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폼소설] 온 세상에 울리는 맑고 고운 소리

by 홍윤표

세상은 너무 시끄러웠다. 사람들은 말이 너무 많았다. 세상은 의미 없는 말에 침식되기 일보 직전이었다.
누군가 생각했다. 세상이 말이 아니라 노래로 채워진다면 더 좋을 텐데……. 그래서 그는 치아를 피아노 건반으로 바꾸기로 했다.
그 후로, 그가 말할 때면 영롱한 피아노 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람들은 그 소리를 좋아했다. 사람들은 그가 더 많은 말을 해주길 바랐다.
그래서 그는 국회로 갔다. 무소속이었다.
여야가 지루한 설전을 벌일 때면 그가 입을 열었다.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이 장내를 휘감았다. 사람들은 넋을 놓고 그를 바라봤다. 그의 피아노 소리는 그동안 장내에 쓰레기처럼 쌓인 무의미한 말들을 구석으로 밀어냈다.
"필러버스터를 요청합니다."
재적의원 3분의 1을 훌쩍 넘는 인원이 의장에게 요구서를 제출했고, 의장은 무제한 토론을 실시했다. 안건을 저지하기 위한 게 아니었다. 단지 그의 목소리를 더 오래 듣고 싶었을 뿐이었다. 이 순간만큼은 여야가 하나였다.

그는 압도적인 표차로 대통령이 되었다. 그의 취임사는 더없이 아름다웠다. 세계 각국의 정상들이 그와 회담을 가지려 번호표를 뽑았다. 회담 후, 북한은 핵미사일 버튼을 창고에 처박았고, 일본은 위안부 피해자 앞에서 무릎 꿇고 절했다. 미국은 더 이상 밖에서 힘자랑하지 않겠다고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각종 테러 단체는 총과 폭탄을 녹여 학교와 병원을 지었다.

시간이 지나 그의 치아가 하나둘 빠지기 시작했다. 세계평화의 위기였다. 사람들은 앞다투어 그에게 틀니와 임플란트를 권했다. 하지만 그는 거절했다. 치아가 하나씩 빠질 때마다 그의 연주는 간결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아름다웠다.
그는 치아가 하나 남았을 때 눈을 감았다. 유언을 기다리는 이들에게 그는 한마디를 남겼다.
도.
그렇게 그의 연주는 끝났다. 하지만 그가 세상에 남긴 유산은 적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가 보여준, 그의 음악이 들려준 울림을 잊을 수 없었다. 세상은 그의 음악 위에 재건되고 정의됐다. 이제 언어의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할 때 아닌가요? 언어학자들은 생각했다.
인류의 다음 언어는 음악이다. 음악이어야 한다. 언어학자들은 위대한 음악가들에게 찾아가 고개를 숙이고 손을 내밀었다. 아이들에겐 공책 대신 오선지가 쥐어졌다.
그렇게 인류는 하나의 언어를 공유했다. 토익, 토플은 개나 줘버려. 개도 토익 학습지는 거들떠도 안 봤다.

외계인이 방문했을 때도 음악은 유용했다. 그들은 지구의 언어를 쉽게 이해했다. 첫 접촉 이후 3일이 지났을 때, 그들은 벌써 인류가 표현하는 모든 색을 지구의 언어로 말할 수 있었다. 그렇게 인류는 우주의 일원이 되었다. 우주시대가 개막했다.

근데 궁금한 게 있어요.
트라피스트-1e로 가는 우주선에서 김 군이 물었다.
치아를 피아노 건반으로 바꾼 그 사람 말이에요. 건반이 영창이래요, 삼익이래요?
제목을 보고 이미 눈치챈 분들이 있겠지만,
영창 피아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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