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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nneth Feb 07. 2023

좋은 곳 (The Good Place) - 1

종교보다 더 그럴듯하고 더 황당한 사후세계에 대한 가장 지적인 코미디

난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는다. 좋은 드라마가 없다는 건 아니고, 미드든 케이드라마든, 연기 중인 배우가 마치 시청자들 들으라는 듯이 친절 상황 설명을 지속적으로 하거나, 모든 주요 배우들이 겉모습이나 목소리는 다들 달라도 마치 한 사람처럼 (아마도 작가?) 말하거나, 아니면 영화 대비 충분한 러닝타임이 보장되어 있다는 걸 마치 아는 듯, 주연 배우들이 특정 상황에서 과도하게 긴 오열이나 감정의 분출의 길이를 하염없이 늘리는 장면 등을 참고 넘어갈 수 없어서이다. 이런 드라마를 한번 보느니 벨페스트 (Belfast, 2021년작)를 10번 연속으로 보겠다는 게 나란 사람이다.  (참고로 나는 잊을만하면 나타나는 무한 반복 리플레이 때문에 예능도 안 보던 사람인데, 뭐가 더 보기에 고통스러운지를 누가 물어본다면 그건 잘 모르겠다.)

 

이렇게 생겨먹은 나를 사로잡는 TV시리즈들이 간혹 있는데, 이 중 하나가 미국에서 2016년부터 2020년까지 방영된 The Good Place라는 시리즈이다.

2020년 종영될 때까지 이 시리즈의 존재자체도 모르고 있다가 2022년이 되어서야 알게 되면서 전체 에피소드들을 며칠 동안  몰아본 것이야 스트리밍 서비스가 대세인 요즘 세상에서는 흔하게 있는 일이겠지만,  전체 이야기의 사실상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엘레노어 역의 크리스틴 벨을 보면서 디즈니 영화 프로즌의 아나 역할을 맡았던 바로 그 배우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는 사실은 좀 심했지 않았나 싶다. (이 시리즈를 같이 시청한 청소년 딸아이가 이 사실을 알고서 어떻게 그걸 몰랐냐며 깔깔대고 웃어서 자존심이 약간 상함.)


전체 시리즈를 통해서 가장 큰 캐릭터의 변화를 보여주는 마이클이란 인물은 과거 영화 세 남자와 아기바구니에 출연해서 동시대 많은 이들에게 친숙한 얼굴인 테드 댄슨이 열연했고, 이 마이클과 아마도 필연적?으로 같은 이름을 가진 마이클 셔 (Michael Shur, 작가/프로듀서)는  이 황당하고 훌륭한 그리고 완벽한 시리즈의 창조자이자 설계자이다. 마이클 셔는, 미국의 많은 재능 있는 작가나 코미디언들이 그렇듯 SNL 작가 출신으로 전 세계적으로 유명했던 TV시리즈  더 오피스의 작가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만약 어느 날 당신이 의식을 차리고 보니 무미건조한 어떤 사무실에서 누군가가 친절하게 그러나 담담하게 당신이 사망했음을 확인시켜 주고 이제 곧 가게 될 곳을 알려준다면...?


엘레노어가 이렇게 마이클을 만나면서 이 시리즈가 시작되는데, 나도 그랬지만 이 순간에는 앞으로 얼마나 길고 황당한 여정이 기다리는지는 아무도 눈치챌 수 없을 듯하다. 다만 엘레노어가 처음 정착하게 되는 완벽하게 설계된 이쁜 사후세계 마을 뒤로 뭔가 찜찜함이 느껴졌다면 그 의심은 곧 하나씩 현실의 문제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이후 이 뜬금없는 시작만큼 엉뚱하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가끔은 영악하고 때로는 황당한 방식의 플롯 트위스트와 함께 풀려나가기 시작하는데, 전체 에피소드를 다 본 사람이라면 이 도입부 설정과 마지막 상황이 얼마나 같으면서도 다른지 생각해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 저절로 옅은 웃음이 새어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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