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이 되면 세상의 모든 사물들이 노을빛을 머금어서 평소와는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전 노을을 보면 아름답다는 생각과 동시에 조금 쓸쓸한 기분이 들어요.
초등학교 3학년쯤이었을 겁니다. 학교에서 나이에 상관없이 신청자를 받아서 방과 후에 과학탐구 경진대회 같은 걸 했었어요. 과학상자라고, 볼트와 너트, 기어, 바퀴, 모터 등 여러 부품을 이용해서 실제 작동하는 자동차, 비행기 같은 다양한 모형을 만드는 조립키트가 있었는데요. 이걸로 자기가 설계한 모형을 만들어 제출하는 대회였어요. 아마 여기서 입상하면 더 큰 대회에 나갈 수 있었을 겁니다. 유난히 자식들 학업에 열성이셨던 어머니는 형과 저를 그 대회에 나가게 하셨죠. 형이야 어렸을 적부터 장난감 조립이나 공작 같은 걸 잘해서 문제없었지만 저는 손재주가 없어서 이런 거에 영 꽝이었어요. 미술시간에도 그림에는 자신 있었지만 만들기 활동은 정말 싫어했어요. 그만큼 뭘 붙이고 오리고 조립하는 걸 못했지요.
아무튼 한 교실에서 스무 명 남짓 학생들이 모여서 각자 설계한 모형을 만들었습니다. 전 뭘 만들어야 할지 도저히 몰랐어요. 일단 바퀴가 있으니 자동차 비슷한 걸 만들어야지 했는데 이걸 혼자 움직이게 하려니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습니다. 바퀴를 모터에 어떻게 연결해야 하는지, 자동차 지붕은 어떻게 붙여야 하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막막했죠. 그러는 사이 다른 학생들은 하나둘 모형을 완성해서 제출하고 나갔습니다. 형도 상당히 빠르게 조립을 하고 먼저 일어섰죠.
결국 전 교실에 마지막까지 남았습니다. 시간이 너무 늦어져서 선생님이 얼른 제출하라고 하셔서 다 완성하지 못했죠. 정체불명의 모형을 들고 엉거주춤 일어나 선생님께 보여드렸더니 선생님은 도대체 뭘 만든 거냐고 꾸짖으셨어요. 울적해진 기분을 안고 교실 문을 열었습니다.
솔직히 전 형이 어디선가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교실 밖에도, 운동장 어디에도 형은 없었죠. 형은커녕 수업시간이 다 끝난 학교는 아무도 없어서 정말 고요했습니다. 운동장에는 노을빛을 받아 길게 늘어진 정글짐과 미끄럼틀, 그네의 그림자만 있었어요. 그 모습이 생경했습니다. 그 시간에 학교에 남아있던 건 처음이었으니까요.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없는 운동장을 가로질러 교문으로 향하는 길은 무척 조용하고 멀었습니다.
집으로 가는 골목길에 저녁노을의 오렌지빛이 잔뜩 고여 있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낯선 시간은 익숙한 길마저 낯선 곳으로 만들었죠. 우리 동네가 아닌 다른 곳에 혼자 떨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세상에 나를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다는 불길한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마 그날 노을빛은 제 피부에 쓸쓸함을 새겨 넣었나 봅니다.
지금도 노을을 보면 그날의 조그만 제가 생각이 납니다. 그리고 그 아이의 손을 잡고 나란히 집에 가고 싶어 집니다. 그럴 수 있다면 오렌지빛 노을을 온몸에 차곡히 포개며 같이 걸어갈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