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정보로 넘쳐난다. 그 정보는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너도나도 정보다. 여기도 저기도, 심지어 뒤통수도 정보가 따라온다.
한 여름 쏟아지는 폭우, 맨홀 뚜껑 위로 용솟음 칠 정도로 넘친다. 그 틈을 타 하수구 구정물도 정보로 둔갑해 돌아다닌다.
물은 물인데, 구정물을 물이라 할 수 있을까?
정화 과정을 거치면 물이지만, 그냥 보면 구정물이다.
같은 것을 봐도 다르게 해석한다. 누구는 좋아하고, 다른 이는 욕을 한다.
정답은 없다. 각자의 가치관이 해답인 세상이 되었다.
내가 줄 수 있는 건 마음뿐이다.
베풀어야 성공한다고 말한다. 가치를 줘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잠시 생각해 보지만, 나는 가진 게 아무것도 없다. 나는 무엇을 줄 수 있을까?
타인에겐 없지만, 내게 있는 건 뭘까?
음.. 생각해 보니 ‘마음’ 뿐이다. 내 마음에 내 삶을 담아보자.
정보는 빠르게 퍼졌다, 빠르기 증발한다.
마음은 느리지만, 단단하다.
모든 사람이 빠름과 양에 집중할 때, 느림과 꾸준함에 집중하자.
예술은 우리 마음에 공감해 준다. 마음을 담을 때 예술이 된다.
노래를 듣고 있다. 우울하거나 지칠 때, 번아웃과 허무함에 그냥 누워 있을 때, 노래를 듣는다.
기타 퉁퉁 거림과 내 떨림이 만나면 공명한다. 힘든 내 마음 포근하게 깜 싸안아주는 느낌이다.
영화, 그림, 뮤지컬 등 모든 예술은 마음을 건드린다. 노래는 들려주고, 그림은 느끼게 해 준다면, 책은 보여준다.
책을 보면 내 마음이 보인다.
막연했던 마음을 한 문장으로 표현해 준다. 그때 쾌감을 느낀다.
"아, 어에 이런 표현을 쓰지..'
그 순간 중독된다. 그 독은 독서욕이다.
한번 빠지면 자꾸 보고 싶어 진다. 기대하게 된다. 상상하게 된다.
책은 또 다른 책을 부르고, 더 강한 내밀한 자극을 충동질한다.
기품 있는 도파민인다.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는 고양이처럼.
생각과 마음이 일치하면 행동이 된다.
광고, 마케팅, 유명인들은 우리 행동을 조정한다.
진심 대신 본성을 건드린다. 기다려 주지 않는다.
생각할 틈 없이 설득하는 것이 경쟁력인 세상이다.
하지만 내(진심)가 빠진 행동은 얼마 가지 못한다.
한 번은 넘어가도, 두 번은 안 된다.
이제는 자극적인 강요는 통하지 않는다.
책은 나를 기다려 준다.
마감 기한이 없다. 대학교 과제, 회사 업무처럼 빨리 읽을 필요 없다. 충분히 생각하고, 음미하며 소화시키길 기다려 준다. 오늘 한 장 읽고 내일 한 줄 읽어도 아무런 보챔이 없다.
왜 책은 아무 말하지 않는 걸까?
느리다는 것은 책과 공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알기 때문이다. 멈추는 순간 작가와 내가 공명하고 있다는 걸. 눈으로 읽는 독서는 머리에서 끝나지만, 공명은 마음에 닿는다.
책은 사계절이다.
어두운 땅을 뚫고 지상으로 솟아나 세 상고 만난다. 힘없음에서 눈과 비, 해와 바람을 맞으며 굵고 튼튼한 나무가 된다. 때가 되어 사람을 만나면 얇게 펼쳐 저 그 위에 작가의 생각이 담긴 자음과 모음이라는 검정잉크가 새겨진다. 그리고 기다린다. 나를
어느날 강한 이끌림이 느껴진다.
제목을 보고 느낌이 온다. '이거다.'
순간적 끌림에 나도 모르게 만남을 신청해 버렸다.
언제나 기다림은 길다. 겨우 하루인데 왜 그렇게 길게 느껴지는지. 문자로 그가 온다는 소식을 전달 받는다. 설레인다. 집에 오니 벌써 도착했단다.
포장을 뜯으며 첫 만남을 기대한다. 투명 테이프를 제거하고 상자를 열면 여드름처럼 오돌토돌한 뾱뾱이. 그 너머로 불투명한 형채를 보면 두근거린다. 첫 만남이다. 이리저리 살펴 본다. 냄새도 맡고 만져도 보고 자세히 관찰도 한다. 종이를 넘길 때 날카롭고 야릇한 마찰음이 귀를 긁는다. 마치 연인 처럼. 그런데 아쉽게도 지금은 인연이 아닌 것 같다. 책꽃이로 직행한다. 다음을 기약한다.
좋은 책을 찾는 방법은 강한 끌림이다.
내게 맞는 책을 찾는 방법은 강한 끌림을 느끼면 된다. 유명한 사람이 추천한 책 보다, 내가 읽고 싶다고 느끼게 만드는 책을 읽으면 된다. 처음엔 꽝이 많다. 어쩔 수 없다. 책은 머리로 고르는 게 아니라 느낌으로 고르는 거니까. 머리로 고르면 그럴듯한 책에 속아 넘어간다. 책을 파는 사람도 소개하는 사람도 언제나 우리 머리 위에 있으니까. 똑똑하지 못한 내가 책을 고르는 방법은 느낌이다. 우연히 알게 된 책의 끌림이 느껴진다면 멈춘다. 무엇이 나를 이끌리게 만들었는지 곰곰이 생각한다. 어떤 단어에 끌리는지 생각한다. 머리로 판단하는 게 아니다. 언제나 직감은 이성 보다 더 정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