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른다는 것은 ‘살아 있음’이다.
생명을 가진 존재는 끊임없이 움직인다.
돌은 존재하지만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서 ‘있다’고 하지 ‘살아 있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돌이 움직이는 순간은 외부의 힘이 작용할 때 뿐이다. 비, 바람, 포크레인, 사람… 외부에 힘이 작용하지 않으면 움직일 수 없다.
사람도 살아 있는 사람이 있고, 그냥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생각하고 자신의 의도를 가지고 있다면 살아 있는 존재다.
반대로 외부의 영향으로 움직이는 사람은 돌과 같다. 살아가는 게 아니라, 시간에 의해 살아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 삶에 즐거움은 없다. 오직 권태와 무기력, 부정과 자책만이 있을 뿐이다.
나무같은 인생이다.
봄이 되면 잎을 피우고, 태양이 뜨면 빛을 받아 영양분을 공급한다. 겨울이 되면 잎을 떨구고 에너지를 줄이고 다음 봄을 준비한다.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습에 신뢰가 가지만, 한 편으로 자신의 의도인지 생각해 본다.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하는 나무의 인생.
그 인생은 급여를 받으며 불평하는 누군가의 모습일 수도 있다. 그저 4계절을 나기 위해 회사에 몸을 의탁하는 존재.
나무가 의도를 가지면 어떻게 될까?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엔트‘가 될 것이다. 평소에 눈감고 가만 있다, 위급한 순간 뿌리를 다리 삼아 진격할 것이다. 이 순간이 바로 ’가능성‘을 인식한 순간이다.
아이러니 한 것은 현실에 있을 수 없는 판타지 영화를 보며 세상은 열광한다는 것이다. 그저 ’영화‘라는 프레임을 씌었을 뿐인데.
우리 인생도 판타지 영화가 될 순 없는 걸까?
모든 걸 현실적으로 생각해서, 판단한 결과 지금 이다. 만족하는가? 아니라면 앞으로 남은 삶은 ’현실‘이 아닌 ’영화‘처럼 살아 보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