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땐 몰랐다.

최초의 기억

by 표시형

과실에서 노트북 펴고 시작했다.

그땐 몰랐다. 그게 인생을 바꿀 줄.


눈이 아팠고 괴로웠다. 삶이 끝난것 같았다.

물에 빠져 버둥거리는 개미처럼 난 새파란 젊은 나이에 버둥거리며 살고있는 기분을 느꼈다.


신림동 천에 육십짜리 원룸에서 친구와 꾸겨누워 자며 밤마다 괜찮아질꺼라고 외치며 울었다.


눈이 아파서 울고 싶을때면 신림동을 달렸다.

음식물 쓰레기 버리는 일을 하면서 번 돈으로 매일 밤 술을 마셨다. 취해서 어지러우면 통증이 가시는것 같아서 취김에 껄껄 웃었고 행복하다 외쳤다.


그땐 몰랐다. 내가 젊고 건강한 줄.


무언가에 집중하지 않으면 자꾸 넘실거리는 죽음의 파도가 떠올랐다. 그곳을 바라보지 않는 방법으로 난 최선을 다하는 방법을 택했다.


대외활동 학점 술먹기 연애. 모든게 나한테는 생존과 직결된 노력이었다.


열정에 기름붓기를 왜 시작했을까.

그건 같은 이유에서였다.

꿈을 꾸지 않고서는 현실을 버텨내기가 힘들었다.


사람은 각자의 이유로 힘들다.

그건 상대적인거여서 비웃을 수 없고 동시에 이해받길 바랄 수도 없다.


오롯이 혼자 마주해야하고 견뎌내야하는 것이 삶임을 그때는 몰랐다.


꽤 열심히 글을 썼다.

나한테 썼다.

글을 쓰면 맘이 좀 풀렸다.

글을 쓸 때는 눈이 아픈걸 잊었다.


어느순간부터 내겐 열기가 전부였다.

그게 없는 날이면 다시 난 울었다.


행복의 방법을 발견했다그래서 불행을 피할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땐 그걸 몰랐다.


오토바이를 타기 시작했다.

일을 하거나 새벽 텅빈 도로를 달리며 오로지 그것에 집중했다.

무언가에 몰입하지 않으면 난 아프거나 슬퍼서 그랬다.


사고가 났다.


눈을 뜨니 난 더 불행해져있었다.


열기는 계속 커졌다.

행복이 커지는만큼 불행함도 커졌다.

자신감이 넘칠 수록 내 안에 두려움도 커졌다.


큰소리쳤다. 내 안에 있는 불안의 소리가 들어올때면 난 더 큰 더 커다란 목표를 만들었다.


그게 지금의 나를 만들 줄은 몰랐다.


낮에 웃고 밤에 우는 사람이 되었다.

어렸을 때 이해가 되지않았던 영화 속 불행한 주인공의 삶에 공감하며 함께 울기 시작했던건 그때부터였다.


열다섯의 나.

열 아홉의 나.

스물둘의 나.

스물 다섯의 나.


작년의 나.


기억나지 않는다.

실존하는 사실들에 의존해서 내 삶을 반추한다.


난 열심히 살았다.

불행하다 생각했지만 성취는 있었다.


스물 넷의 겨울을 떠올린다.

노특북을 켜고 재선이형과 콘텐츠를 만들던 그때를 떠올린다.


그땐 몰랐다 내가 행복했다는 걸.


인생이란 무엇일까.

난 잘 살고 있는 걸까?

그건 지금 당장 알 수 없다.


언제나 후회는 미리 찾아오지 않듯

불행이 시간에 익으면 추억하는 행복이 되듯


언제나 그땐 모른다.

그땐 그랬던걸 지금에서야 알 뿐이다.


지금을 살고 있는 사람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하나다.


계속해서 사는 것.

나아가는 것.

돌아볼 수 있는 흔적을 남기며 계속하는 것

그뿐이다.


돌아보면 알게 될테니.

지금을 살자.

최선을 다해.


그때의 버둥거림이 찬란한 청춘의 날갯짓이었음을

지금 아는 것처럼.


지금도 내가 잘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밤잠을 못이룬다.


하지만 한가지는 안다.

이 괴로운 밤에 그 시절을 생각하니 웃음이 난다.

난 잘 살았었다.

그때 몰랐을 뿐이다.


지금도 같다.

keyword