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폼소설] 다보랑콤

by 홍윤표

그날 서은이는 마트에서 장을 보고 귀가하던 중이었다. 난 그때 회의 중이었고, 회의가 끝난 후 꺼둔 전화기를 켜자 부재중 전화 24통과 문자가 6개 와있었다. 장인 어르신과 장모님으로부터였다. 서은이가 사고를 당했다네.

운전자는 그날 자율주행기능이 고장이 나서 수동모드로 출근하던 중이었다. 그는 오랜만에 운전대를 잡았던 탓에 전면 디스플레이를 끄는 것을 깜빡했고, 갑자기 송출된 다보랑콤社의 가사도우미 무료 업그레이드 광고가 전면 유리창을 뒤덮으면서 시야를 가렸다. 차는 인도를 침범해 서은이를 치고 그대로 초등학교 담벼락까지 밀었다. 운전자는 에어 스펀지가 몸을 꽉 감싸준 덕분에 어깨에 약간의 타박상만 입었다.
서은이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고 한다.

이 사고는 곧바로 공론화됐다. 시도 때도 없이 노출되는 영상 광고가 사고의 원인이라는 게 밝혀지면서 소비자권리되찾기연대, 반미디어시민연합 등 평소 거대기업의 독과점과 무분별한 미디어 광고 송출을 반대해 왔던 시민단체들의 이목을 끌었다. 어린이 보호 구역 내의 사고인 것도 문제가 되었다. 다행히 수업시간이라 아이들은 없었지만, 어린이 보호구역 내의 차내 광고 송출을 금지하자는 주장이 거세게 일었다.
이런 흐름 속에 한 사람의 죽음은 쉽게 휩쓸려갔다.

다보랑콤은 자신들의 책임을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빠른 합의를 원했다. 오래 끌어봤자 자사 이미지에 좋지 않을 거라 판단했을 것이다. 거의 2년 치 연봉에 달하는 합의금이 내 의사와 상관없이 계좌로 입금됐고, 아마도 그보다 더 큰 금액이 매스컴의 입을 막았을 것이다.

소송입니다. 다보랑콤을 쓰러뜨릴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반미디어시민연합에서 내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았는지 연락해 왔다.
소송 준비를 대행해 준다는 그들의 부추김에 얼떨결에 다보랑콤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했다. 정부도 함부로 못 하는 거대기업을 상대로 개인이 맞선다는 화제성이 언론의 주목을 끌었고,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난 어느새 거대기업에 반하는 시민운동의 아이콘이 되어있었다.

그리고 소송에서 패했다. 반미디어시민연합은 더러운 자본의 힘이 무너진 사법 시스템과 결탁하여 고결한 시민사회정신을 더럽혔다며 다보랑콤과 법원을 맹렬하게 비난했지만, 결과를 뒤집을 순 없었다.

다보랑콤의 공격적인 마케팅은 그 뒤로도 계속됐다. 도로와 건물을 짓는 데 필요한 벽돌과 대리석마다 다보랑콤의 로고가 박혔다. 아이들의 교과서에도 한 단원이 끝날 때마다 다보랑콤의 학습지 광고가 끼어들었다. 티브이에서도 어떤 방송이든 십 분에 한 번씩 다보랑콤의 제품 광고가 튀어나왔다. 드라마와 영화 속 연기자들은 모두 다보랑콤의 옷을 입고 다보랑콤의 차를 몰고 다보랑콤의 프랜차이즈 펍에서 다보랑콤의 맥주를 마셨다. 거의 모든 구기종목 프로리그 명칭 앞엔 '다보랑콤배'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밤하늘엔 다보랑콤의 보안 시스템 광고가 홀로그램으로 띄워져 어두운 밤거리를 밝혔다.
소비자권리되찾기연대, 반미디어시민연합 등 몇몇 시민단체들이 다보랑콤의 독과점과 공격적인 마케팅 수법에 반대하는 성명을 냈다. 하지만 서글프게도 그들의 목소리를 실어준 신문사와 잡지사 모두 다보랑콤의 계열사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경멸하는 다보랑콤이 없으면 목소리도 내지 못하는 셈이다.
마치 도시 전체가 다보랑콤의 뱃속에 들어갔다 나온 것 같았다.

난 다보랑콤이 준 합의금을 처갓집에 드리고 지방으로 내려갔다. 전재산을 처분해 조그만 집과 밭을 샀다. 텃밭 하나 가꿔본 적 없었기에 밭을 일군다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었지만, 다보랑콤이 없는 곳이라면 뭘 해도 괜찮았다.
이곳은 아주 가까운 이웃도 차로 십 분 거리에 있는 한적한 마을이다. 산과 논과 밭이 전부인 이곳에선 다보랑콤의 마케팅이 끼어들 틈이 없어 보였다.

여기로 내려온 지 반년이 지났고, 난 그럭저럭 이곳 생활에 적응했다. 처음으로 수확한 참외를 이웃집에 드리고 오는 길에 개울가에서 돌멩이를 던지며 물수제비를 하는 아이들을 만났다.
아저씨도 어렸을 때 많이 했는데.
난 아이들에게 한 수 보여주기로 했다.
물에 최대한 많이 튕기려면 되도록 얇고 평평한 돌멩이를 던져야 돼.
발밑을 보며 적당한 돌멩이를 물색했다. 그중 한 손에 쏙 들어오고 적당히 평평한 돌멩이가 눈에 들어왔다.
이게 좋겠다.
난 돌멩이를 주워 아이들에게 보여주려 했다. 그때 눈에 뭔가 밟혔다. 돌멩이에 있을 수 없는, 있어선 안 되는 것.
돌멩이에 다보랑콤의 로고가 박혀 있었다.
이건 어때요?
아이들 몇 명이 여기저기서 돌멩이를 주워 왔다. 모두 다보랑콤의 로고가 박혀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개울가의 자갈들엔 모두 다보랑콤의 로고가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아이들은 까르르 웃으며 다보랑콤의 로고가 박힌 돌멩이들을 주워 던졌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뜨거운 태양이 눈부셨다. 눈을 감자 태양빛의 어지러운 잔상이 눈꺼풀에 남았다. 그 잔상에도 다보랑콤의 로고가 보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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