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백수로서의 자기 성찰

by 김명복

1-4 자발적 백수로서의 자기 성찰

우리는 마음이 힘들 때 의지하고 싶어진다. 동기부여 영상을 보거나, 위로와 힐링 영상을 찾는 것도,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응원을 받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하지만 타인에게 빌려온 희망은 결국 사라진다. 내 것이 아님을 알면서도, 희망이 빠져나간 자리의 허탈감은 더욱 크게 밀려온다.


나는 그때, 타인에게 의지하는 대신 나 자신에게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과정에서 독서와 필사 그리고 걷기란 습관이 생기면서 스스로 동기부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난 그렇게 우울을 극복할 수 있었고, 2022년 7월 다시 현장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그토록 기다리던 평범한 일상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좋았다. 몸을 움직이는 일용직 근로자는 내게 잘 맞았다. 몸을 많이 쓰는 현장 특성상 정신없이 일할 수 있었고, 숙식이 제공되어 급여도 차곡차곡 쌓였다. 퇴근 후 헬스장에 가서 운동하고, 숙소에서는 독서와 기록을 이어갈 수도 있었다. 불안했던 일상은 사라지고 '균형'이 만들어졌다. 그런데 뭔가 허전했다. 분명 아무런 문제도 없는데, 지금 내 삶에 뭔가 빠진 것 같은 공허함이 느껴졌다.


처음엔 우울을 극복하면 내 인생이 완전히 달라질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우울을 극복하기 전이나 후나 여전히 나는 일용직 근로자였다.


2022년 10월 29일, 온 세상이 슬픔에 빠졌다. 집에서 연락이 왔다. 혹시 서울 이태원에 갔었는지 확인하려는 전화였다. 너무나 안타까운 소식이었다. 그날, 삶은 또다시 내게 질문을 던졌다.


"지금 이 삶이 내 인생의 마지막 모습이라면, 나는 만족할 수 있을까?"
"내가 원하던 모습이 정말 이거였을까?"
"삶의 마지막 순간, 나는 웃을 수 있을까?"


처음엔 이 질문을 외면했다. 어떻게 얻은 안정인데, 또다시 새로운 선택을 한다는 것은 너무나 두렵고 위험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 이성이 강하게 말했다.


"지금 이 생활을 놓칠 거야? 숙식 제공에 월세나 식비도 안 나가잖아. 카페 가는 거 빼고는 쓸 돈도 없으니 월 200씩 저축이 가능해. 1년이면 2,400만 원, 5년이면 1억이 넘는다고! 지금처럼 안정적으로 돈 벌 수 있는 곳이 어디 있다고? 네가 여기서 나간다면 또다시 이런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아? 아니야. 이제 나이도 많고, 열정도 식었어. 너도 알잖아. 이제 늦었다는 걸."


나도 그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지금처럼 일과 취미생활의 균형을 유지하며 사는 게 최선이라고 믿었다. 얼마 만에 찾은 평온인데, 또다시 혼란을 겪기는 이제 너무 지쳤다고 느꼈다. 그렇게 모든 고민이 끝난 줄 알았다.

하지만 일을 하면서 점점 집중력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몸을 움직이는 것도 점점 힘들어졌고, 가볍던 발걸음도 무거워졌다. 독서와 필사, 헬스장 가는 루틴도 망가지기 시작했다.


왜 이럴까? 뭐가 문제일까?

마음이 문제였다. 내 삶의 끝이 '현장'이라고 한계를 긋는 순간, 스스로 동기부여가 되지 않았다. 인간은 미래의 희망이 있을 때 열정이 생기고 에너지를 얻는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 여기가 내 인생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모든 게 의미 없어졌다. 어차피 열심히 해도, 하지 않아도 변하는 게 크지 않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잠재의식, 깨달음 관련 책을 보면 욕망을 버려야 한다고 하지만, 인간을 움직이는 에너지는 결국 욕망이다. 욕망 없는 인간은 인간이 아니라는 어느 철학자의 말처럼, 희망이라는 욕망을 버리는 순간 내 삶도 무미건조해졌다.


나는 또다시 선택의 순간에 놓였다. 현실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이상을 선택할 것인가? 과거의 나였다면 현실을 선택했을 것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온 후 여행 가가 되고 싶었지만,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상과 현실을 모두 잡겠다는 마음으로 '영상'을 배워 취업하는 길을 선택했다. 그 당시에는 최선이라 생각했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변명이었다.


나는 언제나 최선이 아닌 차선을 선택해 왔다. 여행가 대신 영상 회사 취업을 선택했고, 그림 작가 대신 외주 작가를 선택했다. 여행 가가 되고 싶었다면 여행을 떠나는 게 최선이었다. 그림 작가가 되고 싶었다면 그림에 집중하는 게 옳았다. 남들이 외주를 한다고 하기 싫은 외주를 따라 했지만, 결국 그 선택은 내 그림을 포기하는 결과를 낳았다.


우울증은 어쩌면 최선을 선택하지 않은 내 마음의 욕구가 쌓여 만들어진 불만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 나는 또다시 차선을 선택하려 하고 있었다. 이 사실을 깨닫고, 이번에는 이성이 아닌 마음을 따르기로 했다.

"딱 1년만 자발적 백수로 살아보자."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선택을 하지 않으면 앞으로 내 인생이 지금처럼 똑같이 흘러갈 것만 같았다. 막연한 삶에 대한 불안감이 돈에 대한 불안감보다 컸기에 자발적 백수를 선택할 수 있었다.


11월, 일을 그만둔다고 이야기했다. 동시에 마음은 다시 활력을 찾았다. 그렇다. 나는 또다시 '멈춤'을 선택한 것이다. 과거에는 어쩔 수 없이 멈춰야 했지만, 이번에는 내가 직접 선택한 멈춤이었다. 물론 퇴사를 한다고 모든 게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무모하고 어리석은 선택일지도 모른다.


"모든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

내 선택은 무모했다. 하지만 남들보다 가진 게 없었기에, 오히려 선택할 수 있었다. 1년 뒤 여전히 현장에서 일을 하든, 1년 쉬고 다시 현장에 돌아가든, 결과적으로 큰 차이는 없었다. 반면 마음이 아프면 얼마나 괴로운지, 나는 우울을 통해 이미 알고 있었다. 다시는 그 고통을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두 번 다시 좀비처럼, 죽은 눈으로 하루를 소비하고 싶지 않았기에 선택할 수 있었다.


우리는 언제나 '최선의 선택'을 하려 노력한다. 하지만 그 선택이 정말 최선일까? 어쩌면 이성이 만들어낸 변명은 아닐까?


나는 우울을 통해 깨달았다. 정말 하고 싶은 것은, 내 마음에 귀 기울일 때 비로소 들린다는 것을. 아무런 희망도 기대도 없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나서야, 나는 내 마음에 귀를 기울일 수 있었다.

지금, 내 마음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귀 기울여보자.

당신의 마음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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