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늘 바쁘다. 잠도 줄이고 밥 먹을 시간도 아껴가며 일한다. 때로는 내 삶을 뒤로한 채 남들의 기대에 맞추려 애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더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린다. 우리는 정말 행동이 부족한 걸까? 아니다. 우리는 행동이 부족한 게 아니라, 그 행동의 이유를 잊었던 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 때쯤, 우연히 유튜브에서 한 영상을 발견했다. '셜록 홈즈 주연 배우 베네딕트 컴버베치의 인생 조언'이라는 제목의 동기부여 영상이었다. 영상 속 그는 단 한 가지를 외쳤다. "생각하지 말고, 그냥 제발 좀 해!"
그의 단호한 외침에 사람들은 뜨겁게 반응했다. 이 영상은 150만 회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고, 댓글만 해도 1만 4천 개가 넘었다. 사람들이 행동에 얼마나 목말라 있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댓글들을 읽어내려가보니 이런 내용들이 가득했다.
"감사합니다. 미루고 있던 일을 지금 하러 가겠습니다."
"생각만 하고 실천을 못하고 있었네요."
"덕분에 하기 싫은 공무원 시험 그만두고, 프로그래머 독학해서 취업했습니다."
각자의 다짐과 결심이 담긴 댓글들이 끝없이 이어졌다. 나 역시 영상을 보며 '그래, 나도 당장 뭔가를 시작해야겠다'는 강한 동기를 받았다. 하지만 그 순간, 머릿속에 불현듯 한 의문이 스쳐 지나갔다.
"그래, 해야 한다는 건 알겠는데... 뭘 해야 하지?"
"꿈도 없고, 목표도 없는데, 도대체 뭘 해야 할까?"
이런 고민을 말하면 사람들은 뻔한 대답을 한다. "꿈을 가지세요. 열정을 가지세요." 마치 미리 준비된 대본처럼, 앵무새처럼 같은 답만 되풀이한다. 하지만 행동할 이유조차 모르는 상황에서 "그냥 행동하세요"라는 대답은 너무 무책임하지 않을까? 우리는 누구나 알고 있다. 행동해야 한다는 걸. 처음엔 그저 시작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지만, 의미 없는 행동은 결국 방황으로 이어질 뿐이다.
내 고민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은 매형이었다. 그는 내게 종종 이렇게 말했다. "목표를 가지고, 계획을 세워라."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정답이니까. 하지만 내겐 그저 절벽의 메아리처럼 들려왔다.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마음속으로 소심한 반항을 했다.
'나도 아는데, 하고 싶은 게 없는데, 나보고 어쩌라고?'
'그렇게 말만 하지 말고 방법이라도 알려 주던가.'
세상은 끊임없이 행동하라고 외친다. 그래서 일단 먹고살자는 생각으로 일을 시작했지만, 내 안의 의문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이유 없는 행동은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더욱 깊이 고민하게 만들었고, 공허함만 커져갔다. 결국, 이번에는 다른 선택을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나는 목적 없이 하는 행동을 '막연한 행동'이라고 불렀다. 그런 행동을 할 때마다 불안은 더 커져갔다. 20대에 퇴사하고 처음 여행을 떠나고, 그림을 그리고, 영상을 배울 때는 즐거웠다. 그때는 적어도 내가 하고 싶은 게 있었으니까. 하지만 하고 싶은 게 하나도 없어지자 어떤 조언도 와닿지 않았다. 그때부터 진짜 방황이 시작됐다. 그래도 계속 움직였다.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무엇이라도 하는 게 낫다고 믿었으니까.
그렇게 길을 잃은 채로 이것저것 시도했다. 스마트스토어, 블로그 글쓰기, 인스타 마케팅, 소자본 창업, 독서 모임... 새로운 것을 배우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순간은 늘 설렜다. 하지만 그 설렘은 오래가지 않았다. 순간이 지나면 허전함이 밀려왔고,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내가 원하는 걸 찾고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다시 남이 만든 길을 따라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멈출 수 없었다. 가만히 있으면 불안했고, 여기서 멈추면 영원히 제자리에 머물 것만 같았다. 그래서 더 정신없이 움직였다. 하지만 그럴수록 허전함은 깊어졌고, 그 허전함은 결국 공허함이 되었다. 공허함은 번아웃으로 이어졌고, 나는 완전히 멈춰버렸다. 그리고 그 끝에서 우울과 마주하게 됐다.
처음 우울을 경험했을 때는 인생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내가 믿어왔던 모든 것들이 무용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우울이 내게 준 것은 절망이 아니라 '기회'였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그 순간, 나는 처음으로 '멈춤'을 선택할 수 있었다. 만약 우울을 만나지 않았다면, 아마도 지금까지 이유도 모른 채 끊임없이 달리기만 했을 것이다.
'참고 버티는 게 정답이다.' 세상은 그렇게 말한다. 나도 그게 당연하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버티는 대신 내려놓기로 했다. 그렇게 내 인생 처음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맞이했다. 남들과 다른 시간을 보내면서 깨달았다. 지금까지 나는 한 번도 내가 원하는 행동을 해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백수에게는 모든 날이 똑같다. 365일이 평일이자 주말이다. 시간이 넘쳐났지만, 그게 또 가장 큰 고민이었다. 회사에 다닐 때는 늘 시간이 부족하다고 했는데, 이제는 시간이 너무 많아서 막막해졌다. 드라마, 영화, 게임, 만화 같은 것도 며칠이면 질렸다. 그리고 깨달았다. 시간은 무한한 듯 보이지만, 아무것도 채우지 않으면 모든 것이 무색해진다는 걸.
동시에 회사가 내 일상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차지했는지도 알게 됐다. 텅 비어버린 시간을 무엇으로 채울지, 어떻게 채워나갈지 고민해야 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습관이 독서, 기록, 걷기였다. 누군가의 눈에는 그저 백수의 무기력한 일상처럼 보일 수도 있고, 누구나 할 수 있는 평범한 행동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게는 달랐다. 처음으로 남들이 정해준 기준이 아니라, 온전히 나 자신이 선택한 행동들이었다. 세상은 '가치 있는 행동'이란 반드시 성공과 연결되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나는 나만의 의미를 찾았다. 과거의 행동이 '해야만 했던 것'이었다면, 이제는 '하고 싶은 것'이 된 것이다. 의미를 부여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비로소 나의 속도를 찾을 수 있었다.
당신은 지금, 정말 당신이 원하는 일을 하고 있나요?
우리는 쉴 틈 없이 바쁘다. 일할 때는 업무에 치이고, 쉬는 날까지도 SNS를 보며 스스로를 바쁘게 만든다. 하지만 이렇게 정신없이 흘러가는 하루 속에서, 과연 나를 위한 시간은 얼마나 될까?
'아무것도 하지 않음'은 나를 위한 멈춤이다. 모두가 앞만 보고 달릴 때, 홀로 걸음을 멈추고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들여다보는 시간이다. 누군가는 이런 멈춤을 게으름이라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게는 이 멈춤이야말로 가장 주도적인 선택이었다. 세상은 끊임없이 "제발, 행동하세요!"라고 말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을 용기'란 그 압박 속에서 나만의 속도를 찾는 것이 아닐까?
나는 지금 타인의 기대와 강요에서 하나씩 벗어나고 있다. 조금씩 내가 누구인지,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보이기 시작했다. 외부의 목소리에 휘둘리던 나에서 벗어나, 내 안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자 비로소 '내가 원하는 행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너무 조급해하지 않아도 된다. 멈춘다고 해서 인생이 끝나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 멈춤이야말로 나를 위한 새로운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세상이 정한 성공의 기준에서 잠시 벗어나, 주어진 시간 속에서 스스로를 탐색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보자.
어쩌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내가 원하는 길로 나아가기 위한 가장 용기 있는 선택일지 모른다. 그리고 지금, 당신도 당신만의 속도로 걷고 있는 중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