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꿈이 있었다. 좋아하는 일도 많았다. 그런데 이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분명 좋아하는 게 있었을 텐데, 아무리 떠올려 봐도 도무지 생각나지 않는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가슴 한구석이 텅 비어버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오랫동안 간직했던 '보물지도 조각 하나'를 잃어버린 것처럼. 내 삶의 방향과 의미를 한순간에 놓쳐버린 기분이었다.
당신도 한 번쯤 이런 순간을 마주한 적이 있는가?
분명 좋아하는 게 있었는데, 마치 안갯속에서 길을 잃은 것처럼 그 감각이 희미해진 경험 말이다. 열심히 달려오다 문득 멈춰 서서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자문하는 순간, 모든 것이 낯설고 어색하게 느껴지는 그런 순간 말이다.
우리는 언제나 흔들린다. 흔들려야 청춘이고 아프니까 청춘이라는데... 언제까지 아파해야 하는 걸까? 방황의 끝이 정말 오긴 할까? 십 년이란 시간만으론 부족했나 보다. 묻고 싶다. 이 세상에 신이 존재한다면 정말 묻고 싶다.
"당신이 만든 세상은 왜 이렇게 살기 힘든가요?"
내가 삶을 향해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 건 서른일곱 살부터다. 더 이상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한 상태에서 묻기 시작했다. 그 당시 나는 무기력과 공허함으로 가득 찬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카페 창가에 앉아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멍하니 거리를 바라보곤 했다. 지나가는 자동차와 사람들을 보면서 문득 ‘나는 왜 이렇게 살아가고 있을까?’라고 물었다.
사회가 정한 길에서 벗어나 멈췄을 때, 비로소 내 마음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쉼 없이 흘러가는 세상 속에서 나만 멈춘 것 같았고, 그 정적 속에서 오히려 내 안의 혼란은 더 커져 갔다. 끊임없이 솟아나는 생각에 지쳐갔고, 마음은 먹구름처럼 짙어졌다. 금방이라도 비를 쏟아낼 듯, 거칠고 사나웠다. 사람들은 이런 상태를 '우울증'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나는 단순히, 나를 잃어버렸을 뿐이었다
'왜 이렇게 나를 방치했을까. 조금만 더 일찍 멈췄다면, 조금 더 나를 돌아봤다면... 지금처럼 무너지진 않았 을텐데.' 하지만 후회는 언제나 늦다. 만약 후회가 내 앞에 있었다면, 후회를 피해 갈 수 있었을까? 아니 또 다른 핑계를 대며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조금만 더 버티자. 다들 참고 있잖아. 멈추면 안 돼. 넌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 이 또한 지나가니까'
나는 주문처럼 속삭였다. 스스로를 다독이며, 마치 이 말이 나를 구원해 줄 거라 믿었다. 사회는 이걸 끈기와 인내라고 불렀다. 어쩌면 당신도 비슷한 주문을 외우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내겐 그저 반복되는 고통일 뿐이었다. 왜 하기 싫은 일을 하고 있는 걸까? 단순히 먹고살기 위해서? 돈을 벌기 위해서? 아니다. 나는 내가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몰랐다. 나는 내가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몰랐다. 그렇기에 멈출 수도, 포기할 수도 없었다. 그저 버티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는 알게 될 줄 알았다. 착각이었다. 버티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점점 더 깊은 고민에 빠져들고 있었다. 나는 그냥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었을 뿐이었다. 당신도 그런 경험이 있지 않은가? 열심히 버텼는데, 결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순간 말이다. 그저 시간만 흘러갈 뿐,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 느낌.
그렇게 나는 버티기의 끝에서 서서히 깨닫기 시작했다. 아무리 버텨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고, 오히려 멈춰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하지만 멈춘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여전히 지쳐 있었고, 혼자 남겨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더 이상 참고 싶지 않았다. 버티는 것도 지쳤다. 학교에서 바라는 훌륭한 사람, 좋은 사람, 착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저 내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그전에, '힘들고 지친 내 마음 누군가 끌어안아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것이 내 솔직한 마음이었다. 하지만, 너무 욕심이 컸나 보다. 결국, 난 버티기를 포기하고 묻기 시작했다. 답을 얻고자 했던 질문은 아니었다. 그냥, 누군가에게 묻고 싶었을 뿐이다.
'나는 왜 이렇게 방황하고 있는 걸까요?'
길을 걸으며 하늘을 보며 물었다.
'나는 왜 가만있지 못하는 걸까요?'
도로 옆, 우뚝 서 있는 나무를 향해 물었다.
'자유롭고 싶을 뿐인데, 그게 그렇게 잘못인가요?'
스치는 바람에 물었다.
열심히 살았다. 적어도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게 남은 것은 오명뿐이었다. '백수', '낙오자', '사회 부적응자' 같은 말들. 사회는 쉬고 있는 사람들을 '그냥 쉬었음 청년', '은둔 청년'이라 불렀다.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런 기사를 볼 때마다 마음이 더 초라해졌다. 마치 내 이야기 같았다.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그런 말들이 나를 규정하는 듯했다.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아니라, 사회가 붙여준 이름에 따라 나 자신을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그것이 내 정체성이라도 되는 것처럼.
인생이 힘들 때, "모든 답은 내 안에 있다"라고 말한다. 만약 그 말이 진실이라면, 내 안에서 답을 찾을 수 있어야 할 텐데... 도무지 찾을 수 없었다. 아무리 고민해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독서와 기록뿐이었다.
책을 읽으면 인생이 달라진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책, 광고하는 베스트셀러, 유튜버들이 추천하는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10권, 20권, 50권… 하지만 내가 원하는 답은 어디에도 없었다. 책 속 저자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목표를 정하고 행동하라"는 말만 반복했다. 그리고 그제야 깨달았다. '이 책들이 내겐 의미가 없구나.'
책은 나에게 길을 보여줄 것 같았다. 사람들은 책이 인생을 바꾼다고 했으니까. 나는 닥치는 대로 읽었다. 10권, 20권, 50권... 하지만 어느 순간 깨달았다. 책은 방향을 알려주지만, 나를 대신해 걸어주지는 않는다는 것을.
당신도 그런 경험이 있는가?
책을 읽으면 인생이 변한다고 했는데, 어느 순간 책을 덮고 나면 공허함만 남는 경험. 쌓여가는 책 더미 속에서, 변한 건 나의 삶이 아니라 채워지지 않는 허무함뿐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 말이다.
나는 더 이상 독서가 나를 변화시켜 줄 거란 기대를 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그저 읽고 싶은 책을 읽기 시작했다. 철학, 인문학, 그리고 비주류 책들을. 더 이상 빨리 읽는 것이 중요하지 않았다. 나를 멈추게 하는 문장을 발견하면 밑줄을 긋고, 발췌하며 천천히 곱씹었다. 그러다 보면, 책이 내게 질문을 던졌다.
"넌 어떻게 생각해?"
그러면 나는 생각했고, 기록으로 답했다.
책은 내게 묵묵부답이라 생각했지만, 사실 책은 언제나 답을 가지고 있었다. 단지 내가 그 답을 보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책은 내 안에 잠든 질문을 깨우고, 그 답을 스스로 찾게 해 주었다.
2023년 9월 6일 저녁 7시 51분. 한 권의 책과 단 하나의 문장이 나를 멈춰 세웠다. "생각이 우리 내면을 바꾼다면, 행동은 현실을 바꾼다." 그 순간, 내 몸이 얼어붙었다. 키보드 위에 올려둔 손가락도, 호흡도, 모든 것이 멈췄다.
하지만 내 머릿속은 쉼 없이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 문장을 곱씹을수록,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방식이 떠올랐다. 나는 정말 변화하고 싶었던 걸까? 변화를 두려워하며 같은 자리에서 맴돌고 있었던 걸까?
당신도 책을 읽다가 갑자기 손을 멈추게 만드는 문장을 만난 적 있지 않은가? 책장을 넘기던 손가락이 멈추고, 시선이 한 문장에 고정되는 순간. 그 문장이 마음 깊숙이 스며들어 책을 덮고 창밖을 바라보게 만드는 그런 순간. 더 이상 글자를 쫓을 수 없고, 생각에 잠기게 하는 그런 문장과의 만남. 어쩌면 우리는 그런 순간을 위해 책을 읽는지도 모른다. 단 한 줄의 문장이 수년간의 사고방식을 뒤흔들어 놓는 경험. 그 한 줄이 없었다면, 나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맴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게 무슨 말이지? 생각이 내면을 바꾸면 행동이 변하고, 행동이 변하면 현실이 달라진다?' 더 이상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었다. 도서관 문을 나서 걷기 시작했다. 걸으면서 과거에 어떤 생각을 했는지 하나씩 반추하기 시작했다.
10년 전, 산티아고 여행을 다녀온 후, 여행 가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여행 가가 된다고? 돈은 어떻게 벌건데? 나이 30이면.. 너무 늦었어' 나는 스스로 포기했다. 5년 뒤 여행 유튜버들의 영상을 보면서 생각했다. '그들의 삶이 내가 원했던 삶인데, 나는 왜 선택하지 못했을까? 만약, 그때 여행을 선택했다면, 내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지금 나는 어디쯤 서 있었을까?
그림을 그릴 때도 같았다. 3년 동안 그림을 배웠고, 동화책 삽화 첫 외주를 받았다. 하지만 내 그림을 믿지 못했다. "이게 맞나? 싫어하면 어떻게 하지?" 스트레스가 극심해 탈모까지 왔다. 결국, 첫 외주가 내 마지막 외주가 되었다.
누구나 한 번쯤 원하는 걸 포기한 적이 있을 것이다. 어린 시절 품었던 꿈, 잠시 스쳐 지나간 가능성, 혹은 손에 닿을 듯 가까웠던 기회. 우리는 그것을 '현실적인 선택'이라 부르며 스스로 위안했다. '지금은 때가 아니야', '나중에 기회가 되면...' 그렇게 미루고 미루다 포기하게 된 너와 나의 꿈들. 당신의 가슴 한구석에도 그런 작은 후회들이 남아있지 않은가? 내겐 그런 순간들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포기에 익숙해질수록, 나는 점점 더 조용히 내 꿈을 떠나보냈다. 처음엔 미련이 남아한 걸음씩 뒤돌아봤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잊었다. 그리고 더 시간이 흐르자, 떠나보냈다는 사실마저 희미해졌다. 그렇게 내 꿈들은 소리 없이 멀어져 갔다.
기회는 늘 있었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마다, 나는 항상 두려웠다. 정해진 길이 아니기에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기회가 찾아와도 나는 나를 믿지 못했다. 언제나 '나는 부족해, 더 준비해야 해, 노력해야 해' 그렇게 스스로 한계를 만들고, 한 발짝 물러섰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그것은 기회를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단 한 번도, 온전히 나 자신을 믿어본 적이 없었다.
당신은 자신을 얼마나 믿고 있는가?
사실, 내가 원했던 게 무엇인지 몰랐던 건 아니었다. 이미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었지만, 나를 믿지 못해 기회를 놓아버렸다. 자발적 백수의 시간이 없었다면, 이 깨달음도 얻지 못했을 것이다.
그때까지 나는 부족한 게 능력이나 돈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결국, 나를 가로막았던 건 '현실'이 아니라 '생각'이었다. 나는 안 된다고 믿는 순간, 가능성조차 붙잡아보지 못한 채 스스로를 한계 안에 가두고 있었다.
그렇다면, '생각을 바꾸면, 내 인생도 바뀔까?'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내가 나를 믿지 못한 결과였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나를 믿으면? 미래도 변할 수 있는 거잖아. 그 순간, 모든 게 단순해졌다. 처음부터, 그냥 나를 믿으면 되는 거였다.
나는 책을 통해 다양한 지식을 배웠고, 새로운 시각을 얻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삶이 바뀌지는 않았다. 결국 변화를 만드는 것은 책이 아니라, 그 안에서 발견한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었다.
나는 이제 안다. 변화를 만드는 것은 책이 아니다. 어쩌면 책은 그저 질문을 던질 뿐, 진짜 답은 내 안에 존재한다는 믿음을 가지는 것이었다.
우리는 흔히 "책이 인생을 바꾼다"라고 말하지만, 사실 책은 여정 속에서 만나는 이정표일 뿐이다. 그 이정표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갈지 말지는 결국 나의 선택이다.
자기 탐색의 여정에서 가장 큰 적은 외부가 아니라 내 안의 불신이었다. 나는 끊임없이 달려왔지만, 정작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왜 그곳을 향해 가는지 묻지 않았다. 그렇게 지나온 길 위에는 포기한 꿈들, 놓쳐버린 기회들이 흩어져 있었다.
이제 나는 안다. 진정한 자기 탐색은 멈춰 서서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일 때 비로소 시작된다는 것을. 그리고 그 긴 여정에서 가장 중요한 나침반은 다름 아닌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라는 것을.
이 여정에는 끝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자기 탐색의 본질은 목적지가 아니라, 나를 믿고 한 걸음 내딛는 용기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