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이사한 집의 엘리베이터에는 이상한 경고문이 붙어 있다.
<이 엘리베이터는 6층으로 가지 않습니다. 누르지 마세요.(이상한 곳에서 내리게 됩니다.)>
이상한 점은 두 가지였다. 일단 이 건물은 5층짜리 오피스텔이다. 우리 집이 5층이다. 6층은 없다. 두 번째로, 그런데도 엘리베이터에는 버튼이 6층까지 있다. 공사가 잘못되어 버튼을 하나 더 만든 건가? 그래서 누르지 말라는 경고장을 붙인 건가. 아니, 그렇다면 이상한 곳에서 내린다는 건 뭐지? 아무튼 엘리베이터를 탈 때마다 이 이상한 경고문 때문에 괜히 오싹한 기분이 들곤 한다.
그날은 밤늦게까지 회식이 있던 날이었다. 택시를 탔을 땐 이미 새벽 한 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택시 기사님이 깨우는 소리에 잠에서 깨 부랴부랴 계산을 하고 내렸다. 휘청거리며 오피스텔 건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탔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5층을 누른다는 게 그만 6층을 잘못 누른 것이다. 급하게 5층을 다시 눌렀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엘리베이터는 웅웅- 거리며 묵묵히 나를 태우고 위로 올라갔다.
띵- 육 층입니다.
원래 안내 멘트가 나왔었나? 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컴컴했다. 엘리베이터 밖으로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좌우를 살폈다. 어두운 복도가 왼쪽으로 길게 이어져 있었다. 초록빛의 비상등이 벽면에 띄엄띄엄 붙어 희미하게 복도를 비추고 있었다. 여기가 6층?
다시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와 5층 버튼을 눌렀지만 엘리베이터는 움직이지 않았다. 어서 나가라는 듯이 문을 활짝 벌리고 기다릴 뿐이었다.
살며시 발을 떼고 복도로 나갔다. 비상등의 초록색 불빛이 길을 안내했다. 벽에 손을 대고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복도는 끝없이 이어질 것처럼 길었다. 건물이 이렇게 컸던가. 이미 술은 완전히 깼다.
십 분 정도 걸었을까. 엘리베이터가 보였다. 이 건물엔 엘리베이터가 한 개라는 걸 기억해 냈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건 그만두기로 했다.
엘리베이터는 아까 탔던 것과는 미묘하게 달랐다. 더 좁았고, 15층까지 있었다. 그리고 벽에 달린 거울에 전혀 다른 아파트 이름이 써져 있었다.
"아침에 엄마랑 싸우셨어요?"
"냉장고에 오래된 거 안 버렸다고 한소리 했더니 삐쳤나 보네."
"아, 어쩐지."
"나이 들더니 안 하던 잔소리가 늘었다고 화내더라고."
"명절날엔 엄마 신경 건들지 말았어야죠."
"그러게 말이다."
아버지가 웃으시며 말했다. 나도 같이 웃었다.
아버지와 편하게 웃으며 대화한 기억은 이게 전부였다. 아버지는 젊은 시절부터 야근과 술자리가 잦았던 탓에 어렸을 적 아버지와의 기억은 거의 없었다. 그렇게 머리가 커져버렸고, 사춘기가 지난 뒤론 아버지와 말을 섞는 일이 거의 없었다. 아버지도 어느새 당신보다 커버린 아들이 꽤나 어려웠던 거 같았다.
대학에 가고, 군대를 가고,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고, 그렇게 나도 아빠가 되고 나서야 조금씩 아버지께 마음이 쓰이기 시작했다.
그날은 명절 전 날 가족이 모여 음식 준비를 하는 날이었다. 식용유가 다 떨어져 아버지가 사러 나가셨고, 왜인지 나도 아버지를 따라나섰다. 전 같으면 엘리베이터같이 좁은 공간에서 아버지와 둘이 있었으면 어색했을 텐데, 웬일인지 그날은 그러지 않았다.
그날 그 엘리베이터에서 나눈 그 짧은 대화가 요즘도 가끔 생각난다.
엘리베이터 벽에 달린 거울에는 부모님이 사시던 아파트 이름이 적혀있었다. 엘리베이터 내부도 내가 기억하는 그대로였다. 조금 좁고, 15층까지 있고, 관리사무소에서 붙인 안내문이 덕지덕지 붙어있던 그 엘리베이터.
"너도 가게? 나 혼자 다녀오마."
멍하니 서있는 날 보며 아버지가 말했다. 그날 입었던 낡은 운동복과 갈색 슬리퍼 그대로였다.
"같이 가요."
난 아버지 옆에 섰다. 1층을 누르자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밑으로 내려갔다.
"아침에 엄마랑 싸우셨어요?"
"냉장고에 오래된 거 안 버렸다고 한소리 했더니 삐쳤나 보네."
"아, 어쩐지."
"나이 들더니 안 하던 잔소리가 늘었다고 화내더라고."
"명절날엔 엄마 신경 건들지 말았어야죠."
"그러게 말이다."
아버지가 웃으시며 말했다. 나도 같이 웃었다.
띵- 알림음이 울리고 문이 열렸다. 501호. 우리 집이었다. 옆에 계시던 아버지는 보이지 않았다. 어느새 엘리베이터는 원래의 오피스텔 엘리베이터로 돌아와 있었다.
아내와 딸은 침대에서 곤히 자고 있었다. 대충 씻고 침대에 누웠다. 딸의 낮고 규칙적인 숨소리가 들려왔다. 그날은 아무 꿈도 꾸지 않았다.
엘리베이터의 경고문은 그 뒤로도 계속 붙어 있었다. 하지만 그 후 한 번도 6층을 누르지 않았다. 혹시 거기에 가더라도 아버지를 만나지 못한다면, 그런 생각을 하면 쉽게 버튼을 누를 수 없었다.
그냥 아버지가 언제나 거기에 계실 거란 생각만으로도,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