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화해할 수 없을 것 같아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는 평생 내 안에 존재했었고,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다.
항상 나는 나의 성격이 답답했다. 아주 어릴 때에는 사람들이 무서워서 말만 걸어도 울어버렸고,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기가 싫어서 학교가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는 책을 읽으며 가기도 했다. 학생이었을 때 나에게 가장 힘들었던 날은 개학식이었다. 아는 친구가 있어도 먼저 말을 걸지 못했고, 모르는 친구들은 더욱 다가가기가 힘들었다. 다행히 좋은 아이들이 먼저 다가와서 친해질 수 있었지만, 10년이 넘는 학교생활을 경험하고 수많은 개학식을 맞이했음에도 먼저 다가가서 말을 걸고 친해지는 건 너무나 어렵고 무서웠다.
고등학교를 처음 입학했을 때에는 달라지고 싶어서 억지로 노력을 했지만 그것마저도 너무나 버거웠다. 다행히 과마다 반이 2개밖에 되지 않아서 고등학교 3년 동안은 개학식이 무섭게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20살이 되고 사회에서 새로운 인간관계를 이루어 나가는 것은 익숙해지지 않았다.
사람들 앞에서 낯을 많이 가리고, 굳어버리는 내 모습이 너무나 싫었었다. 지금은 많이 나아져서 사회적 가면을 쓰고 어느 정도 외향적인 면을 흉내 낼 수 있게 되었지만 가끔씩 너무 오버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에 밤잠을 설치는 바보 같은 날을 맞이하게 되었다.
걱정과 생각들은 또 쓸데없이 많아서 상대방이 답답해할 정도였다.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될 문제를 너무나 깊이, 그리고 좋지 않은 방향으로 생각하는 버릇이 있었기에 아주 장기간 모든 것을 비뚤게 보았던 날들도 있었다. 다행히 이러한 날들이 조금씩 익숙해지고 나아지면서 늘 최악을 생각하지만 늘 최악은 비켜나갈 수 있는 어쩌면 행운을 맞이할 수 있었다.
이러한 성격은 하루아침에 바뀌는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를 부러워하고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과 모습들을 선망하며 나를 억지로 바꾸어나가는 스스로를 마주할 때면 나는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하는 고민에 빠졌다. 나는 내향적인가 외향적인가 하는 질문으로 시작하여 끝에 다다른 결론은 ‘나는 진실되지 못한 사람이구나’라는 자책의 마음이었다.
누군가는 나의 성격을 조심성이 많고 신중한 사람이라 실수를 하지 않고, 인간관계를 깊게 이루어나가는 사람이라고, 오히려 좋은 것이라고 말하고는 했지만, 나는 이러한 내가 너무나 싫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 또한 타인에게 보이는 일이고, 무대에 서는 일이었기 때문에 이런 내 성격은 너무나 반갑지 않았고 사랑할 수 없는 것이었다.
자아가 성립되는 시기에 너무나 많은 일을 겪었다.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도 심해졌고, 할 말을 하지 못하고 늘 당하고만 살고 자처해서 손해를 보는 것을 택하는 내가 증오스러웠다. 바뀌고 싶었지만 방법을 몰랐기에 나를 썩힐 수밖에 없었다.
공황장애와 우울증이 오고, 너무나 많은 것들이 뒤틀려 가고 있었다. 어떤 누구도 나에게 뭐라고 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속마음을 멋대로 판단해서 눈치를 보았고, 오지도 않은 위험과 죽을 것 같은 느낌은 더 이상 나를 바라보고 싶지 않게 만들었다. 분명히 시작은 이유가 있었겠지만 더 이상 생각이 나지 않은 원인에 대한 우울의 결과는 나를 계속 갉아먹고 있었다. 결과만 남은 날들은 그저 내게 이유 없는 눈물과 퉁퉁 부어버린 눈, 그리고 정신이 아픈 것보다 신체가 아픈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 후 저질러버린 상처투성이 양쪽 팔 뿐이었다.
너무나 어두운 이야기를 한 것 같아서 마음이 무겁지만 극복해나가고 있는 나 자신을 이야기할 것이기 때문에 위로가 된다.
내가 생각을 바꾸게 된 계기는 정신과 약을 복용하기 시작하고, 나의 취미와 나의 진로를 정확히 정하고 나서부터였다. 앞에서 말했듯이 사람들 앞에 보이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기에, 사람들에게 억지로라도 나를 비추어야 했고,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말처럼 조금씩 나도 적응할 수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신경을 덜 쓰는 방법을 찾은 것이었다.
무대가 무서웠던 이유는 사람들의 눈길 때문이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나의 외모와, 공연을 이끌어나가야만 하는 책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싱어송라이터로 처음 공연을 시작했을 때에는 나의 음악에 대해서도 자신감이 없었으니, 무서움은 배가 되었다. 나의 색을 찾지 못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모른 채로 했던 노래가 점차 색을 찾고 나의 표현 방법으로 받아들이게 된 순간부터 무대에 대한 공포는 사라졌다. 그저 나는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임을, 그리고 누군가는 나의 이야기에 공감을 받고 위로를 받을 것임을, 그들이 위로를 받음으로써 나도 함께 위로를 받을 것임을 느끼면서 나는 무대를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문제는 공연이 아닌, 평상시에 있었다. 정신과 약 때문에 멍해지는 머리와 둔해지는 생각, 이겨내고 싶은 욕심은 살고 싶다는 다짐이기도 했지만 어쩌면 나에게 강요적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빠르게 나아지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빠르게 나아지기를 원했고, 조금만 길을 바꾸면 더 나아질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생각은 그렇게 쉽게 길을 틀지 않았다.
글을 쓰고 가사를 쓰고 일기를 쓰면서 감정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내가 처한 상황과 솔직한 마음들을 꺼내어 눈으로 보기 시작했다. 그 과정은 솔직히 말하자면 너무나 괴롭고 내가 내 생각보다 많이 약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너무나 피하고 싶었지만 죽지 않으려면 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나의 아이패드에는 자아성찰과 비판, 그리고 어느 정도의 위로와 칭찬으로 도배가 되어버린 메모가 가득해졌다.
가끔 옛날 일기와 글들을 보면 많이 좋아지고 빛을 밝게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아직까지도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나지만 그래도 나아질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에 감사함을 느낀다. 공황은 점차 잦아들어서 이제는 잘 찾아오지 않게 되었고, 우울은 글을 쓰며 어느 정도 이겨낼 수 있게 되었다. 나를 마주하고 솔직하게 나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픈 것이지만 좋은 것이었고, 이제는 나의 수많은 버릇 중 하나가 되어버렸다.
이제 나는 사람들 사이에 있어도 쉽게 웃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고, 상처가 되는 말들은 그 자리에서 불태워 없애버릴 수 있게 되었으며, 음악을 하는 나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나를 사랑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이지만, 나의 못난 모습부터 사랑하고 안아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잘하는 것, 그리고 잘하고 싶은 것과 같은 목표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그동안 성장하며 지나오고 아픔을 느끼며 자라왔던 나의 날들을 위로해 준다. 다행히 나는 아직 살아있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고, 그들도 나를 사랑하고 있는 것을 너무나 풍족하게 느낄 수 있는 삶을 살고 있다. 나를 사랑하는 것은 너무나 어렵지만 안아주는 것은 비교적 쉽다. 그러니 당신도 당신을 안아줄 수 있다.
과거의 답답하고 겁이 많던 나는 아직도 답답하고 겁이 많은 어른아이로 자랐지만, 꿈을 좇아 열심히 노력하고 많은 성장통을 겪고 많은 슬럼프를 이겨내 온 나는 꿈을 이룬 사람이 되었고,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나의 이야기를 뱉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나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바라볼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 되었다. 이거면 충분하지 않을까.
나는 이제 더 이상 나를 모른 척하지 않을 것이다.
지는 날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이겨낼 날들도 있다는 것을 안다.
방황해도 길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아이와 나의 바다’ 가사 인용)
나에게 바라는 것은 그저 살아내 달라는 것.
부디 새로운 해 들을 맞이하며 다양한 나이를 경험해 나가는 것.
사랑을 주는 것과 받는 것을 겁내지 않아 하는 것.
그리고 나를 안아주는 것.
그뿐이다.
그리고 살아내줘서 고맙고, 앞으로도 살아갈 나에게 나를 잘 부탁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