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운더> / 존 리 행콕
맥도날드 CEO 레이 크록에 관한 (어찌 보면) 전기 영화인 <파운더>는 자칫하면 오류에 빠질 수 있는 영화다. 그의 거만한 태도, 기만으로 물 오른 얼굴, 불도저 같은 성미도 불편함에 한몫을 하지만. 마치 고집불통 악덕 CEO를 대표하는 듯한 레이 크록이 맥도날드라는 친숙한 기업 이미지와 좀체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맥도날드는 ‘패스트푸드’라는 혁신적인 외식 개념으로 저렴한 가격에 빠른 식사를 제공했다. 이로 인해 세계 제일의 대중적인 외식 기업 이미지로 각인되었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파운더>를 경유해 알게 된 맥도날드의 실상은 레이 크록의 냉정한 사업 철학이 투영된 기업주의적인 횡포 기업에 불과하다는 결론으로 도달하게 된다. 미처 몰랐던 혹은 아직 다루지 못했던, 맥도날드 설립 비화를 다루는 이 영화는 기존 맥도날드에 대한 인식을 통으로 전복시킨다. 어쩌면 자사 맥도날드가 <파운더>의 개봉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인 홍보를 감행하지 않은 건 이런 이유 때문일지도 모른다.
맥도날드의 대항마인 거대한 치킨 제국 KFC가 ‘커넬 샌더스’라는 친숙한 기업가의 이미지를 전면으로 홍보에 내세운 반면, 버거 공화국 맥도날드는 CEO 이미지를 이용한 일례가 없다. 이름이 맥도날드(실제 사람 이름) 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맥도날드 이미지로 내세운 것이라곤 맥도날드 대표 색깔로 컬러 라이징 해 만든 흉측한 캐릭터인 ‘로날드’와 그 곁다리 친구들 뿐이었다. 레이 크록의 국지적이고 공격적인 사업 전개는 결과적으로 보았을 때, KFC를 압도하고 패스트푸드 업계 1위를 고수했다. 그러나 다소 포근한 이미지에서 출발하는 KFC의 캐릭터 마케팅에는 사실상 맥도날드는 단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다.
이기기는 이겼으되 일부는 패배한 셈이라고 할까. 그런데 이게 참.. 그러든 말든 맥도날드는 어찌 됐든 승자의 포지션에 서 있다. 전 세계적으로 KFC나 버거킹 그리고 기타 등등의 패스트푸드 체인이 맥도날드를 앞지를 거란 상상은 어렵다. 맥도날드는 명백히 1위를 상징한다. 전 세계를 아우르는 최고의 패스트푸드 체인인 것이다. 이런 밑바탕엔 또 어찌 됐든 레이 크록이라는 CEO가 있다. <파운더>는 정확히 맥도날드가 구축한 저력, 즉 부동의 1위에 대한 수수께끼와 더불어 맥도날드와 레이 크록의 만남을 설명하는 영화다.
밀크 셰이크 믹서기 외판원인 레이 크록은 우연히 한 레스토랑을 목격한다. 이름은 맥도날드. 테이크아웃 전문인 작은 레스토랑이다. 당시엔 전혀 볼 수 없었던 신 개념인 패스트푸드 시스템을 개발해 이용하고 있던 곳이었다. 주문과 동시에 음식이 나오는 스피디 시스템을 목격한 그는 단번에 이 시스템의 어마어마한 가치를 알아본다. 그는 주저할 것 없이 재빨리 맥도날드의 주인인 맥도날드 형제를 만난다.
미지의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 마냥 환희에 젖은 레이 크록은 그들에게 프랜차이즈 사업을 제안한다. 하지만 형제의 반응은 미적지근하다. 그들은 이미 사업 확장을 하고 실패한 경험이 있었다. 그들은 확장을 바라지 않는다. 현재의 작은 맥도날드로 충분하다고 이야기한다. 레이는 납득할 수 없다. 이 좋은 시스템을! 그는 포기하지 않는다. 갖은 경험(실패)으로 다져진 그의 안목이 맥도날드가 ‘답’이라고 외치고 있다. 그는 매일같이 형제를 찾아와 닦달한다. 프랜차이즈 = 답 = 맥도날드는 성공할 수 있다! 또 자신을 해낼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결국, 얼마 안가 맥도날드 형제는 레이의 집요함에 백기를 든다. 그의 대단하신 포부와 사업 수완에 맥도날드의 명운을 맡겨보기로 결심한다.
손만 대면 실패한 이력이 있던 레이 크록이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맥도날드와의 만남은 그를 바꾸어 놓았다. 하나 둘 매장을 내놓더니 머지않아 곧 미국 전역으로 사업을 확장하게 이른다. 가진 거라곤 신박한 시스템 하나뿐인 시골의 외딴 레스토랑 치고는 조금 거창한 확장이다. 레이는 의욕만 앞서는 어설픈 장사꾼일까? 그렇지 않았다. 그는 남 모를 확신이 있었다. 이는 ‘맥도날드’라는 입에 착 감기는 타이틀과 맥도날드의 상징이 될 거대한 황금색 아치 때문이다. 그는 프랜차이즈의 명운은 ‘상징’에서 비롯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놀랍게도 그런 상징이 눈 앞에 있었고 그는 단박에 알아봤을 뿐이었다.
그가 생각하는 성공의 조건을 전부 갖춘 맥도날드는 무서울 속도로 확장을 거듭한다. 이전 맥도날드의 모습은 전혀 없다. 원래 주인은 황당하다. 맥도날드 형제는 맥도날드가 진즉에 자신의 손을 떠나갔음을 깨닫는다. 이로 인해 형제와 레이 크록은 엇갈린다. 맥도날드를 걸고 대판 싸움이 벌어진다. 그러나 레이 크록의 집요함 그리고 지독함이 결국 형제를 무릎 꿇게 만든다. 애써 일궈왔던 모든 걸 한 순간 잃게 된 형제는 레이를 향해 소리친다. “네가 맥도날드를 위해 한 게 뭐가 있어?” 레이는 반박한다. “나는 승리의 콘셉트를 만들었어(씨익)”.
맥도날드에는 감춰진 메뉴가 있다. 눈 앞의 전광판에 적시되지 않은 메뉴다. ‘미소’다. 황당하지만 맥도날드 직원에게 미소 하나를 달라고 하면, 그들은 서비스 정신을 꾹 눌러 담아 환하게 웃어준다. 그 웃음의 의미를 <파운더>를 통해 설명하는 건 무리일까. 승리의 콘셉트로 전 세계를 호령해버린 맥도날드는 분명 우리의 편의를 위해 이바지했다. 매일 전 세계 인구 1%의 식사를 책임진다고 한다 할 말 다한 셈이다. 그러나 맥도날드의 대단한 성취 이면에는 거북한 사실들이 있다. 가려진 CEO, 이름만 남기고 사라진 맥도날드 형제, 꽁꽁 감춰진 메뉴 등. 표면에는 잘 보이지 않는 사실들이다. 그러니까 마치 이건 회심의 미소와 같다. 그 어중간한 미소는 도대체가 의중을 알 수 없다.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니까. 뭔가 있는거다. 맥도날드는 가끔 섬뜩해보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