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영화

무지 [無知]

by 노예올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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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것도 모르면 차라리 나은 사실들. 세상의 더러운 이면들. 내가 굳이 알지 않더라도 사는데에 지장이 없는 것들. 비겁하게 작동하는 세상의 이치들. 철저히 이득 관계로 돌아가는 인간 사이의 것들. 이 모든 사실의 단편만이 겨우 우리 곁에 와 닿는다.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굳이 찾아가 그 괴로움을 느끼는 것. 눈이 멀지 못함에 괴로워 눈물을 흘리게 되는 것. 세상은 참 잔인하고 지나치게 친절하다.


수많은 시나리오들을 썼다가 지우기를 반복. 아무리 써내려도 완벽이란 단어와는 가까워질 수 없다. 영감을 위해 거장들의 영화를 본다고 해도 그것이 내 것이 되진 않는다. 어렵게 써내린 것들을 지우기가 아까워 고치기를 수십번.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알기조차 어렵다. 가끔은 그리 화려하지 않은 내 인생 이력이 아쉽기도 하다. 그려내고픈 장면과 대사, 연출은 많지만 그 기둥을 중심으로 어여쁜 건물 하나를 세우는 것은 너무도 어렵다. 고려해야할 것이 많고 내가 보기엔 괜찮은 내용이 누군가에겐 허점 투성이이다.


그럴싸한 창작이란 것은 어렵다. 아무리 글을 써내려도 시나리오를 펼쳐내는 것은 너무도 어려운 일이다. 영화를 그렇게 찍어대도 가장 어려운 것은 영화를 찍는 행위다. 가장 괴롭고 힘들지만 그만큼 보람과 즐거움도 동반되고 그보다 큰 아쉬움이 찾아온다. 사람은 단편의 시선으로 살아가기에 그보다 긴 영화에 모든 것을 담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누군가에게 당연했던 감정이 영화에선 설득을 비롯한 설명이 있어야 하고 쉽고 단순하게보다는 어느정도의 복잡성을 필요로 하지만 그만큼 난해하진 않아야 한다. 지루하지 않으면서 피로하지 않아야 하고 납득이 되어야 한다. 영화 속 인물과 작가의 시선이 아니라 영화를 보는 청중의 시선에서 바라볼 때 어디까지 용납가능한지 알아야 한다. 이유가 없는 지문과 대사는 없어야 하며 바람직한 영화를 위한 어느정도의 클리셰도 필요하다.


영화를 찍다보면 내 마음이 흐느끼듯 울렁일 때가 있다. 과연 내가 이 영화로 무엇을 말하고 싶은걸까 스스로 되묻게 되는 시간이 반드시 온다. 현장에서 생각치 못한 변수들로 주제를 이탈하는 느낌이 들 때 끝없이 생각한다. 이 배는 이대로 괜찮은가. 침몰하지 않고 나아갈 수 있는가. 왜 내가 이 장면을 넣고 이런 대사를 짰던가. 나는 무슨 생각이었길래 이런 주제를 잡았는가. 이 말들이 관객의 공감까지 이어질 수 있는가. 이 영화에 너무 나의 자아를 투영하는 것은 아닌가.


글이 그림이 되고 영상이 되어 움직이고 말한다. 그것이 영화. 내 생각과 가치관이 무의식적으로 반영되는 세계. 어쩌면 내 거울과도 비슷하다. 내가 바라본 세계가 투영된다. 내가 보던 것들을 그려낸다. 그야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순 없으니.


가끔은 몰랐으면 나았을 것들이 들려온다. 비겁한 사실들과 치사한 사람들. 뭐가 그리 잘못되었길래.


영화를 그려본다.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그렇게 쥐어본 손가락 사이로 끝없이 세어 나온다. 질질 흐른 물들이 옷을 적실 때쯤 이번에도 아니다란 생각이 든다. 뭐가 아쉬운 것이고 그 아쉬움에 대한 정답은 무엇일까. 내가 빗어낸 것들은 왜 다 그런 형태로 무너지는가.


쌓아온 영화들을 나중에 다시 찾아본 적은 없는 것 같다. 편집 과정에서 질리도록 봐오며 수십번을 돌려본다. 내가 만든 영화는 왜이렇게 보기가 힘든지. 다시는 안보고 만다. 왜 고치려는 마음은 들면서 오답노트는 보지 않는가.


버려진 글들이 어째서 버려지는가. 어디가 어떻게 별로길래. 그리고 어떻게 하면 그럴싸해지기에.


아무 것도 아닐거라 생각한 이들이 쓰나미가 되어 돌아올 때 나는 한없이 작아진다. 나와 관계없던 이야기가 잔혹한 진실이 되어 들려온다. 마치 잘려고 누운 곳 벽 너머에 지옥이라도 있는 것처럼. 날카로운 비명이 들린다. 차라리 들을 수 없었더라면.


없는 세상을 만들어내지만 그 성을 쌓아올린 재료는 세상의 것이다. 새로운 현실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무언가. 그 마음의 출처는 내 인생이다. 내 무의식과 의식의 향연. 가장 보편적일거라 생각한 무언가도 누군가에겐 특별함이다.


무언가를 만들어낸다. 이미 있는 비겁한 것들이 아니라 아직 실존하지 않는 것. 세상에 쓰여진 적 없는 새로운 글이 쓰여지고 우리는 그것을 읽는다. 바탕은 있으나 같을 순 없다. 그냥 나의 목소리가 조금 더 커지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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