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태어났는지 모르는 나는 그저 울음소리를 내고 병원에서 나왔을 때쯤 할머니에게로 안겨졌다. 할머니의 사랑은 두 부모를 궁금해하지 않을 정도로 충분했고 과분했다. 할머니와 늘 함께이고 싶었다. 처음으로 유치원에 가게 된 날 나는 눈물 콧물을 모두 쏟아내며 가기 싫다고 유치원 버스 앞에서 할머니의 바지를 잡아끌었고, 할머니는 그런 내 손을 뿌리치며 나를 차에 태웠다. 내가 처음으로 기억하는 실망감이었다. 할머니가 너무 미웠지만 할머니가 없는 다른 세상에서 생활하는 것은 너무나 불편했다. 나를 소개해야 했고, 또래아이들과 모든 것을 나눠가져야 했으며, 선생님이라는 사람은 놀랍게도 이기적이게 굴었다.
나는 나로서 있을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주말을 제외한 나머지 평일에는 여기에 있어야 했고, 어린 나이에도 살아남아야 했다. 고작 유치원 가는 것으로 유난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나에게 사람은 할머니가 전부였고, 그렇게 믿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를 하고 듣는 것은 너무나 어려웠고, 불편했다. 그런 나라는 것을 알았는지 처음에 그들이 가졌던 나에 대한 관심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점차 혼자가 되어갔다.
유치원이 끝나면 유치원 버스를 타고 집 앞에 내렸다. 그러면 할머니에게 안길 수 있었다. 내가 유일하게 숨을 쉴 수 있는 순간이기도 했다. 할머니는 잘 다녀왔냐고 물어보셨고, 나는 딱히 큰일이 없었기에 그렇다고 답했다.
초등학교에 들어간 후 난 부모의 존재에 대해 궁금해졌다. 하루는 학교에서 가정신문을 만드는 데 그 자리에는 아버지와 어머니 성함을 쓰는 칸이 있었다. 그 자리에 할머니의 자리는 없었다. 나는 어떤 것이 잘못되었는지 몰랐다. 난 그 자리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곳을 빈칸으로 비워두고 할머니와 나의 그림을 그렸다.
“할머니 나는 원래 엄마랑 아빠가 없는 거지?”
“그게 무슨 말이니 진아?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니?”
나는 그날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말씀드리며 다시 여쭈어보았다.
“부모님은 다 있는 게 아니잖아. 나는 없는데? 나는 할머니가 내 가족인데, 다른 애들은 빈칸에 다 쓰더라고? 참 이상해 나는 특별한가 봐.”
“진이가 부모님이 왜 없어? 진이도 부모님 있어. 진이를 사랑해 주는 엄마랑 아빠랑 다 있어. 대신에 지금 이유가 있어서 조금 멀리 떨어져 있을 뿐이야. 진이는 특별한 아이지만, 부모가 없는 아이는 아니야. 여기 세상에서 진이를 제일 사랑하는 할머니도 있잖니?”
나에게 부모가 있었다. 아니 있다. 어디 있는지는 모르지만,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 존재한다고 한다. 볼 수는 없고 있다는 것에만 확신할 수 있다. 후에 안 사실은 어머니라는 사람은 나를 낳고 그녀의 어머니에게 나를 맡긴 후 스스로 세상을 떠났고, 아버지라는 사람은 어머니가 임신을 하자마자 그녀를 버리고 떠났다. 이 사실을 안 후 적어도 어머니만큼은 나를 사랑했었으면 했고, 암묵적으로 나를 합리화시켰다. 애초에 그녀가 세상을 떠난 이유는 혼자 아이를 키울 부담감과 자신을 버린 어떤 남자에 대한 실망감과 허탈함 때문이었으리라 감히 생각했다.
아버지라는 사람은 나에게 없는 사람으로 치부되었다. 원망조차 들지 않았다. 나는 그를 본 적이 없으니 사랑한 적도 없었다. 그도 나를 본 적이 없으니 나를 신경 쓰거나 사랑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내가 궁금해진 건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었다. 보통의 가족이 궁금했다. 어떤 것이 보통의 기준이 될지는 모르지만 나에게 보통의 기준은 어머니와 할머니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 만들어낸 사랑과 가정이었다. 그리고 반드시 나중에 어머니를 만나게 된다면 그 꿈을 꼭 이루고 싶었다.
20년이 훌쩍 넘었다. 할머니의 사랑과 관심은 크고 적게 나에게 자주 들어왔고, 난 그것이 항상 감사했다. 할머니를 행복하게 해 드리려 노력했다. 하라는 건 하고 하지 말라는 것을 굳이 하지는 않았다. 보통의 사춘기도 나에게는 눈치가 보였다. 사랑을 보답하지 않으면 할머니가 나를 떠날 것 같았다. 홀로 남겨질까 두려워서 매일 할머니와 함께 이야기를 하고 슬픈 날도 기분이 좋지 않은 날도 억지로 웃으며 할머니가 웃는 것을 꼭 보아야 잠을 잘 수 있었다.
어느 날 할머니는 내게 말했다.
“우리 진이는 꼭 행복하게 살아야 해. 어느 누구에게도 사랑받아야 해. 그리고 너의 꿈을 찾아서 꼭 이뤄야 해. 그게 할머니의 바람이야. 할머니가 진이 많이 사랑해.”
나는 피곤해서 그저 알겠다 하며 얼른 주무시라고 방에 데려다 드린 후 내 방으로 와서 쓰러지듯이 잠에 들었다.
그날 밤 할머니는 고요히 나와 이별했다.
그 이별은 너무나 잠잠했고, 예고 없이 들이닥쳤다. 유치원 때 이후로 할머니 앞에서 보일 수 없었던 눈물을 펑펑 쏟았다. 할머니의 손은 차가웠고, 얼굴은 창백했다. 꼭 사람모양 인형 같았다. 아무도 나를 도와줄 사람이 없었다. 119에 신고를 하고 시키는 대로 절차를 진행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장례식은 끝나있었다. 장례식에는 할머니가 다니셨던 교회분들이 대다수였다. 할머니에게 가족은 나를 낳아주신 어머니 한 분뿐이라 내가 상주가 되었고, 조문객들을 맞이하고 함께 절을 했다. 영정사진을 미리 찍어두지 못한 탓에 옛날 사진 중 잘 나온 사진을 영정사진으로 써서 그런지 사진 속 할머니는 앳되어 보였다. 그래도 내가 아는 얼굴이었다.
나를 안아주던 품, 주름진 미소, 약손이라며 내 배를 문질러주던 부드러운 손, 내가 한 숟가락 밥을 뜨면 그 위로 반찬을 올려주셨던 따스함 모두 이제는 느낄 수 없었다. 할머니가 편찮으시다는 걸 왜 몰랐을까. 왜 더 잘해드리지 못했을까. 왜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해드리지 못했을까. 할머니께서 내게 다가오시던 그 작은 몸짓 하나하나가 벌써 그리워졌다. 나는 이제 이 세상에서 철저히 혼자가 되었다.
할머니를 잊고 싶지 않았다. 집에는 아직 할머니의 숨이 남아있는 것 같았다. 모든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후 할머니의 자리에 옆으로 돌아누워 안기는 상상을 했다. 따뜻하고 포근했다. 하지만 공기는 차갑고 날카로워서 내 눈을 베어 눈물을 쏟게 했다. 이상하리만치 다양한 온기들이 가득한 날이었다.
시간이 지나도 할머니를 잊을 수 없었고, 세상에서 나를 그리워하거나 찾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누군가의 손자. 누군가의 아들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그 자리를 찾고 싶었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죽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