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처에 가는 길에 왼쪽 신발 속 뭔가가 자꾸 발가락 사이를 찔렀다. 근처 벤치에 앉아 신발을 벗고 탁탁 털었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양말 속에 돌멩이라도 들어갔나 싶어 양말을 벗었더니 엄지와 검지발가락 사이에 조그만 나뭇가지가 박혀 있었다. 긁어내도 안 떨어지길래 자세히 봤더니 나뭇가지는 살에 박혀 있었다. 오른발도 마찬가지였다.
나뭇가지는 매일매일 조금씩 자랐다. 보름 정도 지났을 땐 엄지발가락보다 길어져서 양말에 자꾸 구멍이 났다. 발톱 좀 깎고 다녀라. 점심때 신발 벗고 들어가는 백반집에 갔다가 구멍 난 양말을 보고 팀장님이 말했다.
한 달이 지났을 때 신발 대신 조그만 화분을 신고 다녔다. 나뭇가지는 화분에 얌전히 뿌리를 내렸다. 화분이 안 깨지게 조심스럽게 걸어 다녔다. 또각또각 소리가 나쁘지 않았다.
두 달쯤 지났을 땐 손톱 대신 나뭇가지가 자랐다. 손톱깎이로 매일 다듬어도 소용없었다. 너 길에서 무슨 씨앗이라도 주워 먹었냐? 입사 동기 진영이가 말했다. 다음엔 또 뭐가 나올지 궁금해졌다.
세 달째가 되자 머리에서 꽃이 피었다. 요즘 들어 유난히 숱이 많아져서 단골 미용실에 갔더니 바닥에 떨어진 잘린 머리카락 사이에 조그만 분홍색 꽃잎들이 섞여 있었다. 꼭 벚꽃 같네요. 미용실 아르바이트생이 빗자루로 쓸어 담으며 말했다. 정말 그래 보였다.
키보드 위, 점심 찌개 국물, 재킷 어깨 위로 하늘하늘 떨어지던 벚꽃 잎이 잦아들고 푸릇한 잎사귀가 귀를 덮은 뒤에야 여름이 온 걸 알았다. 손님, 바리깡 대신 예초기를 돌려야겠네요. 미용실에선 내가 갈 때마다 썰렁한 농담이 오고 갔지만 웃기진 않았다.
시월, 언제나처럼 별 볼 일 없이 생일을 보내고 가을을 맞았다. 아침마다 베개에 수북이 쌓인 낙엽을 치우며 하루를 시작했다. 만원 전철에서 서서 출근할 때면 앞에 앉은 사람 무릎에 떨어지는 낙엽 때문에 사과하기 바빴다. 거래처에서 고개를 숙일 때마다 떨어지는 낙엽을 치우는 것도 피곤했다.
나무가 될까? 이대로 그냥 벚나무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다. 어디 조용한 곳에 가서 뿌리를 내리고서 그늘을 만들고 예쁜 벚꽃을 피우고 붉은 낙엽을 소복이 쌓으면서…….
주말에 기차를 타고 대구에 내려갔다. 하늘 수목장림. 삼 년 전 서인이를 묻은 곳이다. 결혼한 지 반년이 지났을 때 병을 알았고, 또 반년이 지났을 때 혼자가 됐다.
서인이 나무 옆에 나란히 섰다. 수목장림 맞은편의 호수가 보였다. 화분을 벗고 땅에 두 발을 묻었다. 따뜻했다. 눈을 감자 바람이 불고 머리에서 낙엽이 몇 잎 떨어지며 사각거렸다.
가을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