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산다는 것은 영원히 닿을 수 없는 것

우물 밖은 또다른 우물

by 노예올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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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가 아무리 울고 울어도 내가 있는 이 세상 겨우 가득 채운다. 내가 아는 모든 이들에게도 닿지 못한다. 그래서 모두가 한번쯤은 우물을 올라 빠져 나온다. 그럼에도 우리는 또다른 우물 안이란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 채로 살아간다. 나는 작은 개구리, 가장 목청 큰 개구리라 여겼던 과거의 내가 부끄러워 소리 내는 법을 까먹었던 개구리. 5천만이란 숫자가 우스워보여도 무시 못할 숫자이며 우리가 살며 인사라도 나눠볼 사이의 사람은 기껏 네자릿수가 한계일거란 사실을 자각해보면 이 좁은 땅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사는지 실감이 날 것이다.


다양한 사람을 보고 싶거든 카페나 식당 알바보단 부업, 투잡 목적으로 홍보되어지는 공고들을 보고 찾아가보면 좋다. 그것을 전업 삼은 사람부터 직장을 가진채로 조금이라도 더 벌어보고자 주말없이 나온 누군가의 아버지, 어머니, 젊은이들이 보인다. 학력과 출신, 본업에 상관없이 누구나 열심히 살고자 이곳에 나온다. 나와는 비교도 안될만큼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내가 봤던 세상 속 사람들은 이정도까진 아니었던 것 같은데. 새로운 곳으로 갈 때마다 훨씬 더 노력하며 사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주6일, 야간까지 1시간 거리의 고깃집 알바를 하러오던 베트남 친구 두 명, 학비를 벌며 학교를 다니기 위해 주말은 낮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쉬지 않고 투잡을 뛰는 나보다 어린 여학생, 주간에 배달을 내내 뛰고도 출근해서 일을 하던 사람. 자식이 둘인데도 주말 이틀을 전부 일하러 나오는 어떤 집의 어머니. 내가 열심히 한다고 발버둥 치던 것은 하찮은 몸부림이었다.


겸손은 늘 자각해도 모자라다. 언제나 겸손해야하고 절대란 것은 없단 사실을 명심해야한다. 처음 그 마음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지만 지키려는 시늉이라도 해야한다. 무언가를 이루고 싶고 나라는 존재를 세상에 보이려면 가장 먼저 더 큰 우물로 나와서 봐야한다. 내가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존재인지 알아야 한다. 더 큰 세상, 더 수많은 사람들과 마주해봐야 한다. 나를 지키던 자존감을 때로는 조금 무너뜨릴 필요도 있다. 나의 초라함이 부끄러워 더 열심히 살 수 있도록.


까맣게 물들은 손을 보고 근로소득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자각한다. 까맣게 잊고 있던 그 숭고함. 그 시간에 밖으로 나와 일을 한다는 것. 누군가는 내가 웃고 놀고 있을 때에도 일을 하고 있다는 것. 일 자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렇게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은 어디에서나 존재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럼에도 내가 하지 않는 것은 못하는 것이 아님은 확실하다. 나도 할 수 있는데 하지 않는 것이다. 게으름이 문제가 아니라 의욕과 마음가짐의 문제다. 하지 못한다 여기면 어떤 것도 할 수 없다.


공허한 통장잔고보다 더 무서운 것은 공허해질지 모를 내 마음 아닐까. 돈은 어떻게든 벌 수 있고 일은 찾으면 할 수 있다. 다만 내가 이 자리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게 되면 정신적으로 죽어버릴까 무섭다. 내가 나약해진 것은 세상이 아니라 나로 인함이고 세상이 나를 아무리 괴롭게 한다해도 내가 거스를 수 없다면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 지구가 망하고 나라가 망해도 그 상황을 틈타 내가 먹는다는 이성계식 사고 방식으로 살아도 모자란다. 어떤 식으로든 살아남을 수 있다. 해보면 알 수 있다. 돈을 내 땀으로 벌어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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