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역 의자에 앉아 사람들의 움직임을 바라본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그저 가만히 멈춰 있다. 지하철은 끊임없이 사람들을 실어 나르고, 문이 열리면 사람들이 밀려들고, 떠난 빈자리에는 잠시 고요함만 남는다. 그 고요함 속에서 내 안에 불안감이란 감정이 번진다.
당장이라도 뛰어가 지하철에 몸을 싣고 싶은 충동이 든다. 빽빽하게 들어찬 사람들 틈 속에 가방을 끌어안고, 양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그들 속에 묻혀 있고 싶다. 그들과 함께 아무 생각 없이 밀려가고 싶단 생각을 한다. 그렇게 하면 지금 느끼는 이 불안감이 사라지지 않을까? 그러나 곧 나는 스스로 속삭인다.
"이젠 알잖아. 그곳에 내가 원하는 건 없다는 걸."
나는 언제나 멈춰 있었다. 회사에 들어가 일을 할 때도 몸은 회사에 있었지만, 생각은 항상 다른 곳에 있었다. '내가 원하는 건 이게 아닌데...' 몸과 마음은 따로 놀고, 월화수목금토일, 다시 월요일은 어김없이 돌아왔지만, 내 인생은 그 어디도 존재하지 않았다. 버티다 보면 월급날이 돌아오고, 통장에 적힌 숫자를 보며 안도감을 느꼈다. 월급은 항상 딱! 죽지 않을 만큼, 딱! 버틸 만큼만 수혈되었다. 내 삶을 살고 싶다는 마음만 가득했다.
목표가 없을 때 우리는 멈추게 된다. 승마에서 말은 경기를 할 때 양쪽 시야를 가린다. 시야를 가리면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직 앞만 보며 달리는 말은 자기 앞 선수의 등만 바라본다. 기수의 채찍질에 못 이겨 더 빨리 달려 마침내 추월을 한다. 그리고 결승점을 통과해 결국 1등으로 골인하면 그제야 달리기를 멈춘다. 더 이상 달려야 할 목표가 없어진 것이다.
멈출 때 나의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나의 첫 퇴사 주제가 '좋아하는 일을 찾기'였다면, 두 번째 퇴사는 '대한민국 탈출'이었다. 스물아홉 살, 여행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고 싶었다.
멈춤, 얼마나 잘 멈출 수 있는지가 우리 삶의 의미를 만든다. 나는 나만의 속도로 멈추며, 그때서야 나 자신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었다. 산티아고에서 만난 사람들은 각자의 이유로 멈추었고, 그 속에서 우리는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갔다. 1년 중 비수기를 활용해 걷고 있던 레스토랑 사장님, 변호사가 되면 개인 시간이 없을 거라 생각해 잠시 걸으러 나온 20대 변호사 지망생, 그리고 마음속으로 일자리를 구해달라고 기도하며 걷고 있는 중년의 흑인 여성. 노란색 레게머리에 선글라스를 쓴 남성은 남은 거리를 알려주는 표지석 앞에서 춤을 추며 인증 사진을 찍으며 걷고 있었다.
그리고 재수를 하다 원하는 학과가 한국에 없다는 걸 알고 여행을 떠난 스물한 살 보드게임 개발자부터, 식물을 공부하며 걸었던 생물학 전공자, 다큐멘터리를 찍기 위해 영국에서 온 남성, 기타를 들고 이유 없이 떠도는 네 명의 음악 히피들, 3년 동안 800킬로를 나눠서 걷고 있다는 시니어 커플까지, 우리는 각자의 이유로 이 길을 걷고 있었다. 나는 그들 속에서 대한민국에서 느끼지 못했던 온전한 자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길을 걷는 모두의 발걸음은 하나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길을 걷는 사람들의 눈빛에서 각자가 지닌 소망과 꿈이 엿보였다.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걷기만 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불안해하지 않았다. 그저 걷다 힘들면 쉬고, 다시 걷기를 반복했을 뿐이다. 서먹했던 서로의 관계는 자연스러워졌다. 함께 걷고 있던 오늘의 동료가 내일은 보이지 않을 수도 있음을 알기에 짧은 만남에 전하는 인사는 언제나 이별을 염두에 둔 인사였다. 빠른 사람은 더 빨리 멀어졌고, 느린 사람은 나무 그늘이나 돌 위에 앉아 쉬었다. 그렇기에 순간순간에 진심일 수 있었다. 언제나 지금이 마지막임을 알기에.
멈춤,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우리는 언젠가 멈추게 된다. 내 의지든 타인의 의지든, 결국 멈추는 것이 인생이다. 다만 속도만 다를 뿐. 그러나 우리는 멈추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 내가 배운 교육에는 선행학습은 있었지만 후행학습은 없었다. 앞서 나가는 사람은 관심 속에 계속 나아가고, 뒤처진 사람은 무관심 속에 그 자리에 멈추게 된다. 그렇게 존재감은 안개처럼 희미해졌다.
나는 언제나 뒤처졌지만, 그 덕분에 나만의 속도로 살아갈 수 있었다. 어릴 적,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마음껏 할 수 있었던 그 자유가 내겐 정말 소중했다. 뒷산에 올라 대나무를 꺾어 낚싯대를 만들던 기억, 어른들은 웃었지만 내가 물고기를 잡았을 때 모두가 나를 위해 손뼉 쳐 주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눈 오는 밤, 내 키만 한 눈사람을 만들고 잠이 들었고, 그다음 날 뒷산에서 비닐포대에 앉아 썰매를 타며 겨울을 보냈다. 때로는 얼음이 깨져 물에 빠지기도 했다. 낚싯바늘이 목에 걸려 병원에 실려 간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순간들은 내가 멈춘 그 순간, 내 이야기의 일부였다.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인가? 어른이 된 지금,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있을까? 언제 마음 편히 쉬어 본 적이 있을까?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 에서 "인간은 이야기하는 동물이며, 인간 사회는 이야기 없이 작동될 수 없다"라고 말했다. 그렇다. 인간은 어떤 이야기를 믿냐에 따라 삶의 방향이 달라진다. 이야기는 멈추고 나서야 비로소 만들어진다. 일단 멈춰야 쉴 수 있고, 쉬어야 새로운 것을 경험할 수 있다.
과거의 이야기를 믿으면 과거에 갇히고, 미래의 이야기를 믿으면 미래를 살게 된다. 중요한 건 현재를 믿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야만, 우리는 진정으로 살아갈 수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과거에 얽히고, 미래에 불안을 느낀다. 그 이유는 그들이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멈출 수 있을 때 만들어진다. 우리는 멈출 수 있을 때 더 많은 것을 얻고 성장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이야기는 멈출 수 있을 때 시작된다. 멈추지 않으면 진정한 이야기를 찾을 수 없다. 멈춤 속에서 중요한 것들을 깨닫고, 그 깨달음이 우리를 성장하게 만든다. 그러니 멈출 수 있을 때, 더 많은 것을 얻고 성장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