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이었다. 사람들은 어느 정도 짐 정리를 마치고 서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옅은 흥분과 긴장 그리고 알 수 없는 수많은 감정들이 사람들의 얼굴 위로 떠올랐다 사라지곤 했다.
신 아저씨는 분주하게 돌아다니면서 각 조의 조장들과 마지막 확인사항을 점검하고 있었다. 아저씨도 평소와는 다르게 조금 들뜬 듯 엷은 미소를 보이기까지 했다.
- 어떨 거 같아?
그룹에서 유일하게 나와 동갑인 호가 자기 몸의 두 배는 더 커 보이는 큰 배낭을 짊어지고 다가왔다.
- 뭐가?
- 이제 저 하늘을 보는 게 마지막라고 생각하면 말이야.
- 글쎄.
우리는 동시에 하늘을 올려봤다. 달과 별이 사라진 밤하늘은 그저 검은 장막 같았다. 달과 별을 본 게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았다. 멀리서 또 다른 산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은 재빨리 땅바닥에 엎드려 소리가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렸다. 이름 모를 풀잎에 볼을 대고 있는 호와 눈이 마주쳤다. 괜히 웃음이 나 우리는 쿡쿡 웃었다.
- 자, 모두 준비된 거 같은데 슬슬 움직일까요.
신 아저씨가 바위 위로 올라가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 다른 그룹들은 어떤가요?
초 아주머니가 물었다. 아주머니의 품에서 영이가 곤히 자고 있었다. 평온해 보이는 아기의 얼굴을 보자 긴장이 조금 가시는 거 같았다.
- 마지막으로 교신한 게 한 시간 전인데, 다들 이미 길을 떠났어요. 오늘 자정 전까진 여기에 도착하기로 했어요. 새벽엔 동굴 밑에서 다 만날 수 있을 겁니다.
동굴을 발견한 건 기적이라고 신 아저씨는 말했었다. 무너진 도시를 떠돌아다니며 지낸 지 일 년 만이었다. 창이 오빠가 이끄는 선발대가 음식을 구하러 갔다가 발견한 그 동굴의 입구는 성인 한 명이 겨우 비집고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좁았지만, 아래로 내려갈수록 점점 커졌고 흙과 초목이 있는 넓은 공간도 있다고 했다. 우리 그룹뿐 아니라 우리가 알고 있는 다른 모든 그룹이 함께 지낼 수 있을 정도로 공간이 넓다고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동굴 곳곳에는 깨끗한 물이 흐르고 고여있다고 했다. 깨끗한 물. 지금 우리에겐 물이 가장 절실했다.
- 마치 지구가 속주머니라도 갖고 있는 거 같더라니까. 우리를 그 안에 넣어두려고 마련한 거 같았어.
신 아저씨가 창이 오빠의 말을 빌려 말했을 때 교신기 너머의 다른 그룹 아저씨는 껄껄 웃었다.
그동안 무너진 도시와 거리를 돌아다니며 주웠던 쓸만한 물건들은 모두 배낭에 넣었다. 공동으로 쓰는 물건들을 넣은 배낭과 얼마 남지 않은 생수통, 어두운 동굴을 밝혀줄 기름통 그리고 가장 중요한, 각종 작물 종자를 담은 상자는 운송반의 어른들이 옮기기로 했다. 호와 내가 맨 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컸다. 내 배낭에는 낡은 옷 몇 벌과 반쯤 무너진 서점에서 발견한 <작은 아씨들>이 들어 있었다. 수 십 번은 넘게 읽어 이젠 거의 외우다시피 한 소설. 잠이 오지 않는 밤, 세상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으며 꺼져가는 모닥불의 일렁이는 그림자 안에서 한 줄 한 줄 손가락으로 짚어 가며 읽었던 이야기.
- 필요 없는 물건들은 다 버리고 가야 해. 공간을 최대한 아껴야 하거든.
사람들은 동굴로 들어가기 며칠 전부터 필요한 물건과 그렇지 않은 물건을 분류했다. 아쉽게도 책은 후자에 속했다.
문화는 생존에 우선하지 않아. 문화뿐 아니었다. 지구가 병들기 시작한 뒤로, 문명이 허무하게 부서진 뒤로 생존에 우선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책 한 권에 내줄 자리조차 없다면, 그건 너무 삭막하지 않아? 난 호에게 말하며 책을 배낭에 넣었었다.
- 모두 준비됐죠?
신 아저씨가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다들 배낭을 들춰 매려고 할 때 누군가 외쳤다.
- 잠깐만요.
모두들 소리 나는 쪽을 바라봤다. 윤이 언니였다. 윤이 언니는 분류된 물건을 최종 확인하고 처리하는 조에 속했다.
- 이건 어떡하죠?
윤이 언니의 손에 기다란 통이 있었다. 화려한 색깔로 치장된 동그란 모양의 막대기.
- 그게 뭐야?
- 불꽃놀이요.
- 불꽃놀이?
- 네.
언젠가 윤이 언니가 작은 문방구의 잔재 속에서 발견했다며 웃으며 보여줬던 기억이 났다. 언제 불꽃놀이하자. 그걸 아직도 갖고 있는 줄 몰랐다.
신 아저씨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 어떡하다니? 동굴에 가져가려고?
- 아뇨. 그건 아닌데……. 좀 아깝잖아요.
선발대 조원인 충 아저씨가 말했다.
- 아깝긴. 동굴에서 불꽃놀이라도 하려고?
사람들이 웃었다. 윤이 언니도 부끄러운 듯 살며시 웃었다.
- 그건 아닌데요. 좀 아까워서요. 이제 하늘을 언제 볼 수 있을지 모르잖아요. 동굴에 들어가면요…….
마지막 하늘. 동굴로 들어가면 언제 다시 하늘을 볼 수 있을지 모른다. 아마 다음 세대. 혹은 다다음 세대. 병든 지구가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다시 기지개를 켤 때. 아무도 그때가 언제일지 모른다.
윤이 언니는 마지막 하늘에서 뭔가를 보고 싶은 것이다.
- 아깝긴. 지금 쓰면 되지.
창이 오빠가 윤이 언니 옆에 서며 말했다.
- 그래. 지금 하자. 지금 아니면 언제 하겠어?
초 아주머니도 말했다. 아주머니 품에서 영이는 아직 곤히 잠들어 있었다.
-그래. 하자. 오랜만에 보고 싶어.
- 좋아.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말했다. 사람들의 얼굴엔 긴장감이 사라지고 어느새 기대와 웃음이 깃들었다.
윤이 언니는 손에 든 불꽃놀이를 내려보다가 하늘로 향했다.
- 그럼. 해볼게요.
사람들이 모두 검은 밤하늘을 올려다봤다. 달과 별이 없는, 시커먼 검은 장막 같은 밤하늘. 마지막 하늘.
윤이 언니가 불꽃놀이의 줄을 잡아당겼다.
피이잉- 팡 팡.
노란빛의 불꽃이 검은 밤하늘 속에서 터졌다.
촤르르르.
수 십 개의 작은 불꽃들이 밤하늘에 맺혔다. 하늘은 잠시 밝아졌다 이내 다시 깊은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짧은 불꽃놀이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작은 불꽃의 잔영을 눈에 새기기라도 하듯이 잠시 밤하늘을 그렇게 올려다봤다.
- 이제 출발합시다.
신 아저씨가 말했다. 사람들이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걸음을 떼었다. 검은 장막 같은 밤하늘이 사람들의 어깨를 짓눌렀다. 하지만 사람들의 표정은 아까보다 조금 밝아졌다. 난 호와 나란히 걸으며 하늘을 올려봤다.
하늘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거다. 지구가 다시 생명들을 품을 준비가 되면, 우린 다시 하늘 아래로 돌아올 것이다.
그때까지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