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면 보이는 것들

by 김명복

우린 멈추지 않는다.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리고, 또 달린다. 그런데 멈추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달리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나는 멈춰 있었다. 내 인생은 그동안 멈춰 있었다. 매일 아침 출근하고 일을 하지만, 결국 공허함만 남았다. 하루하루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내가 진정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오늘 나는 뭘 한 걸까?”


하루의 끝에 어김없이 찾아오는 이 허무한 감정을 애써 외면한 채, 내일 출근을 위해 잠자리에 들었다. 그렇게 반복되는 일상이 이어졌다. 시간이 갈수록 벗어나기란 점점 더 어려워졌다. 주말마다 부족한 잠을 채우고, 깨어 있어도 핸드폰에 잠식당했다.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덜 지칠 거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휴식이고 곧 회복이라고 믿었지만, 사실 그건 또 다른 형태의 나를 자기 소모였다.


건설 현장에서 내 삶은 어둠과 고요로 가득했다. 새벽 4시 30분, 찬물로 샤워하며 밤 사이 느슨해진 마음을 다시 잡았다. 작업복을 입고 5시면 출근했다. 차가운 공기를 세 번 깊게 들이마 쉬며 잠을 깨웠다.


모두가 잠든 조용한 새벽에 혼자 걸으면, 내 발자국 소리만 선명하게 들렸다. 큰 도로 옆 인도를 걸으며 앞을 보니 가로등 희미한 빛만이 길을 비추었다. 주간 근무보다 야간 근무가 많았다. 퇴근할 때마다 차가운 새벽 풍경 속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지금 생각하면, 내 하루는 언제나 밤과 달뿐이었다. 하지만 지금, 내가 보는 풍경은 달라졌다.


새벽 4시 30분 차가운 아스팔트 위 딱딱한 안전화를 신던 그때와 달리, 이제는 운동화를 신고 인도 위를 푹신하게 걷는다. 무거운 작업복 대신 가벼운 가방 하나를 메고, 청바지와 티셔츠 차림으로 자유롭게 걷는다.

하루의 시작은 이제 단순하다. 아침을 먹고 집을 나서면, 길 위에 나 혼자만 조용히 걷고 있었다. 모두가 출근한 늦은 외출. 늦잠을 마음껏 누리고 나온 밖은 푸른 하늘과 밝은 태양이 나를 반겨주었다. 이렇게 내 하루는 느리게 시작하게 된다.


햇살을 받으며 걸어가는 동안, 어린아이처럼 세상을 바라본다. 평지를 천천히 걷고, 언덕을 만나면 더욱 천천히 오른다. 고개를 돌려 나무의 이파리 하나까지 자세히 관찰한다.


겨울에서 봄이 오기 시작하면, 앙상한 가지에 녹색 봉우리들이 돋아난다. 그 모습을 보며 '봄이 왔구나'생각한다. 가끔 바람이 매섭게 불어도, 햇살을 받으면 그 바람이 포근하게 느껴진다. 봄은 이렇게 내게 다가왔다. 계절이 조금씩 변하듯, 내 마음도 서서히 깨어나기 시작했다. 처음엔 미미한 변화였지만, 어느 순간 나는 그 변화를 알아차렸다.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내 마음도 자연스럽게 부드럽게 풀어지고 있음을 느꼈다.


멈춤은 단순히 행동을 멈추는 게 아니다.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세상을 다시 보는 새로운 방식이다. 그것은 내가 그동안 놓쳤던 것들에 집중하고, 내 마음속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세상을 발견하는 방식이었다. 학교와 가족, 사회가 주입한 관점이 아니라, 내가 지정으로 보고 싶은 것들을 보는 것이다. 아이처럼 세상을 바라보는 순간, 나의 세계는 달라졌고, 멈춰 있던 내 시간은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삶이 허무하게 느껴졌던 이유는, 내 시간이 멈춰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 같다고 여겼던 건, 나를 위한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루 중 얼마나 많은 시간을 오롯이 나를 위해 쓰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지금 나는 서두르지 않는다. 차 한잔을 천천히 마시며 창밖 풍경을 바라본다. 이전에는 들리지 않던 새들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도서관에 앉아 책을 읽다가 나를 멈추게 만드는 문장을 만나면 책을 덮고 생각에 잠긴다. 복잡한 내 생각과 마음을 선명한 문장으로 표현하는 글을 만나면, 깊은 울림과 통쾌함을 느낀다.


세상은 여전히 바쁘게 돌아가지만, 나는 이제 그 속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 그저 나만의 속도로, 내 마음이 이끄는 대로 살아가고 있다.

나는 세상이 종용(강요)하는 속도에서 벗어나 나만의 리듬을 찾아가는 중이다. 빠름과 효율을 앞세우며 나를 착취(혹사)했던 과거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나라는 존재 자체로 가치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제야 알게 되었다. 세상은 항상 그대로였다. 변한 건 세상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과 내 마음이었다.


세상은 나에게 조용히 그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다. 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햇살, 바람, 사람들의 웃음이 이제는 작은 기쁨으로 다가왔다. 지금의 나는 이 소소한 순간들을 온전히 받아들이게 되었다.


'나는 괜찮아.'라고 중얼거리며 오늘도 한 걸음씩 걸어갔다. 이 순간을 있는 그대로 느끼면서 마치 새로운 나 자신을 발견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 더 이상 '해야 할 것들'에 압박받지 않고, 나만의 속도로 걷는다. 일상의 작은 기쁨들을 감사히 여기며.


멈추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삶은 목적지가 아니라 여정 그 자체라는 것을. 더 이상 완벽할 필요도, 증명할 필요도 없었다. 타인과 비교하지 않고 그저 있는 그대로의 나로서 존중해 주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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