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트리

by 홍윤표
카메라: MINOLTA HI-MATICAF-D / 필름: Kodak Colorplus 200 / 일자: 25.11.??

전 크리스마스를 무척 좋아합니다. 크리스마스라고 해서 특별히 좋은 일이 생기지 않을 거란걸 알면서도 이유 없이 마냥 좋습니다. 캐럴, 트리, 산타, 선물 등등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거라면 뭐든 좋아요. 개인적으로는 12월이 되면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영화를 보고 책을 읽으며 혼자 조용히 크리스마스를 기념하곤 하죠.

좁은 거실이지만 그래도 크리스마스트리를 놔두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크리스마스에는 유치할 정도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내야 직성이 풀리거든요. 우리 집 크리스마스트리는 아이가 어렸을 적부터 어린이집, 학교, 문화센터 등 여기저기서 미술활동으로 만든 장식들로 꾸밉니다. 파는 것들 보다는 화려하지 않지만 이게 훨씬 이쁘거든요.

제 기억 속의 첫 크리스마스트리는, 서울 망우동의 외할머니집에서 외사촌 형제들과 함께 만든 트리입니다. 트리라고 해야 할까, 사실은 빨래걸이에 이런저런 장식들을 걸어 놓은 거지만요. 어렸을 적 유난히 외사촌 형제들하고 사이가 좋았는데 그날도 외할머니집에 모여서 조촐한 크리스마스 파티 같은 걸 했어요. 트리를 만들고 싶었는데 마땅한 게 없으니 집에 있는 외할머니의 빨래걸이를 펼쳐놓고 집 앞 문방구에서 파는 싸구려 장식들을 마구 걸었죠. 그래도 엄청 재밌었어요.

저녁에는 한 명씩 돌아가면서 장기자랑을 했습니다. 전 뭘 했는지 기억은 안 나고, 형은 당시 유행했던 '람바다' 춤을 익살스럽게 췄고요. 끼가 엄청 많았던 사촌 형은 박남정 춤을 그럴듯하게 따라 췄습니다. 아버지는 노래를 불러야 하는 자리에서 항상 부르시는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이라는 노래를 부르셨어요. 밖은 무척 추웠지만 좁은 방에서 여럿이 모여있으니 금방 후끈해지고 다들 볼이 발그레졌죠.

전 크리스마스 하면 떠오르는 제일 첫 장면이 그날이에요. 좁은 반지하 방에서 다닥다닥 붙어 어설픈 크리스마스트리를 꾸미고, 노래 부르고, 춤추고, 손뼉 치던 가족들. 내가 사랑해 마지않던 사람들. 그날 할머니집에 있던 사람들 중 지금은 볼 수 없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날 함께 했던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를 좋아하나 봅니다. 저에게 크리스마스는 바로 수십 년 전 그날이거든요. 다시 오지 못할 날이지만 제 기억 속에 그날이 있었다는 사실 하나로도 아직까지 크리스마스를 좋아하기엔 충분합니다.

지금도 크리스마스트리를 꾸밀 때면 그날의 빨래걸이가 생각납니다.

발그레진 얼굴로 웃던 가족들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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