황에 대한 하소연에 불과할지 몰라도 현실 문제로 환원하여 생각해 볼 때 그녀의 발언은 뼈 아픈 매질이 된다.
<히든 피겨스>의 시간대는 1960년대다. 반세기 전의 이야기다. 작중 잠깐 등장하는 킹 목사의 연설은 역사책에 기록될 만큼 오래된 이야기가 되었다. <히든 피겨스>는 옛날이야기다. 그러나 <히든 피겨스>가 떠안고 있는 문제는 지금도 유효하다. 인종 차별은 어느 정도 해소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코 완전이라고 할 수 없다. 더구나 여성 문제는 많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변화가 없는 실정이다.
인종 차별 그리고 그 이면으로 여성문제가 영화 속에 분명 있다. 다만, 인종 문제가 크게 부각되는 나머지 잘 보이지 않을 뿐이다. <히든 피겨스>는 피부색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주인공 3인방은 흑인이기 이전에 여성이기도 하다. 그들이 피부색으로 고통받은 건 사실이나 여성이기에 당한 무언가도 분명 있다. 영화는 시작 전에 띄운다. ‘Based on true event’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고. 현실이 영화처럼 유쾌할까? 현실은 지옥이 아니었을까? 사실은 알 수 없다. 그저 영화의 제목인 ‘히든 피겨스’와 같이 그들의 숨겨진 활약처럼, 그들이 마주했던 부당한 진실에 깊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것이 <히든 피겨스>가 껴안고 있는 문제들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