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초에 눈이 엄청 많이 왔었죠. 밤새 눈이 많이 쌓인 모습에 괜히 신이 나서 아이를 등교시키고 전 그대로 카메라를 들고 산책을 했습니다. 여기저기 신나게 찍다 보니 어느새 36장짜리 필름 한 통을 다 써버렸더라고요. 그런데 현상을 하고 보니 노출을 잘못 잡아서 거의 모든 사진이 저렇게 푸르스름하게 바래버렸죠. 많이 속상했지만 그래도 나름 감성 있네 하고 혼자 다독였습니다.
집 앞 공원을 지나다가 찍은 사진입니다. 공중화장실 앞에 있는 벤치인데, 보통 일행 중 누군가 화장실에 들어가면 남은 사람은 저 벤치에 앉아 기다리곤 하죠. 저도 아내와 운동을 하다가 아내가 화장실을 가면 저 벤치에 앉아 기다리곤 했습니다.
누가 쌓여있던 눈을 치우고 앉아있었나 봅니다. 저렇게 동그랗게 앉았던 자리만 남았더라고요. 괜스레 그게 예뻐 보여 사진을 찍었습니다. 같이 길을 가다가 누군가 화장실을 가고, 남은 사람은 그 사람을 기다리며 눈 쌓인 벤치에 살짝 엉덩이를 걸쳐 앉은 모습. 누군가를 기다리는 마음.
두 사람은 자리를 떠났지만, 한 사람을 기다리는, 한 사람을 생각하는 다른 한 사람의 마음이 저렇게 남아 있었습니다. 따뜻한 마음의 체온에 눈도 함부로 덮지 못하는 자리.
마음의 흔적은 저렇게 동그란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