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덩이

by 홍윤표
카메라: OLYMPUS OM-1 / 필름: Kodak Colorplus 200 / 일자: 25.12.

저희 집은 30년도 더 된 오래된 아파트 단지입니다. 아파트 단지 곳곳에 오랜 세월을 느낄 수 있는 흔적이 많죠. 가령, 자동차의 바퀴 자리 그대로 움푹 들어간 주차장 바닥 같은 것 말이죠. 오랜 시간 바퀴에 짓눌린 아스팔트 바닥이 저렇게 꺼져서 웅덩이가 됐습니다.

웅덩이를 보면 새삼 시간의 무게를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흐르는 시간이 바퀴가 짓누르는 바닥에 잠시 고였다 가는 거 같습니다. 고여있는 빗물이 꼭 시간 같습니다.

시간은 흐르지만 가끔 저 빗물처럼 고이는 시간들이 있습니다. 고이는 시간을 우리는 기억이라고 부릅니다.

어렸을 땐 지나간 기억보다는 다가올 시간을 맞이하느라 정신없습니다. 나이를 조금씩 먹으니 제 안에 쌓여가는, 고여가는 기억이 너무나 많습니다. 너무나 많아 넘쳐흐를 지경입니다. 고인 기억 속에 우린 먼저 떠난 고인들을 고이 묻습니다.

고여있는 기억에 첨벙 바짓단이라도 적시는 날이면 그날은 하루 종일 젖어 지냅니다. 웅덩이는 생각보다 깊어서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습니다.

넘쳐흐르는 기억을 눈꺼풀로 꾹 눌러 담습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눈물이 많아진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우린 모두 눈꺼풀 안에 물 웅덩이를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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