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에도 빛은 존재한다.

그럼에도 어둠에 잠식당한다.

by 기연

어느 날 거울을 봤다. 매일 보는 거울이지만 유난히 창백하고 생기가 없어 보였다. 마음껏 웃어본 게 언제였더라 생각한다. 마음 편히 내일을 맞이한 게 언제였는지도 생각해 보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다. 늘 불안함으로 포장된 내일들은 오늘이 되었고, 또 어제가 되었고, 그렇게 수많은 날들이 되었다.


깊이 생각하면 할수록 더 이상의 삶의 의미 따위 없었다. 미련하게 잡고 있는 내 손에는 물집이 가득했고, 터진 상처가 아물기 전에 나는 모든 것을 망각한 채로 의미 없는 삶을 잡고 끌려다니고 있었다. 무엇일까. ‘산다’라는 것은. 무언가를 견뎌내야 하는 것일까. 모두가 그렇게 견뎌내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밝은 빛이라는 것이 어떤 것이었나 과연 나에게 존재하는 것이었나 하는 의문이 드는 날이 시작되면서, 어둠에 잠식당한 날들이 나를 맞이했다.


소리 내어 울지 못하는 울음쟁이라 두 눈은 늘 부어있었고, 가슴은 답답했고, 소리를 참아내야 했던 목은 점점 더 무거워지고 있었다. 나에게 가벼워진 것 따위 없었다. 놓으려고 하면 할수록 기억의 창고에 박혀있던 지켜야 할 것들이 나를 막았다. 놓지 말아 달라고, 잊히기 싫다고, 겨우 용기를 내어 가벼워지려고 하는 나의 마음을 물고 늘어졌다. 나는 그 힘을 이기지 못하였고, 여태까지 겨우 부은 눈을 뜨며 하루를 맞이하고 밤을 맞이하고 그렇게 살아내고 있다.


어둠은 익숙해져 갔고, 그와 동시에 조금이라도 행복의 기분을 느끼는 순간 불안해져만 갔다. 행복이 온 후 불행은 늘 뒤따라 오는 것이 내가 살아오면서 가장 변하지 않는다고 느낀 이치였으니까. 그래서 행복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가장 행복해야 하고 가장 축하받아야 할 생일에는 우울감이 평소의 배가 되었고, sns 알람을 꺼놓거나 아예 휴대폰 전원을 꺼놓았다. 누군가에게는 가장 기다려지는 날이 나에게는 지독히도 피하고 싶은 날이 된 것이다. 들떴다가 떨어지는 그 마음이 너무나 힘들었다. 아주 행복한 꿈을 꾸다가 현실로 돌아오는 것만 같은, 눈에 보이지 않을 상처들이 가득 생기는 마음의 변화가 나에게 너무나 힘들었다.


감정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어떠한 감정도 느끼고 싶지 않았다. 타인의 말은 물론, 내 안의 소리에도 귀를 닫고 싶었다. 그렇게 되고 싶었던 마음이 꽤나 간절했는지 시간이 지나자 자연스레 그렇게 되어버렸다. 무심함을 떠나 어쩌면 너무나 차가워져 버린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감정과 마음의 문이 닫혀버렸다. 나는 나를 알지 못했다. 내 안에서 어떠한 일이 일어나는지, 타인에게 어떠한 영향을 받았는지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감정에 대해. 어쩌면 나는 알고 싶지 않아서, 그저 겁이 많아서 나를 더욱 고립시켰고, 괴롭게 만들었다.


상처를 바라볼 수 없다는 것에는 후회와 책임이 따랐다. 즉시 치유되고 해결되지 못한 일들은 겹겹이 쌓여 본질을 잃어버렸고, 결국 상처만 남아버렸다.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고 상처만 남겨두고 사라져 버렸다. 유일하게 남은 희망을, 감정을 느끼고 싶지 않다는 고집과 당시의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버려 버렸다. 긍정의 생각을 하고 싶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실망뿐이었기에 그 마저도 포기해 버린 지 오래되었다. 늘 최악을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고, 그 버릇은 나를 안심할 수 있게 만들었다. 들뜨지 않고, 기대하지 않음에는 실망이 없었기에 좋았지만 늘 가라앉아있는 마음을 가지고는 앞으로 나아갈 수는 없었다.


무기력이 주는 힘은 그 어떠한 힘보다 강하다. 긍정의 힘보다, 행복의 힘보다 훨씬 더 강하게 나를 끌어당긴다. 모든 것이 나를 바닥으로 끌어내리는 기분. 축축하게 젖은 솜으로 온몸을 덮고 있는 기분. 샐 수 없이 많은 고철 덩어리를 발목에 걸고 바다에 내던져지는 기분. 이 모든 기분이 나의 기본값이 되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생각한다. 후회와는 다른 개념이다. 그저 궁금할 뿐이다. 어디서부터 이렇게 꼬여왔는지, 더 나은 선택 따위 없었을 것이라 장담한다. 난 늘 최선의 선택들을 하고 살아왔기에 후회를 할 수 있는 기회는 나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늘 최악을 대비하지만 늘 최선의 선택을 함으로써 나는 후회할 수 없다. 탓할 것도 없다. 그러므로 이 모든 것은 모두 나의 책임인 것이다. 그러니, 나는 나밖에 미워할 수가 없었다.


밝음이 있으면 어둠도 분명 존재하고, 행복이 있으면 슬픔도 분명 존재한다.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고, 회피에도 책임이 따른다. 세상에는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더하기와 빼기를 조화롭게 만드는 무언의 규칙이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 나에게는 밝음보다 어둠이 더 많이 존재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저 상처를 받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는데. 상처를 받고, 밤새 울렁거리는 마음으로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밝은 곳으로 나갔다가 밀려 떨어져 다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어둠과 우울, 무기력에 잠식당하게 된 것은 내가 겁이 많았기 때문이다.


살고 싶었기 때문에, 지키고 싶었기 때문에.

더 이상의 좌절을 이겨낼 힘이 없었기 때문에.

그 무게보다 우울의 무게가 훨씬 가벼웠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