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아니라고 한들

사랑을 여읜 사람들 - 알레프

by 노예올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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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어도 떨어지지 않는 열매의 나무가 한없이 약해진다. 그가 쥐고 있던 가지 끝은 사실 안간힘이었나. 하루에 몇번정도 벌거벗은 자신을 상상한다. 선택했던 것은 사실 선택이지 마음이 아니었던 것일까. 그렇게 놓지 못한 탓에 끝없이 기울어진다. 비가 오던 하늘 탓에 그 끝에 물들이 마치 눈물처럼 뚝뚝 떨어진다. 차라리 아무런 잎도 남아있지 않았더라면 떨어지는 빗물에 저 바닥 눈물자국 다 지워질텐데. 그의 슬픔을 늘어트리는 것은 그 자신이었다.


극심한 부정은 불안을 내재한 부정이다. 마치 부정이 아니면 안되는 듯이. 흐린듯 뿌연 하늘과 그보다 더 뿌연 사람들의 표정. 손에 작은 비타오백을 쥐고 지하철에 오른다. 한번을 바뀐 적이 없는 구두와 가방. 늘 같은 풍경과 같은 기분, 같은 촉감 속에 우울함이 뭔지조차 까먹은 얼굴로 아무렇게나 던져놓은 시선은 죽음과 가장 유사한 형태일 것이다. 그는 아마 한달에 한번 울 것이다. 이유는 중요하지 않다. 그는 우는 것이 규칙이 되었고 생활이 되었다. 울기 위해 눈물를 쥐어짠다. 어두운 방안에 손바닥만한 작은 화면 불빛에 비친 눈물은 마치 별똥별같다. 아마 그에게도 그런 별똥별에 빌 소원이 있었겠지.


더이상 기다리지 못할만큼 강제로 눈을 뜨고 있다가 죽듯 잠에 든다. 뭘 기다리는진 알 수가 없다. 도통 말을 않으니. 그는 나무같은 사람이다.


가끔씩 걸어 올라가던 계단들에 걸려있던 마음을 쥔다. 그는 그 계단에 남아있는 자신의 몇 안되는 기억들이 기대어 있다. 누군가와 나누었던 계단 위에서의 기억이 매번 오르던 발길을 멈추고 내려다 보게 한다. 보잘 것 없는 풍경이라지만 지금 선 곳으로부터 3칸 아래에 쪼그려 앉아있던 그 실루엣을 본다. 귀신을 본다면 이런 식일까. 그는 한참동안이나 풍경이 아닌 그 계단 자리를 바라보다 집을 향한다.


후회는 하지 않음에 괴로움을 느끼고 하였음에 절망을 느낀다. 선택에 대한 후회는 하지 않으려 하지만 늘 그 선택에 대한 근거가 충분했나 의심하게 되고 스스로를 속이다 못해 세뇌를 해나간다. 언젠가 그가 다시 떠올리기 시작한다면 그땐 작은 눈덩이로 끝나지 않을 생각들. 영원히 구르다보면 커다란 폭탄이 되고 만다. 그게 그를 부숴버리고 말 것이다. 그렇다면 멈추게 하려 하기보단 차라리 있는 힘껏 굴려 어서 빨리 비탈길을 벗어나게 하는 것이 그에게 주어질 수 있는 해방 아니겠는가.


이렇게 추운 겨울에 그의 양손은 다른 속도로 얼어간다. 늘 오른손만 먼저 시려웠다. 잡아야 할 것을 잡지 못한 것일까. 잡지 말아야 할 것을 잡고 있는 것일까.


침묵에 대한 대가는 잔인하다. 고립과 외로움으로 점철된 이 세상의 완벽한 철옹성. 비명지르는 법을 까먹은 것처럼 입을 벌리지만 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그는 가끔 차라리 누가 그를 공격하면 좋겠단 생각이 든다. 아무도 영원히 모를 분노를 표현해보고 싶은 것이 그의 유일한 욕구이기에. 그렇지만 세상은 생각보다 친절하다. 냉혹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 사실 그가 잘못 믿고 있던 것은 아닐까. 너무 괴로웠던 나머지 세상이 쓰레기가 아니면 안되는 지경에 이른 것이 아닐까. 나를 괴롭히고 무너뜨린 것이 세상이었으면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사실 아무도 모를 일이다. 왜 다른 사람들은 나처럼 그 세상을 바라보지 않는 것일까.


그가 펼친 노트북에는 늘 보던 것들이 한가득이다. 내가 끊임없이 채워넣고 수정하고 반복하지만 별 다를게 없는 것 같다. 1시간 전의 것과 지금의 것 중 뭐가 더 좋은지 확신이 없다. 또다시 그는 눈물을 흘린다. 뭐가 더 좋은지 확신이 없다. 좋은지 확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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