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연 Nov 30. 2024

닿을 수 없는 거리 6화

진이가 떠나고 3개월이 지났다. 봄이 시작되었고, 벚꽃이 흩날리고 있었다. 나는 그동안 단 하루도 진이를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매일 아침과 밤, 일어난 후와 자기 전에 울었다. 그게 내 습관이 되었다. 눈물을 흘리지 못하는 날에는 술을 마시고, 취해서 잠들거나 하루종일 취한 채 하루를 보냈다. 진이를 사랑한 게, 진이를 붙잡은 게 진이를 더 멀리 떠나게 했다. 내 잘못이었다. 진이가 나를 만나서 죽음에 더 가까워졌고, 그렇게 떠나버렸다. 나는 진이의 마음을 아직도 이해할 수 없었다. 진이는 행복해졌을까? 진이는 자신의 자리를 잘 찾아갔을까? 지금쯤 누군가의 품에 안겨 편안한 휴식을 취하고 있을까? 여러 생각이 들었다. 사후세계라는 것을 죽음만큼이나 생각하지 않고 살았지만, 진이를 보내고 난 후 여러 모습을 그려보았다. 반가운 곳은 아니었지만 진이가 있다면 나도 가고 싶었다.


나는 불안정한 삶에서 안정감을 찾으려 애썼다. 일도 하고, 친구들도 만나며 그렇게 삶을 꾸며나갔다. 진이가 없는 나의 삶은 회색빛으로 가득했다. 어떤 행동을 해도 나에게 의미가 없었고, 어떤 것을 보아도 나에게 진이의 아름다움 그 이상의 감동을 주지는 못하였다.

늘 행복하다고 느꼈던 일상들이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너무나 괴로웠다. 진이의 옆을 지키던 나의 자리가 사라진 기분이었다. 할머니를 보내고 난 후 진이의 마음도 지금의 내 마음과 비슷했을까? 그렇다면 어느 정도 진이의 마음이 이해가 되는 것 같기도 하다. 확실한 건 나는 지금 매우 괴롭다. 이 시간이 지나 빨리 진이의 곁으로 가고 싶었다. 죽음… 나에게도 그 선택의 여지가 있을까 궁금했다. 밝게 웃던 진이의 모습이 눈앞에서 아른거려서 금방이라도 만질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손을 뻗으면 형체는 사라졌다. 보내지 못하고 읽히지도 않을 편지를 쓴다.


진아, 나는 매일이 괴로워. 네가 없는 내 세상은 아무것도 없어서 절대 빛나지 않아. 네가 말했었지, 나의 삶을 예쁘게 꾸며나갔으면 좋겠다고. 네가 없어서 나는 꾸며나갈 수 없어. 너의 바람을 나는 이루어낼 수 없어. 네 곁으로 가고 싶어. 너의 품 속에서 잠들고 싶어. 술을 먹지 않으면, 울지 않으면, 네 생각이 없으면 나는 잠들 수 없어. 그 짧은 시간 동안 너를 더 많이 사랑해주지 못한 게 너무 미안해. 너에게 울면서 애원한 게 너무 미안해. 너무 보고 싶어.


진이가 떠난 후 나는 처음으로 나의 죽음에 대해서 생각했다. 단 한순간도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나는 행복했고, 그 행복을 위해 살아있는 것이 감사했고, 내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것이 너무나 좋았다. 내 존재 자체가, 내가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이었다. 그러나 진이를 만나고 나서부터 행복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정확히는 살아있다는 것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유난히 힘든 날이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날씨 탓인지 손님이 끊임없이 밀려들어왔고, 쉴 틈 없이 일을 했다. 퇴근 후에 집까지 가는 버스를 눈앞에서 놓쳤고, 그냥 걸어가기로 했다. 길에는 벚꽃구경을 하러 나온 사람들로 가득했다. 사람들은 서로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려 여러 포즈를 취하면서 순간을 기록했다. 생각해 보니 진이를 담은 사진이 단 한 장도 있지 않았다. 내 기억 속에 진이는 남아있었고 충분히 기억할 수 있었지만 언제 잊을지 모를 일이었다. 나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진이의 모습을 그림으로나마 남겨두기로 했다.


종이를 펼치고 연필을 들었다. 아주 오래전 미술학원을 다녔었지만 나의 적성에 맞지 않아서 그만둔 적이 있었다. 그 이후로 처음으로 그림을 그린다. 구도를 잡고 얼굴형을 스케치했다. 진이의 얼굴은 날카롭지만 부드러운 얼굴선과 이목구비를 가지고 있었다. 눈은 쌍꺼풀 없이 동그란 모양을 하고 있었고, 밑에는 작은 점이 있어서 진이의 눈동자에 햇살이 비치면 반짝거리면서 눈물이 흐르는 것처럼 보였다. 그 점을 난 아주 좋아했다. 코는 오뚝하면서 그 끝은 둥그런 모양을 하고 있어서 귀여운 인상을 주었고 입꼬리는 예쁘게 올라가 있었다. 내가 진이의 얼굴에서 가장 좋아했던 부분은 길게 내려온 속눈썹이었다.


그렇게 나의 기억에 의존하여 그린 진이의 얼굴은 내 기억과 꽤나 비슷했다. 이 정도면 진이를 잊지 않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림을 보니 진이가 더 보고 싶어 져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림에 눈물이 떨어질까 봐 얼른 고개를 들고 그림을 돌돌 말아서 묶어두었다. 차마 걸어놓기엔 매일이 더 힘들어질 것 같았다. 무의식적으로 진이를 잊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내게 좋은 사람들은 많았다. 참 감사한 일이지만, 그 사람들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자신의 자리가 있었고, 더 나은 자리를 찾으려 삶을 살고 있었다. 나는 나의 자리가 어디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을뿐더러 생각이 들 때쯤에 진이가 나를 찾아왔고, 그렇게 떠났다. 그럼에도 살아보려 노력했다. 모두 잊고 새로 시작해보려 했다. 하지만 진이가 내게 남긴 모든 질문들과 부탁들, 그리고 사랑을 잊을 수는 없었다. 진이를 보며 매번 했던 생각들은 아직도 그 꼬리를 물고 나를 찾아왔다. 그래서 나는 진이를 원망했다. 진이는 이기적이다. 내 삶을 그 짧은 시간 동안 모두 뒤집어놓고 사이사이에 자신을 껴놓았다. 내가 절대 자신을 잊지 못하게. 하지만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틀리지 않은 말인 것을 증명하듯 이런 마음은 내가 무언가를 포기한 순간 곧 사라졌다.


하루하루씩 지나고 진이가 내 곁에서 사라졌다는 것을 이해하고 인정하고 받아들이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동안 눈물이 마를 틈 없이 지냈고, 매일이 공허함으로 가득 차서 빈 공간을 채우기가 힘들었다. 진이를 보러 가기로 다짐한 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나는 죽음을 다짐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