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백수의 증가 원인 : 월급 50만원

by 김명복

'50만 원만 받고 일하겠습니다.' 영상 회사 면접에서 내가 꺼낸 말이었다. 서른한 살, 신입치고 적지 않은 나이였다. 부족한 실력으로 내세울 수 있는 건 적은 급여를 감수하겠다는 선택뿐이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영상을 배우고 싶었고, 어떤 분야인지 알고 싶었다.

'좋아요. 월 50만 원에 인턴 시작하는 걸로 하죠.' 그 자리에서 출근 확정을 받고, 3개월 인턴 생활이 시작되었다. 회사에는 사장, 감독, 팀장, 사원 두 명, 그리고 나까지 총 여섯 명이 있었다. 내가 처음 맡은 프로젝트는 극장판 애니메이션 합성 작업이었다. 영화관 전면 스크린과 양쪽 스크린 세 개를 하나로 연결하는 프로젝트였다.

일주일이 지나자 기대했던 것과 현실이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회사 사람들은 좋은 분들이었지만,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반복적인 작업을 하는 것이 싫증 났다. 영상 학원을 다니며 배울 때는 즐거웠는데, 막상 실무에서는 달랐다. 합성 작업 자체가 싫은 건 아니었지만, 뭔가 미묘하게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조금 버티면 나아질 거라 생각했지만, 점점 흥미를 잃어갔다. 결국 인턴 3개월을 끝으로 회사와 영원히 이별하기로 결정했다.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생각해 보았다. 왜 50만 원이었을까? 회사란 조직이 나와 맞지 않았다는 걸 내 무의식은 알고 있었던 것 같다. 50만 원이라는 금액은, 미련 없이 회사를 그만둘 수 있는 나만의 심리적 안전장치였던 것이다.

사람들은 회사를 다니지 않는 사람을 백수라고 부른다. 그리고 백수 중에서도 취업할 의지 자체가 없는 사람을 사회는 '쉬었음 청년'이라고 부른다. 처음 '쉬었음 청년'이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을 때, 나도 백수였다. 그저 내가 의지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며, 나 자신이 문제라고 여겼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런 기사들을 볼 때마다 짜증이 났다.

"쉼 청년 역대 최대 44만 명, 일할 생각 없다."

"부모는 일하는데, 자식은 쉰다."

"올해도 경고등"

누구를 위한 기사인 걸까?

우리 사회는 '쉼'에 대해 인색한 한 것 같았다. 대부분의 기사 내용은 같았다. 퇴사와 취업을 못하는 이유는 양질의 일자리 부족이며, 청년들은 원하는 일자리를 찾지 못하기 때문에 쉬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퇴사 후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마치 게으르거나 의지가 부족한 것처럼 취급받았다. 일하지 않으면 '문제'가 된다는 시선이 가득했고, 내 삶을 위한 선택조차 '사회적 문제'로 낙인찍히는 듯했다.

사회는 사람들을 특정한 틀에 끼워 넣으려고 한다. 일하면 취업자, 일하지 않으면 백수, 취포자... 하지만 누군가의 시선에서는 노는 것처럼 보여도, 그 시간이 자기 자신을 찾는 과정일 수도 있다.

겉으로 보이는 현상만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

우리는 몸에 열이 펄펄 끓고 39도를 넘어가면서 식은땀을 흘러야 쉬어도 된다는 암묵적인 인정을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정신적으로 지치고, 삶의 방향을 잃었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사회와 언론에서 제시하는 통계는 '그냥 쉬었음'이란 선택지를 제시하고 그에 대한 응답을 수집한 결과일 뿐이다. 사회는 눈에 보이는 상처에는 관대하지만, 보이지 않는 내면의 고통이나 자기 성찰을 위해 멈춤에는 여전히 엄격하다.

나는 버티면 된다는 이야기를 믿었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그리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나와는 맞지 않음을. 그래서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이래도 안 되고, 저래도 안 된다면 지금까지 하지 않은 선택을 해야 새로운 길이 생길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퇴사를 한 진자 이유는 내가 원하는 것을 찾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회는 쉼 현상의 원인을 돈, 과중한 업무, 워 라벨 등 외부적인 이유에서 찾고 있지만, 나는 내적인 요인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자발적 백수의 증가의 원인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백수였고, 때론 직장인이기도 했다. 지금은 건설 일용직 근로자로 일하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쉬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일하기 싫을 때도 있었고, 더 좋은 직장을 희망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대기업 복지를 바라거나 안정된 직장을 찾기만 했던 것도 아니었다. 처음에는 몰랐다. 하지만 이제는 알게 되었다. 나는 그냥 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기 위해 쉼을 선택했던 것이다. 현실에서 답을 찾으려 했지만, 어떤 것도 해결책이 될 수 없었기 때문에 멈춰야 했다.

나는 일할 때 보다, 백수일 때 더 많은 것들을 할 수 있었다. 처음 쉬었을 때, 나도 나를 의심했다. '나는 지금 그냥 쉬는 걸까? 아니면 진짜 내가 원하는 걸 찾기 위한 나만의 선택인 걸까?'

나는 사회적으로 기피되는 일자리에서 오히려 자유와 성취감을 느꼈다. 회사라는 틀 안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X 팔' 쌍욕을 들어도 괜찮았다. '죄송합니다.' 한 마디 하고, 다시 하면 그뿐이었다. 몸은 힘들고 현장은 거칠었지만 마음만은 편했다.

자발적 백수의 시간은 단순한 '쉼'이 아닌 '나를 찾는 여정'이었다. 그 과정이 없었다면 나는 여전히 사회가 정해준 틀 안에서 불안해하며 살고 있었을 것이다. 길은 하나가 아니다. 모두가 같은 길을 걸을 수도 없다. 그런데도 세상은 하나의 길만을 강요한다. 나는 그 길에서 벗어나 내 길을 찾았고, 이제는 그 선택이 옳았음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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