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울음을 또렷이 기억하는 건 단 한 번뿐이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날, 방문 너머로 새어 나온 그 한마디가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형님, 나 이제 어떻게 살어..."
그때 나는 문을 열지 못했다. 차마 들어갈 용기가 없었다. 얼마 후, 울음은 멈췄고 엄마는 평소와 다름없이 방문을 열고 나왔다.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밥을 차리고, 평소럼 오 남매를 챙겼다. 그때 나는 처음 알았다.
‘울음이 멈춘다고 해서, 감정까지 멈추는 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눈물에 서툴다. 다른 이의 눈물엔 본능적으로 다가가 등을 토닥이며 "괜찮아. 힘내"라고 말한다. 하지만 정작 내 눈에 눈물이 차오르면, 고개를 젖혀 애써 삼킨다. 혹시 모를 시선이 두려워 "괜찮아"라며 웃고, 뒤돌아 눈물을 훔친다.
아기의 울음은 다르다. 태어나자마자 우렁차게 우는 아기의 울음은 누군가의 웃음이 되고, 기쁨이 된다. 배고프면 울고, 마음에 들지 않아도 울어댄다. 울면 울수록 누군가 달려온다는 걸 본능적으로 아는 아기들은 안다.
하지만 어른이 울면, 세상은 외면한다. 울음을 잊은 어른의 마음은 메말라 간다. 감정을 억누르다 보면 어느새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아무것도 느낄 수 없던 공허한 순간에 흘린 눈물은, 멈춰버린 감정이 다시 살아난다는 신호다.
우리는 울음을 참는다. 어른이 된다는 건 강해져야 한다는 의미였다. 울지 않은 것이 성숙함의 증거라고 배웠고, 감정을 삼키는 것이 어른의 의무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우리가 배운 착각이 아니었을까? 감정을 숨긴다고 해서 강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감정을 인정하는 것이 진짜 강함이 아닐까?
눈물은 단순한 감정 표현이 아니다. 울 때, 우리는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몸도 함께 가벼워진다. 눈물에는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물질이 포함되어 있어 흘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진정된다. 결국, 울음은 우리 몸이 스스로를 치유하는 자연스러운 과정인 셈이다
우리는 언제부터 자신을 위한 울음을 잊었을까. 타인의 슬픔에는 쉽게 공감하면서도, 정작 내 아픔 앞에서는 외면하는 법을 배웠다. 남을 위로하는 말은 익숙해졌지만, 내 아픔을 위로하는 법은 점점 서툴러졌다.
2023년 어느 날, 거실 바닥엔 수십 권의 책들이 흩어져 있었다. 책을 읽어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으리란 걸 알면서도, 차마 책에 대한 미련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 내겐 기댈 곳이 필요했으니까. 그러다 갑자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게 도대체 뭐 하는 짓이지?’
나는 핸드폰을 들어 울고 있는 내 모습을 찍었다.
왜 그랬는지 모른다.
그냥, 이 순간을 남기고 싶었다.
포기하지 않겠다는 무언의 의지였다.
"그때부터였다.
내 안에 웅크려 있던 목소리가 서서히 깨어났다. 내면과의 대화는 치유의 시작점이다. 오랫동안 외면했던 마음의 상처들, 그 깊은 곳에 묻어둔 아픔을 다시 들여다보는 과정. 쉽지는 않지만, 그 순간부터 변화가 시작된다. 처음으로 내 마음에게 물었다.
"힘들었어?"
마음이 말했다.
"이제야 묻는구나. 나 너무 외로웠어."
‘미안해. 그렇게 힘든 줄 몰랐어.’
‘아니, 너는 그러면 안 되잖아. 세상 모두가 나를 외면해도, 너만은 날 믿어 줬어야지.’
나는 내 마음이 하는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주변의 시선이 너무 무서웠어.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걱정했어."
"행복해지고 싶었어. 그래서 애써 웃었어. 웃으면 괜찮아질 줄 알았거든. 근데 아니었어."
"그다음부터 웃지 않기로 했어. 어차피 달라지는 건 없으니까."
스스로를 다독여 보려 애썼다. 책을 덮고 나면 남는 것은 허무함뿐이었다. 그들이 말하는 긍정과 희망이, 오히려 나를 더 깊은 절망으로 밀어 넣었다.
처음엔 "괜찮아질 거야"라는 말들이 힘이 되었지만, 곧 깨달았다. 달콤한 위로가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는 않았다. 결국 나는 아무것도 믿지 않기로 했다. 세상과 나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을 쌓았다. 그러다, 어느 날 눈물을 흘리는 순간 그 벽은 조용히 무너져 내렸다. 오랫동안 멈춰 있던 내 마음에 다시 감정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멈춘다는 것은, 다시 나를 만나는 일이다. 멈추면 들린다. 애써 외면했던 내 마음의 목소리가.
만약 그런 순간을 만난다면, 두려워하지 말고 그저 귀 기울이면 된다.
나는 알게 되었다. 우리가 피하고 숨기는 감정들이야말로 진짜 나를 말해준다는 것을. 멈춤은 도망이 아니라 만남이다. 스스로와 마주하는 용기, 자신의 가장 연약한 부분을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온전해진다.
나는 더 이상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났다. 때로는 부서지고, 때로는 무너지고, 때로는 주저앉아도 괜찮다는 것. 그것이 바로 살아있음의 증거였다.
그렇게 멈춘 자리에서, 나는 다시 살아가기 시작했다. 조용한 일상을 쌓아 올리며, 아주 천천히. 읽고, 기록하고, 걷는 하루를 반복했다. 별다를 것 없는 시간이었지만, 그 단순함 속에서 나는 나를 되찾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