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가 썰렁하다. 반팔에 얇은 외투 걸쳤는데 팔뚝에 닭살 돋는다. 해가 벌써 떴다. 하늘은 푸르고 구름은 한 개도 없다. 버스가 요란하게 성난 황소처럼 지나간다. 승용차들은 코걸이 하듯 드르렁거린다. 빨간 신호등이다. 빨강 사람을 본다. 작은 점이 사람 실루엣 따라 박혀있다. 작은 구슬 같기도 하고 날치알 같기도 하다.
도로 건너편 파마머리 어머님은 바퀴 달린 바구니를 끌고 가신다. 그 옆을 중학생 정도 학생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간다. 근데 도로 중앙선을 따라 지나간다. 혼자 여유롭게 도도한 모습이 뭐랄까? … 나 멋있지! 느낌이다. 그냥 똥폼 잡는 것 같은...
중학교 시절 비를 맞은 적이 있다. 그때 난 방금 지나간 자전거 학생 같았다. 교복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천천히 아무렇지 않은 척 걸었다. 비를 맞는 내 모습이 멋있다고 느꼈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도통 알 수 없다. 이유를 따진다면 그냥 이 이유였다.
비가 오면 우산을 쓴다. 눈이 오면 빗자루로 쓴다. 어른들이다. 아이들은 흠뻑 젖는다. 비가 오면 비에 젖고 눈이 오면 땀에 젖는다. 이유는 없다. 보도콜리처럼 달리고 싶단 본능에 충실하다고 할까.
해가 뜬다. 하늘에 누런색이 스며든다. 분명 날은 밝았는데 해는 보이지 않았다. 24분 정도 걷다 보니 건물 틈 사이로 눈뜨지 못할 정도로 강렬한 빛이 보였다. 눈이 찡그려졌다. 주차된 차량이 금처럼 번쩍번쩍한다. 인도 하수구 맨홀 뚜껑도 빛난다.
빛은 차별하지 않는다. 국산 차든 해외 차든 하수구든 그냥 비춘다. 심지어 까만 아스팔트 도로도 햇빛을 받으니 밝음과 어둠이 생긴다.
바둑돌도 흑돌과 백돌이다. 서로가 땅을 집어삼키기 위한 수 싸움의 게임. 내겐 너무 어렵다. 몇 번 시도했지만 머리 아파서 체스를 배웠다. 규칙이 명확했기에 자유도가 높은 바둑보단 쉬웠고 재미있었다.
떠돌이 개가 응아를 한다. 짧은 다리를 굽혀 엉덩이를 나무에 들이밀면서 자세를 잡는다. 그 옆을 지나가고 있었다. 허공에서 개와 내 시선이 교차했다. 1초? 걸렸을까 두 걸음 되기 전에 볼일을 끝낸다. 생각해 보니 눈이 마주쳤을 태 노상방뇨하다 놀랴 느낌이었다. 아무 일 없다는 듯 엉덩이 씰룩거리며 기다려준 친구'개'와 지나간다. '뻘쭘하면서 아닌 척 하긴.'
떠나 간 그 자리엔 황금? 이 있었다. 쬐금 했지만 밝게 빛나고 있었다. 태양처럼.
똥 하니 생각나는 게 있다. 어디서 들은 이야긴데, 공자? 노자? 가 길을 가던 중 방금처럼 동 누는 사람을 만났다. 길가 옆에서 볼일 보는 사람에게 네 이놈 했다. 어디서 똥을 싸지르느냐면서.
다시 길을 가고 있었는데 이번엔 길 한가운데 볼일 보는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지나쳤다. 같이 길을 걷던 제자가 스승님께 물었다. 왜 그냥 가시는 건지요? 길 가 쪽에 볼일 보는 사람은 일말의 양심이라도 남았기에 부끄러운 걸 아는 자이다. 길 항 가운데 볼일 보던 사람은 일말의 부끄러움도 없는 자니 굳이 말할 필요 없다. 방금 강아지를 보며 생각했다.
"그래도 양심은 있는 녀석이었구나."
글을 쓰다 보면 확장이 된다. 전혀 의도가 없었는데 사물을 보고 기록을 하면 과거의 경험과 연결된다. 끝없이 말이다. 주변 사물이 트리거가 되어 내 무의식에 잠들어 있던 경험을 들추는 것 같다. 글을 쓰고 나서도 신기함을 느낀다. 내가 적은 글이지만 이런 글이 나올 거라 예상 못 했다. 그래서 더 즐겁다. 어떤 글이 나올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