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남부여행] 이곳은 천국보다 먼저 창조되었다

by 홍윤표

1일 1수영을 하기로 했으니 오늘은 구글지도로 눈여겨봤던 다른 해변으로 가보기로 했다. 폴리냐노 아 마레에서 남하하여 모노폴리를 좀 더 지나면 나오는 '포르토 마르자노 해변(Porto Marzano Beach)'은 수심이 낮고 비교적 해변 바닥이 험하지 않아서 유라와 놀기에 적합한 곳이었다. 차로 20분 남짓 거리라서 오전에 물놀이를 하고 오후에 모노폴리에 들렀다가 폴리냐노 아 마레로 돌아오기로 했다.

포르토 마르자노 해변 옆에는 아주 커다란 노상 주차장이 있는데 구글 리뷰로는 관리가 되는 곳 같았지만 막상 가보니 관리인도 없고 문도 개방되어 있었다. 아주 넓은 공간에 띄엄띄엄 차들이 주차되어 있어서 우리도 한 구석에 주차를 하고 해변으로 나갔다.

아주 작은 규모의 해변이기 때문에 현지인들도 그리 많지 않았다. 우린 그늘진 곳에 자리를 깔고 곧바로 바다로 들어갔다. 수심이 낮고 물고기도 꽤 있고 파도도 잔잔해서 우리 셋은 물에 동동 떠다니며 여유롭게 물놀이를 했다. 유라가 이젠 바다 수영에 완전히 적응해서 이리저리 물고기를 따라다니고 숨 참기 놀이 같은 것도 하며 물을 즐기는 모습이 흐뭇했다.

한적한 해변가에서 늦여름을 여유롭게 즐기는 사람들

두 시간 정도 물놀이를 하고 나오자 오후 1시가 되어갔다. 우린 점심을 먹기 위해 근처 모노폴리로 향했다. 모노폴리는 내가 이탈리아 여행을 결심한 계기가 된 정승민 작가님의 <우리만의 사적인 아틀란티스>에서 작가님이 머무는 베이스캠프 도시였기에 상당히 궁금했던 곳이었다. 여행 계획을 짤 때 마지막 숙소를 폴리냐노 아 마레와 모노폴리 둘 중에서 어디로 잡을지 끝까지 고민하기도 했었다. 그만큼 모노폴리는 이번 여행에서 내 마음속에 꽤나 큰 비중을 차지한 곳이었다.

차로 10분 정도 이동하여 미리 봐두었던 주차장에 주차를 했다. 비가 오려고 하는지 하늘이 어두웠다. 이탈리아에 와서 하루 빼고는 매일 날씨가 쾌청했는데 모노폴리에 오자마자 날씨가 꾸물해져서 마음도 꾸물해졌다. 주차장에서 모노폴리 구도심지까지는 도보로 꽤 걸어야 해서 구글지도를 보며 찾아갔다. 구도심지 초입에 자리한 식당의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피자, 오레끼에떼, 감자튀김, 닭고기를 주문하고 있자니 하늘에서 옅은 비가 흩뿌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다행히 우리 자리엔 머리 위에 차양이 드리워져 있어서 그대로 야외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이상하게 파스타와 피자, 감자튀김 등 밖에서 먹는 메뉴가 매일 비슷한데도 질리지 않았다. 조미료나 소스를 최소한으로 넣고 재료 본연의 맛을 중시하는 이탈리아의 조리문화 때문인 것 같았다. 다른 나라에 여행 갔을 때는 여행 중반쯤 되면 현지 음식이 물려서 한국의 맛을 그리워하게 되는데, 그런 걱정을 더 했던 이탈리아 음식이 이렇게 잘 맞을 줄은 몰랐다.

모노폴리에서의 점심

식사를 마칠 때쯤 비가 그쳤다. 우린 모노폴리 마을을 가볍게 산책해 보기로 했다. 우리가 들렀던 식당에서 더 안쪽으로 들어가자 좁은 골목과 작은 광장으로 이뤄진 아담한 모노폴리의 속살이 드러났다. <우리만의 사적인 아틀란티스>에서 작가님이 모노폴리 예찬을 하셨는데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됐다. 그동안 크고 작은 이탈리아 마을을 돌았지만 모노폴리는 그곳들과는 또 다른 매력을 품고 있었다. 훨씬 아담하고 옹기종기하고 소박한 얼굴이었다. 폴리냐노 아 마레가 반에서 제일 예쁘고 화려한 친구라면 모노폴리는 작고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안경알 속을 자세히 보면 매력적인 눈을 가진, 그런 친구 같았다.

처음에는 하늘이 어두워서 불만이었지만 어딘지 어두운 하늘과 모노폴리의 색깔이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거의 모든 건물이 사막의 모래빛을 띠고 있어 하늘과 도시가 서로 잘 붙는 모노톤을 이루는 것 같은 묘한 풍경을 자아냈다. 그렇게 하늘과 도시를 구경하며 광장에 있는 젤라토 가게에서 입가심으로 젤라토를 먹고 산책을 계속했다.

좁은 골목길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보니 짠 하고 작은 항구가 나타났다. 작고 아담한 이 도시는 그에 걸맞게 아담한 항구를 꼬옥 품고 있었다. 항구를 구경하고 있는데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폭우는 아니라서 우린 비를 맞으며 도시를 거닐었다. 골목길을 걸으면서 가벼운 비가 옷을 적시는 속도로 우린 이 도시의 매력에 조금씩 스며들었다. 아, 이 도시에서 머물렀어도 좋았겠구나. 폴리냐노 아 마레와 모노폴리 두 군데에서 모두 숙소를 잡았어도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작은 광장에 있던 젤라토 가게 내부와 가게가 자리한 작은 광장
모노폴리가 품속에 품고 있던 아담한 항구
항구 옆으로 길게 늘어선 해안 산책길을 따라 가다 보면 무너진 성벽과 그 안에 있는 오래된 대포도 볼 수 있다.
예쁜 골목과 집 앞에서 열심히 유라 사진을 찍었다.
저렇게 좁은 골목에 차를 어떻게 주차시키는지 궁금했다.
어딘지 사막의 모래빛을 연상시키는 모노폴리의 건물들
<우리만의 사적인 아틀란티스>를 보면 맨발로 동네를 걸어다녔다고 하는데 그만큼 바닥이 맨들맨들했다.

비에 기분 좋게 젖으며 모노폴리 산책을 마치고 주차한 곳으로 돌아오니 오후 4시였다. 우린 숙소로 돌아와 비에 젖은 몸을 씻고 조금 쉬었다.

저녁 7시 30분쯤 숙소에서 나왔다. 하지만 배가 고프지 않아 저녁은 안 먹고 대신 이탈리아의 식전주 문화이 아페리티보(Aperitivo)를 즐겨보기로 했다. 우리의 아페리티보라고 해봤자 그냥 맥주나 먹는 거지만...... 폴리냐노 아 마레 구도심지의 광장에는 이런저런 식당과 바들이 둥그렇게 모여 있는데 그중 적당한 곳에 들어가 맥주 두 잔을 시켰다. 자리에 앉고 나서 구글평점을 보니 평이 영 좋지 않았다. 너무 비싸다는 게 혹평의 주요 이유였다. 우린 맥주를 마시고 조금 앉아 있다가 시내 구경을 하고 기념품을 사기로 했다.

기념품 가게에서 유라와 나는 각자 라마 모나킬레 해변 미니어처와 도메니코 모듀노 동상 스노볼을 사고 어머니 선물로 꽃병도 골랐다. 광장을 나와서는 노점에서 파는 기념 팔찌를 샀다. 사실 이런 기념품들은 집에 가면 잘 보지도 않고 팔찌도 한국에서 착용할 일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평소라면 절대로 사지 않을 것들을 여행지에서 사는 재미도 있다. 잉여스러움이 주는 짜릿함. 이런 것도 여행지에서의 작은 일탈이라면 일탈이지 않을까.

폴리냐노 아 마레와 알베로벨로에서 산 기념품을 나란히 모셔두었다. 팔찌는 현재 유라의 책가방에 걸려 있다.

폴리냐노 아 마레의 밤을 산책하는데 바닷가 풍경이 보이는 어느 조그만 바 근처의 오래된 나무문에 이런 글귀가 쓰여 있었다. "Questo Luogo è stato creato prima del Paradiso (Mark Twain)” 스마트폰으로 번역기를 돌려 보니 이런 뜻이었다.

'이곳은 천국보다 먼저 창조되었다'

마크 트웨인이 폴리냐노 아 마레를 묘사하며 저런 말을 남겼다고 하는데 진위 여부는 모르겠다. 하지만 출처야 어떻든, 저 말에는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분명 세상에는 이곳보다 훨씬 아름다운 곳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여기에 있는 지금 이 순간만큼 이곳이 바로 천국이었다. 밤하늘과 밤바다가 하나가 되고, 오렌지빛 조명들이 도시를 밝히고,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사랑을 하고, 그리고 우리 가족이 함께 있는 곳.

천국은 멀리 있지 않다.

'이 곳은 천국보다 먼저 창조되었다.' 우리 셋이 함께 있어 이곳이 바로 천국이지 않을까.


이전 26화[이탈리아 남부여행] 우리의 밤은 화려한 불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