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것이 두려운 당신에게

by 김명복

스무 살이 되고 어른이 되면 인생의 모든 문제들이 해결될 거라 생각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입사를 하고 서른 살 정도가 되면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을 거란 막연한 기대를 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취업 전에는 합격 못 하면 어떻게 하지?'란 고민을 했다면, 취업 후에는 '그다음에는 뭘 해야 하지?'라는 더 큰 고민이 생겼다. 어떻게든 취업을 했다. 안도감이 들었다. 월급이 주는 안정감은 생각이상 달콤했다. 취업에 대한 압박감이 사라졌다는 그 하나만으로도 마음이 가벼워졌다. 회사 생활이 익숙해지면서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이게 끝인가? 그냥 이렇게 회사 다니면... 되는 건가?' 내가 원했던 삶이라 생각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하지만 미래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일을 그만두면, 사회가 정한 기준에서 멀어진다는 압박감이 나를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왜 이렇게 두려워하고 불안해하는 걸까?

우리는 어릴 때부터 교육을 받으며 자란다. 학교는 항상 ‘열심히 해야 한다’, ‘싫어도 참아야 한다’는 교육을 받았다. 일을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인생의 낙오자’ 또는 ‘노숙인’처럼 부정적인 인식을 만든다.


교육이 주는 혜택도 있지만, 그 단점도 명확하다. 교육에 적응 못하는 순간 뒤처지기 때문이다. 사회가 정한 길에서 벗어날 때 느끼는 불안감은 어쩌면 당연한 것 아닐까? 어릴 때부터 쌓인 두려움이 어른이 된 지금도 여전히 우리의 숨통을 옥죄고 있는 건 아닐까?


지금 시대에 멈추는 것은 불확실성과 마주하는 것과 같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나만의 시간을 갖기 위한 결정은 절대 쉽지 않다. 하지만 때로는 어쩔 수 없이 멈출 수밖에 없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은 오직 본인만이 안다. 타인은 나의 마음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신호를 스스로 외면한다는 것이다. 정신없이 달려만 왔기 때문에 그 신호가 무슨 의미인지 해석할 수 없다.


2022년 1월, 안동. 엄마는 짧고 통통한 두 팔 벌려 나를 꼭 안아주었다. 푹신하고 따스한 온기가 전해지자 편안함이 밀려왔다. 나라는 존재가 시작된 곳. 엄마의 뱃속에 잉태되어 있던 그때로 돌아간 듯, 엄마의 품속은 따스한 봄날의 기운처럼 부드럽게 나를 감싸주었다.


차마 우울증 때문에 내려왔다고 말하지 못했다. 대신 ‘그냥 좀 쉬려고 내려왔어’라고 이야기하자,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까지 열심히 살았으니, 쉬어도 돼. 푹 쉬어."


엄마의 말에 안도감이 들면서도, 동시에 내 심장을 움켜쥐는 듯한 미안함이 밀려왔다. 웃으면서 '알았어'라고 대답했지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었다.


다음날, 방문이 열리고 엄마의 작은 얼굴이 빼꼼히 드리웠다. 새벽부터 깨어 있었던 나는 잠든 척할까 망설이다가 눈동자가 마주쳤다. 엄마의 얼굴에 초승달처럼 웃음이 떠오르고, 내 눈에는 반달 모양의 웃음이 번졌다. 엄마는 문을 활짝 열고 방으로 들어와 내 얼굴을 보며 말한다. “피곤할 텐데,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


매일 7시 40분이면 엄마는 버스를 타고 출근한다. "아들, 먹고 싶은 거 없어? 오랜만에 내려왔는데,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해. 오랜만에 솜씨 발휘 좀 할게." 괜찮다고 집에 있는 거 먹으면 된다고 말했지만, 엄마는 자꾸 말해 보라고 재촉했다.


무뚝뚝하고 건조한 저음으로 답했다. ‘아무거나… 엄마가 하는 건 모두 맛있으니까.’ 그 말에 엄마의 광대뼈가 올라가며 이번엔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버스 시간이 다 되어 출근하려던 엄마는 다시 등을 돌리며 나를 부른다. "아들!" 침대에 누우려던 몸을 일으켜 '응?'이라 하자 "파이팅!" 소리와 함께 주먹을 쥐고 파이팅 포즈를 취한다. 문이 닫힌다. 가족들 모두 나가고 나 혼자 남은 시간이다.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본다. '이제 난 무엇을 해야 할까?'.


사회와 거리가 생기면 불안감이 커진다. 혼자 뒤처지는 기분과 단절된다는 외로움은 극도의 불안과 두려움을 키우기 때문이다. 유튜브나 인스타를 보면 이 감정은 더욱 심해진다. 타인과 나를 비교하면서 나만 외롭고 슬픈 소외감을 느끼게 된다. 이런 현상을 포모증후군(Fear Of Missong Out)이라고 부른다. 'Fear'는 '공포', 'Missong Out'은 '좋은 기회를 놓치다'란 의미다.


내가 가장 힘들고 두려웠던 건, 희망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미래에 대한 아무런 기대도 가질 수 없었고, 당장 우울증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몰랐다. 하고 싶은 것도 없었다. 내 미래를 생각하면 앞날이 깜깜하고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막막했기에 불안해졌고, 그 불안이 쌓여 두려움이 되었다.


무기력하게 침대에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며, '이러면 안 되는데, 뭐라도 해야 하는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몸은 물먹은 솜처럼 무거웠고, 마음은 싫다며 칭얼거렸다. 분명 쉬고 있는데도 쉬고 있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부분) 불안했고 당장 뭔가 해야 한다는 압박이 나를 더 두렵게 만들었다.

세상의 모든 후회는 과거에서 오고, 세상의 모든 불안은 미래에서 온다면, 세상의 모든 행복은 현재에 존재한다.


우리는 언제부터 쉬는 것을 두려워하게 된 걸까?

잠이 오면 잠을 자고, 배가 고프면 밥을 먹듯이, 힘들면 쉬는 게 당연한 건데, 우리는 왜 쉬는 것조차 마음 편히 쉴 수 없게 되었을까? 사회가 정한 레이스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잠마저 줄이며 노력했지만,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치열한 경쟁 속에서 점점 지쳐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인데.


힘들어서 쉬고 싶지만, ‘그냥 쉼’조차 허락되지 않는 세상이 과연 정상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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