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엔 너무 많다. 쓸모 있는 것들이.
쉴틈 없이 정보가 밀려 온다.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를 정도로.
너도나도 관심을 끌고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무엇인가를 한다.
나도 뭔가 해보려고 이것저것 하지만, 포기한다.
마음이 불편해진다.
변화를 위해 시작했던 것들이 도리어 나를 위축 되게 만든 것이다.
왜 이렇게 나는 시작을 해도 포기하는 걸까?란 부정만 생긴다.
그 이유는, 쓸모 있는 것들을 만들려고 했기 때문이다.
이게 맞는지 틀린지, 의미가 있는지 확신할 수 없음에
쓰기에 집중하는 것 보다, 타인의 반응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좋아요가 좋으면 좋고, 나쁘면 나빠진다.
판단이 기준이 내가 아니라 너에게 있는 것이다.
그러니 글 하나에 힘들고, 온 마음을 담으려 애를 쓴다.
이때 애씀은 진실이 아니다.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자 결핍이다.
그러니 이제는 쓸모 있음 대신 없음에 집중하자.
모두가 쓸모 있음에 집중할 때, 아무도 관심없는 것을 쓰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오늘 하루 종일 비가 왔다.
그러면 비에 관해 쓰면 된다.
"오늘 비가 왔다. 카페에 사람이 많이 있었다.
그 사람들은 모두가 달랐다. 핸드폰을 보며 고개 숙인 사람들.
담패 피러 야외 테이블 앞에 서성이는 남정내들.
아침 부터 공부하는 어머님. ...
오전 7시, 무인카페 나 혼자 있을 것 같았는데,
나만의 착각 이었다. 한국사람은 참 부지런 하다는 걸 새삼 느낀다.
그럼에도 오전 카페 앉아 있는 시간이 좋다.
오늘 처럼 비 오는 날, 그냥 멍하하니 창밖을 보고 있으면
생각에 틈이 생긴다. 그 틈이 고요함이 되고 마음에 안정을 준다."
왜 비를 주제로 쓰는지 궁금하다고? 이유는 없다.
이유를 생각하는 순간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 이유라는 것은 결국 타인의 반응을 위함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마음 편하게 쓸모 없는 것들에 집중하면 된다.
쓸모 없음을 쓰는 이유는 내 감각에 집중하기 위함이다.
내가 무엇을 보고 느꼈는지 관찰하기 위함이다.
그렇게 타인에 휘둘리지 않고 '쓰는' 행위에
저항감이 사라지면 그때는 무엇이든 쓸 수 있다.
이걸 써도 되나? 맞는건가? 이런 의심이 없기 때문이다.
관심은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다.
무엇을 써야 할지도 모른다면, 무관심이 상책이다.
그래야 마음 편히 글을 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