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남부여행] 우리 차로 즐기는 사파리 투어

by 홍윤표

어느새 여행의 막바지다. 내일은 아침에 바로 공항으로 출발해야 하니 여유 있는 아침은 오늘이 마지막인 셈이다.

그동안 아침에 베란다에 앉아 있으면 해안길을 따라 달리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어제는 아내도 혼자 아침에 일찍 일어나 해안길을 따라 달렸는데 너무 좋았다고 하길래 오늘은 나도 달려보기로 했다. 비가 오려는 건지 하늘이 어두웠지만 비가 오면 그냥 맞자는 생각에 일단 나섰다.

우리가 매번 가는 구시가지 방향과는 반대 방향으로 가봤다. 이 길 끝엔 뭐가 있을지 궁금했다. 몇몇 레지던스 숙소와 민가들이 드문드문 있고, 해안에는 바위절벽과 그 사이에 숨은 작은 해변들이 보였다. 아직 이른 아침이라 사람은 없었다.

시원한 해풍을 맞으며 눈에 한가득 푸른 바다의 절경을 꾹꾹 눌러 담았다. 한국에서도 하지 않는 아침 달리기를 먼 이국땅에서 하고 있으니 괜히 설레었다. 조금씩 차오르는 숨이 묘한 설렘과 흥분을 부추겼다. 처음 가보는 이 길이 어디로 이어졌는지, 골인 지점도 없는 이 달리기의 목적지가 어딘지, 아무것도 정하지 않고 그냥 바다만 바라보며 달렸다. 목적이 없는 달리기란 이렇게 편하고 재밌는 거구나. 사람들이 그렇게 달리기에 푹 빠지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길은 좁은 골목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골목의 끝엔 아주 조그만 항구가 있었다. 항구라고 해야 할까, 작은 페달 보트 두어 척만 매여있었다. 그 옆엔 세련된 바가 있었는데 아직 영업 전이라 모든 탁자에 의자가 얹혀 있었다. 아마 어젯밤엔 많은 사람들이 즐기며 웃고 떠드는 소리가 여길 가득 매웠겠지. 지난밤의 화려함이 쓸려 나간 뒤의 아무도 없는 조용한 바다와 문 닫은 바는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었다. 조금 둘러보다가 아침의 고요한 바다가 깨지 않게 조용히 발을 돌려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숙소에서 나올 땐 어두웠던 하늘이 조금씩 개고 있었다. 밤새 구름을 덮고 있던 하늘의 누군가가 아침에 일어나 구름 이불을 걷고 있는 것 같았다.

올 때는 바위 해변에 아무도 없었는데 어느 부지런한 관광객이 혼자 바위 사이에 비치타월을 깔고 누워 책을 보고 있었다. 바위 절벽 틈에 폭 안긴 작은 해변, 그리고 또 그 해변 안에 폭 안긴 부지런한 사람. 사람도 자연의 일부가 돼버리는 멋진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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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달리기를 했던 길과 이때 마주쳤던 조그만 해변. 이때는 사람이 없었는데 돌아오는 길에는 어느 부지런한 사람이 해수욕을 하고 있었다.
20250911_103303.jpg 아침 달리기 끝에 마주한 조그만 항구. 페달보트 두세 척이 메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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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로 돌아오는 길. 마치 누군가 구름 이불을 걷는 듯이 비구름이 걷히며 하늘이 개고 있었다.

달리기를 하고 오자 아내와 유라는 이미 일어나 있었다. 오늘은 뭘 할까 아침을 먹으면서 고민하다가 며칠 전 알베로벨로의 숙소로 가는 길에 봤던 동물원 표지판이 생각났다. 검색해 보니 거리도 멀지 않았고 평도 상당히 좋았다. 뭣보다 우리나라보다 훨씬 싼 가격에 사파리 투어를 할 수 있다는 평이 있어서 가보기로 했다.

유라가 가장 좋아하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가 물놀이라면 다른 하나는 동물이다. 오늘은 물놀이를 안 하는 대신 동물 구경을 가자고 했더니 유라가 무척 신이 났다.

차로 이동하며 매표소를 통과해 표를 사고 그대로 동물원으로 입장했다. 한 줄로 서서 천천히 이동하는 차들을 따라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앞에서 차들이 멈추길래 봤더니 사슴과 , 염소 등 초식동물들이 자유롭게 거닐며 차로 접근했다. 겁 없이 차 가까이 붙어 차창 안으로 고개를 들이미는 녀석들에게 오히려 우리가 겁을 조금 먹었다. 철창 속에 갇혀 있지 않고 자유롭게 거닐며 사람들에게 스스럼없이 다가오는 동물들이 신기해서 우린 연신 차를 세웠다.

이곳은 이렇게 개인 차로 이동하며 동물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동물원이었다. 한국과는 크게 다른 방식이 신기하면서도 무척 재밌었다. 유라뿐 아니라 아내와 나도 이렇게 가까이서 동물의 얼굴을 마주하는 게 처음이라 무척 즐거웠다.

초식동물 구역을 지나가자 곧이어 사자가 나왔다. 육식동물 있는 곳엔 철창 같은 가림막이라도 있을 줄 알았는데 초식동물 구역처럼 아무것도 없었다. 처음에는 창문을 열기가 무서웠지만 사자들은 우리 사람들에겐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사자 앞에서 조용히 창문을 내리고 사자를 바라보았다. 심드렁한 표정의 백수의 왕을 마주하고 있자니 두려움과 호기심이 동시에 일었다. 그다음은 호랑이였다. 호랑이도 사자와 마찬가지로 우리에겐 관심이 전혀 없었다. 그늘 아래에서 쉬고 있는 그들을 먼발치서 바라보다가 우리가 괜히 그들의 구역을 무례하게 침범한 것 같아서 얼른 차를 움직였다.

그 외에도 기린과 코끼리, 곰, 얼룩말, 낙타 등 다양한 동물들이 여기저기 자유롭게 드러누워 있었다. 육식동물들은 우리에게 아무런 관심을 주지 않았는데 유난히 초식동물들만 차로 다가와 차창 안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아마도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초식동물들에게 먹이를 줘서 그런 것 같았다. 우린 따로 먹이를 사지 않았기 때문에 녀석들이 얼굴을 내밀어도 줄 게 없어서 "미안"만 연발했다. 눈치 빠른 녀석들은 우리가 먹이가 없는 걸 금세 알아채고는 미련 없이 다른 차로 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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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창 안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가 먹이가 없는 걸 알고 미련없이 떠나는 사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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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 얼굴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건 처음이었다. 여기저기 무기력하게 누워있는 백수의 왕.

사파리 투어가 끝나면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동물원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동물원이지만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고 놀이기구와 카페테리아가 같이 있었다. 조금 돌아다니다가 열차를 타고 원숭이 마을 구경하는 체험이 있다고 해서 해보기로 했다.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열차를 타고 지나가면 원숭이들이 어디선가 나타나 철조망에 매달리면 사람들이 미리 구매한 땅콩을 주는 그런 체험이었다. 우린 땅콩을 미리 안 사서 그냥 구경만 하고 있었는데 옆에 있던 어느 남성이 그냥 구경만 하고 있는 우리가 안 돼 보였는지 땅콩 한 봉지를 흔쾌히 줬다. 우린 고맙다고 인사하고 원숭이들에게 땅콩을 줬다. 그런데 열차가 어느새 종착지에 와버려서 땅콩이 많이 남았다. 그냥 버리기가 아까워서 동물원 구경을 하며 땅콩을 몇 개 먹어봤는데 의외로 엄청 맛있어서 결국 내가 한 봉지를 다 먹어버렸다.

원숭이 마을을 나와서 다른 곳으로 이동했는데 아까 우리에게 땅콩을 준 남성이 가족들과 함께 이동하는 게 보였다. 그런데 신이 난 다른 가족들과는 달리 짐을 한가득 들고 가족들을 따라다니는 그의 표정이 매우 힘들어 보였다. 가족들이 동물들을 구경하는 동안 뒤로 물러나 의자에 앉아서 아무 생각 없이 멍하게 앉아 있는 그의 모습을 보자니, 동물원에 온 아빠들은 어느 나라를 가나 저런 텐션이구나 싶어서 괜히 웃음이 났다.

난 땅콩을 많이 먹어서인지 배가 별로 고프지 않아서 점심으로 가볍게 카페테리아에서 피자와 빵을 사 먹었다. 동물원에 온 게 11시쯤이었는데 벌써 3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오늘이 이탈리아 여행의 마지막 날이라 오후에 풀리아의 주요 도시이지 우리가 풀리아로 올 때 공항을 이용했던 바리에 가볼까 했는데 유라가 많이 힘들어 보여서 그냥 폴리냐노 아 마레로 돌아가기로 했다.

동물원을 나서는 길에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듯이 유라가 인형 가게 앞에서 멈춰 섰다. 이미 이탈리아에 와서 인형을 두 개나 샀기 때문에 더 이상 인형은 없다고 했지만, 이왕 여행 왔으니 기분 좋게 사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서 하나 고르라고 했다. 집에 있는 수많은 동물 인형 중 유일하게 원숭이가 없다며 원숭이 인형을 사고 친구 선물로 동물 연필도 같이 골랐다. 새로 생긴 인형 친구를 안고 한껏 기분이 좋아진 유라를 뒤에 태우고 우린 폴리냐노 아 마레로 돌아갔다.

거기에 이탈리아에서의 마지막 밤이 기다리고 있었다.

KakaoTalk_20251014_180513386_03.jpg 동물원 입구에 있던 풀리아 지방 주요 도시 지도. 많이 가봤다고 생각했는데 이 지도를 보니 못 가본 도시가 아쉬웠다.
KakaoTalk_20251014_180513386_05.jpg 뭐에 홀린 듯이 인형 가게로 끌려 들어가는 유라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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