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쉬었음’의 진정한 의미

by 김명복

"우리 모두 한 번쯤,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게 될 때가 있다." 그때가 오면, 어쩌면 그저 멈추고 싶어진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시간을 흘려보내고 싶어진다. 하지만 그런 순간이 오면, 불안도 함께 찾아온다.


몸은 쉬고 있지만, 마음은 여전히 시끄러웠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수록 오히려 더 큰 압박이 느껴졌다. 쉬고 싶었다. 정말로, 아무 생각 없이 편하게 쉬고 싶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쉬면 쉴수록 불안했다. 몸은 편한데 마음은 점점 더 복잡해졌다. 가만히 있으면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생각이 꼬리를 물었고 불안은 점점 커져 갔다. 그제야 깨달았다. ‘쉼’이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내 안의 불안을 마주할 때 비로소 진짜 치유가 시작된다는 걸.


내 머릿속은 쉬지 않았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시간 낭비하고 있는 건 아닐까?' 가만히 있을수록, 점점 가시방석에 앉은 듯 초조해졌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백수 생활을 보며 누군가는 '놀고 있네'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소리 없는 전쟁은 눈에 보이지 않기에,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할 수 없었다.


혼자서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할 때, 마음은 기댈 곳을 찾게 된다. 그리고 그곳은 다름 아닌 과거의 나 자신이었다. 흔히 과거에 머물지 말라고들 하지만, 힘든 순간 나를 지탱해 주는 건 결국 지나온 시간 속 소중한 기억들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나를 가장 단단하게 만들어 준 시간은 바쁘게 일할 때가 아니라 진짜 나를 마주했던 순간들이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편안했던 순간은 언제였을까?

가장 나다웠던 순간은, 서른 살,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던 그때였다. 그 길에서 나는 미처 알지 못했던 ‘또 다른 나’를 만났다. 45일 동안 800km를 걸으며, 온전히 나와 마주했다.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평온했다. 하지만 여행이 처음부터 마냥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비를 맞으며 길을 걸을 때마다, '그냥 한국에 있을 걸.' '도대체 내가 왜 걷고 있는 걸까?' 하는 후회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몸은 지쳤고, 머릿속은 복잡할수록 숨은 더 가빠졌다. 온통 불평과 불만뿐이었다. 몸은 한국을 떠났지만, 내 머릿속은 여전히 한국에서처럼 조급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주변 풍경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걷기 시작한 지 2주쯤 지나자, 불안과 조급함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새벽 여섯 시 일어나 아침을 먹고, 일곱 시에 출발하는 단순한 하루를 반복했다. 처음엔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왜'라는 질문을 하면서 의미를 찾으려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생각조차 놓아버렸다. 그저 한 걸음, 또 한 걸음 내딛는 것에 집중했다. 숨소리, 발자국 소리, 바람 소리만이 내 귓가를 스쳐 지나갔다. 복잡했던 생각들도 바람에 흩날리며 하나둘 흐려졌다. 아니, 사라 졌다.


걸을수록 몸도 마음도 가벼워졌다. 더 이상 이유를 찾지 않고, 지금 내가 가야 할 길을 걸었다. 그제야 보이지 않던 주변 풍경이 하나둘씩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고, 두 눈으로도 담을 수없을 정도로 넓은 지평선을 바라보면 마음도 함께 넓어졌다. 내가 걷고 있는 땅은 봄인데, 저 멀리 보이는 산 봉우리엔 하얀 눈이 쌓여 있었다. 도로를 가로지르는 양 떼와 수도꼭지를 돌리면 물 대신 와인이 나오는 신기한 경험... 몸은 힘들었지만, 걸으면 걸을수록 영혼과 마음이 회복되는 것을 느꼈다.


여행에 익숙해지면서 그룹을 떠나 혼자 걷기 시작했다. 혼자가 되면서 궁금해졌다. ‘나는 얼마나 걸을 수 있을까?’ 더 많이 걷고 싶은 마음에 영어 단어로 ‘I, go, Tomorrow, along (나 갈 거야. 내일. 혼자)’ 그렇게 말한 후, 일행과 헤어졌다. 다음 날 새벽 5시에 출발해 저녁 9시까지 총 51km를 걸었다. 내가 걷기를 잘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무엇을 좋아할까?’ 45일 동안 약 1만 장의 사진을 찍었다. 하얀 눈으로 덮인 설산에 혼자 풀을 뜯고 있는 검은색 말을 보면 카메라에 절로 손이 갔다. 정신없이 걷는 와중에 20cm가 넘어 보이는 민달팽이를 보면서 ‘우와’ 하는 탄성을 지르며 찍었다. 오전 새벽, 이슬 맺힌 물방울을 찍으려고 한 시간 동안 자리를 지키기도 했다. 눈이 많이 내려 다른 여행자들은 택시를 탈 때도, 나는 걸을 수 있을 만큼 걷다가 도저히 안 될 때는 도로를 나와 걸었다.


10년이 지났다. 그때는 분명,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무엇을 하고 싶고 잘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모르겠다는 질문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분명 알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잊어버린 것 같다.

앞만 보고 달려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잠시 멈추는 법을 잊어버린 탓일지도 모른다. 나 자신을 돌아볼 시간 없이 바쁘게 지내다 보니, 내가 누구인지조차 희미해졌다. 그러다 문득 지금처럼 후회만 남는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나는 대체 언제부터 나를 잃어버린 걸까?'

분명 나만의 길이 있었고, 내가 원했던 삶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사라져 버렸다. 좋아하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는 건조한 삶.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지만, 영혼 없는 인형처럼 느껴졌다.


나는 나를 되찾고 싶었다. 내게 있어 '쉼'이란, 단순히 휴식이 아니었다. 잃어버린 나를 되찾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내가 누구였는지, 무엇을 원했는지를 떠올렸던 것처럼. 다시 나를 만나기 위해, 내 안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나 자신과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류시화 작가의 ‘새는 날아가며 뒤돌아보지 않는다’에는 ‘퀘렌시아(Querencia)'라는 말이 나온다. 스페인의 투우 경기에서 소들은 지칠 때마다 본능적으로 자신이 회복할 수 있는 장소를 찾아 몸을 회복한다고 한다. 어쩌면 지금의 나도 그러한 공간을 찾고 있는 게 아닐까.


나는 지쳐 있었다. 몸도 마음도 한계에 다다랐다. 지친 마음과 영혼을 회복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쉬는 것뿐이었다. 영혼을 잃는다는 것은 곧 나를 잃는 의미다. 쉼은 결코 사치가 아니다. 다시 시작하기 위한 나만의 쉼표이며, 내 인생을 새롭게 열어가는 과정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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