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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특별하다.

by 김명복


1

세상은 모든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다.

가능성이란 자유다. 자유란 선택의 자유다.

세상에 가득한 가능성 중, 원하는 것을 골라잡으면 된다.



옷 가게 들어가 나에게 어울리는 옷을 고르는 것처럼 간단한 일이다.

쓱~ 훑어보다 마음에 들면 그저 가져오면 된다.

탈의실에 들어가 거울 보며 어울리는지 맞춰 보고, 아니다 싶으면 다시 고르면 된다.



하지만 스스로 선택한 경험이 없다면, 기회가 와도 기회를 잡지 못한다.

내 마음이 이끄는 감각을 알아차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꿈이 없어요.

목표가 없어요.

하고 싶은 게 없어요.



분명 진실이지만, 거짓이다.

이런 고민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증거다.

진자 속마음은 이럴 것이다.




사실, 내가 하고 싶은 게 있어. 그런데 내가 할 수 있을까?

이걸 해도 될지 모르겠어. 돈을 벌 수 있는지 확신도 없어.

나이도 많고, 시간도 없어. 자신감도 없고.

그렇다고 지금처럼 산다면 정말 답답할 것 같아.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어.



모르는 게 아니다. 없는 것도 아니다.

그저 외면하고 있을 뿐이다.

인정하는 순간 고민은 사라진다.





2


그럼에도 정말 모르겠다면,

'관찰 일기'를 적으면 된다.

단어 그대로, 관찰하고 기록하면 끝이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의미 없음' 기록이다.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눈앞에 들어왔다. 관찰하기 시작했다.
나무 테이블 위에 물이 고였다. 물방울이 유리컵에 맺혔다. 그러다 비가 창문 유리를 타고 흘러내리듯 테이블까지 내려갔다. 빨대는 검은색이다. 주둥이를 보니 절단면이 깔끔하지 않다. 작은 가시처럼 솟아난 듯 둥근 모양이 어긋나 있다. 유리컵의 두께는 0.5센티 정도처럼 보인다. 남은 양은 절반, 얼음은 거의 다 녹아내렸다. 북극 빙하가 생각났다. 아기공룡 둘리도 생각났다. 빙하가 녹아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도시까지 떠내려온 둘리. 그리고 그 빙하가 지금 내 커피 속 얼음과 겹쳤다. (생략)

아메리카노는 어떻게 생겼을까 - 보러 가기



이 글에는 '의도'가 없다.

눈에 보이는 걸 그대로 글로 옮겼을 뿐이다.

하지만 막상 하려면 쉽지 않다.

우린 자유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무한한 자유가 주어진다면

숫자와 시간에 길들여진 우린 설렘 대신, 두려움을 느낄 확률이 높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곳에서 자유란 또 다른 억압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완전한 자유를 누린 경험이 없다는 의미다.


의미 없는 글쓰기도 누군가에겐 자유가 아니라 제약일 수도 있다.

주제는 무엇이며, 어떤 의도를 가졌는지, 메시지는 무엇이며, 독자들은 이 글을 읽을 때 어떤 감정을 느낄 것인가에 대한 기준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보통 책이나 강의를 들으면 머리론 알지만, 막상 행동할 땐 막힌다.

너무 많은 정보와 방법들이 '이렇게 해야 한다'는 강박을 만들기 때문이다.

머리와 손이 너무 멀어 글이 나오지 않는 현상이다.


글쓰기를 할 때, 어떻게 써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는 없다.

몰라도 괜찮다. 유튜브, 챗지피티로 물어보면 방법은 1초 만에 알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방법을 잠시 뒤로하고, 아이처럼 쓰는 경험이다.

그저 보고 듣고 느끼는 그대로를 쓰면 된다.



3

"의미 없는 행동을 해보세요."

"... 모르겠어요"


"그냥 하시면 됩니다."

"..."


그럼에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눈을 3초간 감았다 뜬 순간,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을 글로 적으면 된다.

1분도 좋고, 5분도 좋다.


적을 때는 많은 저항감이 느껴진다.

이렇게 적는 게 맞는지, 이게 의미가 있는지 스스로 의심하게 된다.

하지만, 적고 나면 알게 된다.

전부 내가 만든 착각이었고, 왜곡이었다는 것을.


내가 읽은 글을 바로 읽지 말고, 하루 지나서 읽게 되면 스스로 놀라게 될 것이다.

의미 없던 글이라 생각했는데, 그 안에서도 느껴지는 '무엇'이 있음을 깨닫기 때문이다.

아는 것이 아니다. 느껴야 하고, 체험해야만 알게 된다.


현실은 많은 제약이 있다.

자유를 누리기 위해 현실적인 부분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흰 여백에선 모든 게 자유다. 점 하나를 찍으면 내가 창조주가 된다.

점 두 개를 찍으면 선이 되고, 세 개를 찍으면 삼각형이 된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다.


창조는 평범하다. 너무도 평범해 사람들은 모른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서 주인공은 달리기만 한다.

아무런 목적도 이유도 없다. 그저 달리고 싶어 달렸다.


사회가 주목하기 시작했다.

뉴스와 라디오에서 그를 세상에 알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가 왜 달리는지 여러 해석이 오갔다.


어느새 사람들이 그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아니 추종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주인공을 보며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특별한 이유가 있을 거야."


머리카락과 수염이 목을 가릴 때쯤, 갑자기 그의 달리기가 멈췄다.

자그마치 3년 만에 멈춘 것이다.


뒤따르던 사람들도 함께 멈췄다.

주인공을 보며 특별한 말씀이 있을 거라며 침묵을 지켰다.

한 마디도 하지 않던 '그'의 입술이 열렸다.


"이제 지쳤어요. 집에 갈래요"



특별함엔 이유가 없다.

반복하고 지속하다 보면 특별해진다.

난 그저 의미 없이 했던 행동인데,

세상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당신은 특별하다.

당신의 삶 역시 특별하다.

그 삶을 글로 옮겨 공유하는 순간,

세상은 당신의 특별함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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