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실한 고용 시장에서 살아남기

by 김명복


서울 건설 현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당시 마곡 현장이 끝나고, 구의역 건설 현장으로 갔다. 하루 출근 인원 2,000명이 넘는, 꽤 큰 현장이었다. 그곳에서 60대로 보이는 근로자분을 알게 되었는데, 근무한 지 일주일 정도 되었다고 하셨다.



내가 속한 팀의 소장님은 시간에 매우 민감했다. 점심시간과 퇴근 시간은 정확하게 지키기를 원하셨고, 약 30명 이상의 인원을 관리하기 위한 본인만의 원칙이라고 말씀하셨다.



"제가 딱 두 가지 중요하게 여기는 게 있어요. 점심시간과 퇴근시간, 이 두 가지는 꼭 지켜주세요."



근로자들은 보통 새벽 5시에 출근한다. 몸을 쓰는 일이라 쉬지 않으면 오후까지 작업이 힘들다. 일 시키는 입장에서는 더 많이 시키고 싶겠지만, 일하는 입장에서는 몸 관리를 잘해야 오래 일할 수 있다. 서로 간의 암묵적인 배려라고 할까. 원칙상 점심시간은 1시간이지만, 1시간 30분을 가지는 이유다.



그런데 여기 소장님은 자기만의 원칙을 고수했다. 늦어도 11시 30분이면 점심을 먹으러 출발하지만, 이곳은 11시 45에 출발했다. 밥을 먹고 현장에 다시 들어오면 12시 10분 정도. 오후 일과는 1시부 터지만 공지사항 전달을 위해 12시 30분이 되면 움직였다. 이렇게 오전과 오후를 보내면 야간 근무처럼 체력이 두 배 이상 힘들게 느껴졌다. 나만 그런가 했는데, 물어보니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였다. 보통 일주일이면 현장에 적응을 하지만 이곳은 2개월이 걸렸다.



현장에는 오전과 오후 한 번씩 쉬는 시간이 있다. 그 시간도 9시부터 20분에서 30분 정도로 고수했다. 일반적으로 쉬는 시간은 팀장 재량에 따라 자유롭지만, 이곳은 정확히 정해져 있었다. "일이 늦어지면 여기까지 끝내고 쉬자", "이거 오래 걸릴 것 같으니 미리 쉬자"라고 조율이 가능했다. 하지만 시간이 고정되면, 쉬는 시간이 줄어든다는 생각 때문에 조급해지고, 효율성이 떨어지게 된다



60대 근로자분은 일주일 뒤에 그만두셨다. "여기 너무 힘들어서 일 못하겠어. 최소한 쉬는 시간은 줘야지... 너무 빡빡해"라고 하시며 잘 생각해 보라며 연락처를 남기시고 떠나셨다. 처음엔 그런 말을 좋은 시선으로 보지 않았지만, 3개월이 지나면서 내 생각이 바뀌었다.



현장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점차 웃음을 잃었다. 과장된 표현으로 좀비처럼 일만 했다. 걸어 다니는 모습을 보면 어깨는 축 처져 있고, 발을 질질 끌면서 걸었다. 담배를 피울 때도 허리와 고개를 숙이고 입으로 담배만 물고 있었다. 그러다 쉬는 시간이 끝나면 한숨 쉬며 무거운 몸을 이끌고 일하러 갔다. 그 모습을 보면서, 그때 그분은 자신에게 맞는 선택을 하셨던 게 아닐까 싶었다



무엇을 위한 버팀일까?



일을 하면서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나는 지금 돈을 위해 이 일을 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의미를 찾아가는 걸까?'



구본형 작가의 '그대, 스스로를 고용하라' 책에는 직업의 네 가지 종류가 나온다. 첫째, 좋아하는 일로 원하는 만큼 돈을 벌 수 있는 직업, 둘째,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도 대신 돈은 적게 버는 직업, 셋째 돈만 잘 버는 직업, 넷째 돈도 적게 벌고, 하고 싶은 마음도 없는 직업이다. 대부분 사람들이 넷째에 속한다고 한다.



과거에는 무조건 첫 번째 직업을 원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충분한 돈을 벌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래서 두 번째와 세 번째 사이를 오가며 저울질했다. 돈만 보고 일한 적도 있었고, 의미만 쫓다가 경제적으로 생활이 어려워진 적도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건, 나는 한 번도 "돈도 적게 벌고, 하고 싶은 마음도 없는 직업"을 선택했던 적은 없었다. 아무 의미 없이, 그저 생계를 위해 하는 일이 가장 괴롭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결국 중요한 건 '돈과 의미 사이에서 어떤 균형'을 찾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직장을 선택할 때 ‘편안한 직장’이나 ‘높은 급여’를 바란다. 물론 그 기대 자체는 잘못된 게 아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고용 시장에서 이런 이상적인 직장을 찾기란 쉽지 않다. 때로는 ‘내게 맞는 환경’을 찾아 떠나는 것도 하나의 선택이 될 수 있다. 자신에게 맞지 않는 곳에서 억지로 버티며 일하기보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나에게 맞는 방식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들은 스스로의 손과 발을 이용해 우리들의 신변에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배우고 실천하고 깨달아 대응해야만 한다. 『혁명의 팡파르』, 니시노 아키히로



한 우물을 깊게 파야 성공한다지만, 처음부터 정답을 아는 사람은 없다. 결국, 내게 맞는 우물을 찾으려면 여러 개를 시도해 봐야 한다. 이 선택이 옳고 그른지는 직접 경험해 봐야만 알 수 있다. 처음부터 한 우물을 깊게 파는 게 아니라, 넓고 얕게 탐색하며 가능성을 열어두는 게 먼저다. 그러다 '이거다' 싶은 순간이 오면, 그때 집중하면 된다. 그런데 이 선택이 맞는지 틀린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 답은 나만의 감각에서 나온다. 감각이란 경험이다. 다양한 시도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좋음’과 ‘싫음’에 대한 나만의 기준이 생긴다. "어! 이거 괜찮은데?" 혹은 "이거 뭔가 이상한데?" 같은 느낌은 수학 공식 같은 명확한 논리가 아니다. 경험에서 나오는 동물적 감각에 가깝다.



결국, 불확실한 시대에 헤쳐 나가는 힘은 '정답'이 아니라 '감각'이다. 나만의 감각이 있다면, 때로는 멈추더라도 방향을 잃지 않는다. 흔들리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흔들려도, 멈춰도, 다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갖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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