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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연 Nov 30. 2024

닿을 수 없는 거리 5화

죽음을 생각하는 날들이 계속되는 동안 나는 더욱더 삶에 간절함이 들었다. 유한함이 있는 삶이 얼마나 삶에 큰 원동력을 주는지 죽음을 다짐하고 나서야 알았다. 생명을 가진 것들은 모두 죽음을 맞이 하지만 나는 자연사를 꿈꾸는 것이 아닌, 스스로 정한 유한함안에서 나를 마무리 짓고 싶었기에 남들과 다른 느낌으로 삶을 사는 기분이 들었다.


설희를 만나고 나는 더욱더 죽음을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살고 있는 동안 설희에게 내 온 마음을 주기로 다짐했다. 설희는 섬세했고, 나를 생각해 주었고, 나를 이해해주지 못했다. 그래서 더욱더 사랑해주고 싶었다. 누군가를 보내기 싫은 마음은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느꼈던 나는 설희가 나의 죽음을 응원해주지 못함이 곧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기에 나는 설희보다 먼저 죽음을 맞이해서 나의 자리를 눈에 띄게 꾸며놓고 기다리고 있어야만 했다.


나를 사랑할 것이라고 믿고 있는 어머니의 존재를 눈으로 보고 싶었고, 그리워하고 있는, 나의 행복을 바라고 있는 할머니 곁으로 가고 싶었다. 그 두 사람의 그늘 아래에서 나는 안정감을 찾고 싶었다. 나를 품 안에 가득 담아줄 사람들이 필요했다. 나는 너무나 외로웠고, 혼자의 고독함이 너무나 괴로웠다. 매일 혼자 잠들고, 눈을 뜨는 밤과 아침들이 나에게는 오지 않았으면 했다. 홀로 있는 삶은 나를 더욱 차가워지게 만들었다. 어떤 사람들과도 연을 맺지 않고 철저히 홀로 고립되어 하늘을 바라보는 것은 어떤 추운 겨울보다 날카롭게 나에게 다가왔다. 하지만 설희와 연을 맺게 되면서 내 삶이 조금은 따뜻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설희에게 어느 정도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 같기도 했다. 설희는 내가 자신의 눈앞에 있기를 원했으니까. 만질 수 있고, 눈을 마주치고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존재가 되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나에게 가지고 있었으니까. 내가 죽는다면 그것은 이루어질 수 없는 바람이 되어버리니까. 내 죽음과 내 행복을 응원해주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설희에게 좋은 말들과 아름다운 단어들을 많이 배웠지만 그것이 결코 행복하지는 않았다. 설희를 사랑하지만, 사랑은 아름다운 것이지만 행복해지진 않았다. 오히려 설희에게 말을 걸고, 시간을 보내고 대화를 나누며 나의 계획을 말할 수 있었음은 내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음이라 감히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죽어야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의 사람들 안에서 나의 자리를 되찾고, 가지지 못했던 어머니의 품을 느끼면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상상 속에서만 꿈꿔왔던, 나를 사랑하는 어머니의 품을. 약 20년이 넘도록 대가 없는 사랑을 주었던 할머니의 품을 다시 되찾고 싶었다.

나에게는 죽음에 대한 계획이 필요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에 대한 계획 말이다. 많은 고민의 수 중 가장 평범하게 매달려 죽는 것을 택하기로 했다. 내가 유서를 써도 볼 사람은 설희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나는 설희에게 처음이자 마지막 편지를 쓰기로 했다.


너는 나에게 죽음으로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게 해 준 사람이야. 부정적인 말로 들리겠지만, 나에게 그런 존재는 긍정적이라는 걸 설희 너는 알고 있을 거야. 누구보다 살고 싶어 하는 너와 누구보다 죽고 싶어 했던 내가 만난 건 우연이라고 생각해. 그 우연 덕분에 나는 조금 더 행복해지고 싶었던 것 같아. 나는 이제 죽을 거고, 너는 앞으로 여기에 남아 삶을 예쁘게 채워가겠지? 나는 우리의 자리가 너무나 기대가 돼. 난 더 행복해지고, 너도 나를 기억하면서 내게 올날을 기다리면서 너의 운명을 찾아주었으면 좋겠어. 그동안 난 네가 있어도 늘 우울했고, 이 삶이 너무나 버거웠어. 삶을 나아가는 게 그 나아가는 발걸음이 너무나 무거웠어. 어떻게 시도를 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했어. 네가 나를 울면서 붙잡았을 때 깨달았어. 누군가에게 중요한 사람이 되는 게 참 기쁜 거더라고, 나의 행복을 바라는 사람이 있다는 게 굉장히 반가운 일이더라고, 설희야 그래서 나는 더 기쁘고 행복해지려고 해. 너는 나를 응원해주지는 못했지만, 나를 사랑해 주고 행복하게 만들어줬어. 내가 떠나고 네가 불행해지진 않았으면 해. 대신 나를 잊지 않아 줬으면 해. 너의 마음에, 너의 기억에, 내 자리가 사라지지 않고 있었으면 해. 우리는 꼭 다시 만날 거야. 어떤 일이 있어도 네가 나를 찾을 수 있게, 그리고 내가 너를 찾을 수 있게 노력할 거야. 그러니 잠시 내가 너와 멀어진다고 해도 너무 슬퍼하지는 말아 줘. 이기적이지만 먼저 가있을게. 기다릴게.   - 진이가


이 삶에서 나를 바라는 설희가 있지만 내 자리는 없었다. 나는 이제 드디어 죽을 준비를 할 수 있었다. 계속 미뤄왔던 나의 행복을 찾아서, 나의 사람들을 찾아서, 나의 자리를 찾아서. 나는 갈 준비가 되어있었다. 의자를 밟고 올라가서 줄에 목을 걸었다. 줄이 끊어질까 봐 몇 개의 줄을 겹겹이 말아 묶었다. 의자를 발로 찼다. 목이 막히고 시야가 흐릿해졌다. 몸에서 기운이 빠지는 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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