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이란 쉼은 나를 회복시켜주었다.
그리고 이제 다시 현실을 살아갈 때가 왔다.
고시원을 구한 뒤, 일자리를 구하기 시작했다. 당장 남은 돈은 200만 원이다. TV에서 단 돈 100만 원 들고 서울 상경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게 내가 될 거란 생각을 못 했다.
나는 일용직 건설 근로자다. 내 월급은 하루 일당에 출근 일수를 곱하면 된다. 건설 현장 일은 힘들고 위험해 사람들이 기피하지만, 지속적으로 일하면 의외로 다른 직장보다 수입이 높다. 예전엔 일자리가 넘쳤다. "사람 구합니다"라는 구인 공고가 하루에도 수백 개씩 올라왔고, 경력도 필요 없었다. 출근만 하면 됐다. 그런데 상황이 달라졌다.
경제적 불안, 청년 실업. 처음엔 이 단어가 와닿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은 현장도 근로자들도 몸을 사리는 분위기다. 어떻게든 힘든 시기를 버티기 위해 노력하는 것 같다. 구인 공고도 눈에 띄게 줄었다. 특히 평택 S 건설 현장은, 하루 출근만 6만 명이 넘었지만 지금은 1만 명 정도라고 한다. 대기업이 이 정도면, 일반 현장들은 말할 것도 없다. 현장은 언제나 안전할 줄 알았는데, 당연했던 일자리가 사라졌다.
사실 처음부터 현장 일을 했던 건 아니다.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하고, 전공을 살려 디자인 회사에 취직했다. 딱히 하고 싶은 게 없었기에, 일단은 그 길을 선택한 것이다. 월 150만 원, 주 6일 야근. 힘들었지만, 그땐 ‘배운다’는 생각으로 버텼다. 디자인 업계는 야근이 당연하다는 분위기였고, 나 역시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7개월 만에 퇴사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내가 좋아하는 게 뭘까?’ 그 답을 찾고 싶었을 뿐이다. 벌써 10년 전 일이다.
일용직 현장을 흔히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산다"라고 말한다. 그만큼 일반 직장 보다 불안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막상 현장에서 일해보니, 내게는 오히려 직장보다 더 편했다. 정해진 시간 동안 일하고 퇴근하면, 온전히 개인 시간이었다. 게다가 초보 기준 월 300만 원은 무난히 받을 수 있었다. 딱 출근한 날짜만큼 월급을 받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마저도 장담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경제 불안과 취업난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다만 분기점이 있었다면 코로나 팬데믹이 그 시작이었다고 생각한다. 시대는 항상 변해 왔다. 대부분의 변화는 우리가 느끼지 못할 정도로 천천히 진행되었다. 그런데 코로나는 그 속도를 단숨에 앞당겼다. 여기에 인공지능의 등장은 고용 시장을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식당만 가도 사람 대신 키오스크와 로봇이 일을 하고 있다.
2030 청년들은 자신의 노력이 부족하다며, 불안의 원인을 자기 자신에게서 찾는다. "더 노력하면 될 거야" 이 말로 자신을 다독이지만, 과연 그게 최선일까? 모두가 ‘안전하다’고 믿는 대기업을 향해 불나방처럼 몰려들수록,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누군가는 웃지만, 누군가는 고개를 숙인다.
건설 현장은 조금 다르다. 용접, 석고, 덕트, 비계, 배관 등 각 공정마다 전문 기술이 필요하다. 숙련도에 따라 개인 몸값이 정해진다. 평균 19만 원에, 많게는 25만 원 이상 받는다. 중요한 건 회사가 아니라 ‘기술’이다.
큰 회사든, 작은 회사든, 일반 가정 집이든 상관없다. 내 기술이 곧 경쟁력이다. 회사가 나를 평가하는 게 아니라, 내가 나의 가치를 만든다. 예를 들어, 용접한 철이 떨어졌다면 다시 붙이는 것도, 해결책을 찾는 것도 온전히 내가 책임져야 한다.
학교의 교육은 거푸집처럼, 똑같은 틀로 학생을 평가하고 있다. 표준화된 교육으로 다양한 사람들에게 동일한 과목을 가르치고, 그 과목으로 사람을 평가한다. 성적 순으로 등급을 매기고, 그 등급으로 대학과 회사에 기여도를 높게 준다. 좋은 점수가 곧 좋은 인생이라는 생각에 우리는 끊임없이 노력하지만, 이젠 더 이상 높일 수 있는 점수가 없다. 매년 같은 과목을 공부한 졸업생들이 수천 명이 쏟아지고, 소수에게 허락된 자리를 위해 인생을 바친다. 이처럼 사회가 만든 프레임에 갇혀 경쟁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인 것이다.
부모님이나 학교 그리고 사회는 미래의 변화를 경험한 적이 없다. 우리는 과거 세대가 경험하지 못한 미래를 살아가고 있다. 이 거대한 물결을 극복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은 없다는 말이다. 누군가는 답을 알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그 답이 정말로 정답인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앞으로 미래는 모두가 '모호한 시대'를 살아가야 한다.
변화란 위험과 기회를 동시에 안고 온다. 마치 바다의 파도처럼, 때로는 당신을 위로 올려주기도 하고, 때로는 당신을 뒤덮을 수 있다. 변화라는 파도를 탈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사람뿐이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우리 모두는 사회가 만들어놓은 틀이라는 알 속에 있다. 그 알을 깨고 나와 자신만의 세계로 날아오르는 용기가 필요한 시대다.
불안은 단순한 결핍이 아니라 '더 나아지고 싶다'는 열망의 또 다른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