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장마로 집 앞 하천이 범람했었다. 오랜 장마가 끝난 뒤 오래간만에 운동할 겸 하천길을 산책했다. 십 분쯤 걸었을 때, 물살에 떠밀려온 잡초 더미와 부러진 나뭇가지들 사이에서 이상한 걸 발견했다. 조심스레 주워 보니 보니 커서였다. 하얀 화살촉 모양의 커서. 왜 이런 게 여기 있지?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알 수 없었다.
커서는 말 그대로 커서였다. 커서를 눈에 보이는 아무 데나 갖다 대고 두 번 누르면 뭐든 작동했다. 예를 들어, 냉장고에 대고 두 번 누르면 문이 열리고, 티브이를 두 번 누르면 켜지고, 변기를 두 번 누르면 물이 내려갔다.
여기서 중요한 건, 눈에 보이는 그 어떤 것도 작동할 수 있다는 거였다. 그러니까 가까이 있는 건 물론, 멀리 있는 것도 그냥 커서를 그것에 갖다 대면 작동시킬 수 있다는 거다. 마치 2차원의 평면 세계처럼 말이다. 그 옛날 16비트 시절의 게임이 생각났다.
커서는 더블 클릭뿐 아니라 드래그도 가능했다. 멀리 있는 물건에 커서를 갖다 대고 꾹 누른 채로 움직이면 그 물건이 같이 이동했다. 난 마트에 있는 물건들을 커서를 이용해서 마트 밖으로 빼냈고, 그렇게 필요한 건 뭐든지 멀리서도 손쉽게 구할 수 있게 됐다.
커서는 굉장히 유용했고 난 거기에 푹 빠졌다.
그러던 어느 날, 문제가 생겼다. 하늘에 이제껏 본 적 없는 거대한 먹구름이 끼더니 난데없이 커서를 비처럼 내리붓기 시작했다. 길바닥엔 커서들이 넘쳐흘렀고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커서를 주웠다.
세상은 곧 혼란스러워졌다. 커서의 남발로 사회질서는 붕괴했다. 약탈이 일상화되고 아무도 경제활동을 하지 않았다. 커서는 인류의 재앙이 되었다.
하지만 더 큰 재앙은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커서의 남용은 우리가 알 수 없는 어떤 시스템에 과부하를 불러온 듯했다. 커서 옆에 조그만 모래시계가 생기기 시작하더니 커서의 움직임이 둔해졌고 결국 모든 게 멈췄다. 사람들은 모두 커서를 손에 쥔 채 얼음처럼 굳어버렸고 눈만 이리저리 굴렸다.
모든 게 멈춰버리고 침묵에 갇힌 세상. 우린 커서 옆의 모래시계만 뚫어지게 쳐다봤다. 빨리 시스템이 정상으로 돌아오길 바라면서.
그때, 하늘에 저번에 보았던 거대한 먹구름이 밀려왔다. 그리고 그 안에서 거대한 손가락이 쭉 삐져나왔다. 저건 뭘까. 뭘 하려는 걸까.
손가락은 먹구름을 헤치고 뭔가를 향했다. 그 앞에는 어느새 거대한 원이 나타났다. 원 안에는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눈을 찌푸리며 읽어보니 거기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rebo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